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산골영화제. 초여름의 낭만이 가득하다고 유명한 그 곳을 다녀오게 되었다. 교통편도 좋지 않고 가는 길도 험난했던 무주. 어쩌면 내가 가 본 곳 중 가장 시골다운 풍경을 간직한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동기 언니가 “교통편과 숙소가 다 있으니, 너도 갈래?”라고 한 것을 시작으로 갑작스럽게 무주행이 결정되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의 모든 것은 우연과 즉흥의 연속이었는지도 모른다. 함께 영화를 보러 떠난 사람들 역시 동기 언니의 동아리 친구와, 또 그 친구의 친구로 이어진 조금은 기묘하고 어색한 조합이었다.
무주에는 총 2박 3일간 머물렀다. 첫 날엔 등나무 운동장에만 머무르는 일정이었는데, 날씨가 많이 덥다보니 해가 지기 전까지 근처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구경했다. 무주군청이 있는 읍내는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어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생긴지 30년은 더 되어보이는 슈퍼마켓과 식당, 그리고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준비하던 흔적이 남아있는 우체통까지. 무주의 시간들이 골목골목에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계속 동네를 구경하다보니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무주읍에는 초등학교 두 곳, 중학교 한 곳, 고등학교 한 곳이 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아이들은 같은 친구들과 함께 자라며 계절을 쌓아가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오면 이 곳에도 누군가의 삶과 역사가 존재한다는 게 왠지 신기하게 느껴진다. 나는 여행으로 며칠 지내다 가는 것 뿐이지만, 무주라는 곳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에겐 무주라는 곳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서울과 가까운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고향에 대한 애착이 그리 크지 않다. 그래서인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가진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늘 궁금하다.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 사람들의 결속력과 애착심이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진다. 무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할까. 푸른 나무 사이를 따라 걷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고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렇게 여러가지 생각 속에서 걷고 또 걷다가 등나무 운동장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즐겼다. 무주의 등나무 운동장은 정말 아름다웠다. 얼기설기 얽힌 등나무들 사이로 별이 가득한 밤 하늘이 보였다. 정말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1925년에 개봉한 무성영화 <신입생>과 함께 감상했던 전자음악가 키라라의 음악이었다. 키라라 특유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의 음악은 영화 장면과 잘 어우러졌다. 그리고 가사도 없는 음악에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이 드는 게 참 신기했다. 그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공기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마음 깊은 곳까지 번져가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런 순간을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각자의 시선으로 같은 공간을 바라보며 같은 순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초면인 친구들과 함께 2박 3일을 보내며 새삼 느꼈다. 같은 걸 즐기고 좋아하는 데 처음 만난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이도 이름도 사는 곳도 제각각이었지만 우리는 계속 우리였다.
등나무 운동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꽤 멀어서 택시를 타야했다. 운 좋게 좋은 기사님을 만나 2박 3일간 함께 이동할 수 있었다. 무주 토박이셨던 기사님과 함께 무주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숙소로 향했다.
숙소로 가는 길은 산길이라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다. 창문을 내려 밖을 바라보니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 그렇게 쏟아질 듯 많은 별은 난생 처음이었다. 개구리 우는 소리와 함께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그리고 밤 하늘을 수놓은 별들. 너무 아름다워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 순간이 영화였다면 아마 마지막 장면이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었다. 무주에서의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2박 3일간 무주에 머무르며 도심 속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느릿한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의 삶과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는 무주라는 공간을, 쏟아지는 별과 영화 속에서 느껴졌던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을 잊지 못할 것같다. 이런 아름다운 순간들을 내 안에 차곡차곡 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그 초여름의 밤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