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시나, 가장 시작하기 좋은 나이
우리는 가시나, 가장 시를 쓰기 좋은 나이
-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무언가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나이는 언제일까?
대부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답할 것이다. 나이에 맞춰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에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것이 아닌지 지레 겁을 먹고는 한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팔순을 넘겨 제대로 처음 연필을 쥔 손으로, 생애 처음 자신의 이름과 자신만의 시를 쓰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가상의 마을 '팔복리'의 문해학교에 다니는 영란, 춘심, 인순, 분한. “늙으면 죽어야지”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로 향하는 이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2026년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 위에 다시 펼쳐졌다.
인기 다큐멘터리 영화 〈칠곡 가시나들〉과 에세이 <오지게 재밌게 나이듦>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실제 할머니 학생들이 쓴 스무여 편의 시가 뮤지컬 넘버로 살아난다. 2025년 초연에서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작품상, 연출상, 극본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이 작품은, 재연을 통해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귀환했다.
무대 위 할머니들의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그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는 ‘서러움’이라는 하나의 정서로 통한다. 문해학교의 반장인 영란 할머니는 손주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지 못하는 것이 두렵고, 춘심 할머니는 가수를 꿈꿨으나 글을 몰라 노래 자랑 지원서조차 써보지 못했으며, 인순 할머니는 첫사랑이 알려준 푸시킨의 시를 오래 마음에 담고 위안 삼아 살아왔다. '아들을 못 낳아 분하다'는 이유로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 '분한'은, 그 이름만으로도 분한 할머니가 어떤 설움을 품고 살아왔는지 말해준다.
그러나 이렇게 때로는 답답하고 아팠던 할머니들의 삶의 기억은 연필 한 자루를 손에 쥔 순간 삶이 담긴 시로 다시 태어난다. 할머니들은 글을 배우고 쓰며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진짜 ‘이야기’로 펼쳐나간다. 지나온 인생에서 겪은 슬픔과 아픔은 배우고 표현하는 기쁨을 만나 할머니 한분 한분만이 가진 반짝이는 시가 된다.
아픈 이야기를 꺼내놓다가도 이를 자신만의 시로 승화시키며 술 한잔에 금새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할머니들의 모습은 삶에 대한 진정한 예찬의 태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출처: 라이브(주)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나이 듦을 슬픔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팔십이 된 지금이 가장 당당하고, 가장 자유롭게, 처음으로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한다.
무대 위 할머니들은 단순한 '노인'이 아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사랑을 했으며, 행복을 주기도 했지만 때로는 무심하게 불친절하기도 했던 세월을 살아온, 저마다의 역사를 지닌 사람들이다. 관객은 그 안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할머니를, 혹은 어떤 날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공연 내내 정신없이 웃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또한 쉽게 다투다가도 금새 다정하게 화해하고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할머니들의 우정은 지켜보는 관객에게 복작복작한 사람 냄새와 따스한 온기까지 전해준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단지 문자를 익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언어를 갖게 되는 일이다. 거창한 언어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살아온 삶이 그대로 시가 된다는 것을 할머니들과 함께 배우며, 관객은 자신이 어떤 시로 변모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시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다.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은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깨닫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의 인생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