이름도 시가 될 수 있나요?
올해 5월부터 국립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여자가 글은 무슨 글’이 여성 혐오적이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나 한글을 모른 채로 자랐던 영란, 춘심, 인순, 그리고 분한이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 할머니를 보며 처음으로 나오는 말은 ‘못 말린다’일 것이다. 온갖 욕지거리를 하며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받아쓰기가 무서워 꼼수를 부리기도, 수업 시간에 소주를 들이켜며 남편 욕을 하기도 하는 ‘오지게 못 말리는’ 할머니들 덕에 팔복리 문해학교는 하루도 조용할 틈이 없다.
그러나 이 연극을 함께 만들어가는 특별한 주인공이 한 명, 아니 사실은 아주 여럿 더 있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을 보러 간 날, 내가 지금껏 공연장에서 보지 못했던 아주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관객의 반 이상이 팔복리 문해학교 할머니들의 친구뻘로 보이는 연세의 어르신들이었다. 오히려 내 나이대의 관객을 찾는 것이 어색할 만큼 공연장은 노년의 관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공연장 밖에서 이 광경에 놀라길 한 번, 나는 공연장 안에서도 평소 관극할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좌석을 메운 어르신들은 자리를 찾느라 한참을 헤매시기도, 가방 안에서 무언갈 꺼내 주섬주섬 드시기도 했고, 어딘가 어색하다는 듯 자꾸 둘러보시거나 안내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셨다. 평소 공연장에서라면 긴장하게 만들 법한 장면들이었지만, 그날의 객석에서는 이상하게도 그런 낯섦마저 활기로 느껴졌다. 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무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몸짓들 사이에서 나는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공연이 시작하자 객석은 조용해졌고, 네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와 삐걱대는 몸이 무대에 올랐다. 할머니들의 말과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소리치거나 (뮤지컬이니)노래했고, 내가 잘못을 했어도 네 잘못이다, 잘만 우겼다. 하지만 그렇게 억세던 모습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면 놀랍도록 부드러워졌다. 영란은 금쪽같은 손주가 한글을 배운 후에 한글로 된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해 아들네 집에 가질 못했다. 춘심은 어렸을 적부터 가수의 꿈을 가졌지만 감히 도전해 보지 못했고, 인순은 첫사랑을 떠올릴 때면 여전히 볼을 붉혔다. 분한은 여자만 줄줄이 태어난 집안의 넷째 딸로 존재 자체가 분해 이름이 분한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때로는 폭소하며, 때로는 조용히 웃으며, 때로는 눈물을 훔치며 보는 객석의 또 다른 영란, 춘심, 인순, 그리고 분한이 있었다.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관객을 보는 것. 이토록 자신들의 인생을 무대 위에서 보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어쩐지 나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춘심의 목소리가 객석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고, 자신의 이름을 얘기하며 흐르는 분한의 눈물이 다른 누군가의 울음 같았다.
왁자지껄한 여느 때의 팔복리 문해학교 수업 시간, 분한이 소심하게 선생님에게 묻는다. “이름도 시가 될 수 있나요?” 이름은 시가 될 수 있다. 그 이름 안에 담긴 시간이, 세월이 그 이름을 시로 만들어준다. 그러나 분한의 이름만이 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질문을 달리 말한다면, “시는 무엇인가요?”일 것이다. 과연 시는 무엇인가, 아니, 무엇이 시가 될 수 있는가. 우리는 흔히 시를 특별한 언어로 쓰인 특별한 예술이라 생각한다. 뮤지컬 역시 비슷하다. 극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고, 서울의 초라한 소극장은 파리의 작업실이 되기도, 런던의 지하 감옥이 되기도 한다. 뮤지컬이 환상성을 통해 현실을 벗어나는 예술이라면, 시 또한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것으로 바꾸는 예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다른 방식으로 시를 만든다. 이 작품은 현실을 환상으로 바꾸지 않는다. 대신 한글을 배우고, 가족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평범한 삶을 무대 위에 올린다. 그리고 그 삶 자체가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끝내 시가 무엇인지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영란과 춘심, 인순과 분한의 삶을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영란과 춘심, 인순과 분한을 객석에 앉힌다. 어떤 극은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아름다워지고, 어떤 극은 인생을 무대 위에 올림으로써 시가 된다.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후자에 가까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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