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SNS를 하는 게 당연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고 피드를 꾸밀 때, 다들 자기만의 분위기를 뽐내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항상 웃고 있는 사진을 올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무채색의 우중충한 사진만 한가득 장식한다. SNS가 자기 PR의 장으로 활용되며, '추구미'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본인이 선망하고 원하는 아름다움의 기준, 추구미. SNS를 통해 드러내는 추구미는 대개 '내가 믿고 싶은 나의 모습'을 타인의 눈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의상, 헤어스타일, 소품과 같이 외적인 요인뿐만이 아니라 정치, 종교, 철학과도 같은 한 개인의 사상까지 '추구미'에 속한다.

 

이렇게 편집된 나와, 현실에서의 나는 얼마나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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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1950)' 은 진실을 왜곡하는 자기 기만적 목소리를 담아낸다. 영화는 헤이안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비가 쏟아지는 어느 날, '라쇼몽'의 처마에 스님과 나무꾼이 모여 앉는다. 두 남자는 그칠 줄 모르는 비처럼, 알 수 없는 문제를 두고 혼란에 잠긴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같은 시각, 비를 피해 처마로 온 한 남자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온다. 스님과 나무꾼은 남자에게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해 늘어놓기 시작한다.


마을에서 유명한 도적 다조마루. 그는 산행길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여인 '마사코'에게 홀려버린다. 멋있는 무기가 잔뜩 숨겨져 있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속임수로 그녀의 남편 타케히로를 궁지에 몰아넣곤, 마사코를 겁탈한다. 나무꾼은 사건이 벌어진 길을 지나다가 칼을 맞고 죽어있는 타케히로를 발견해 관청에 신고한 것이다. 다조마루가 체포되고 머지않아 절 속에 숨어 살던 마사코까지 끌려온다.


마사코와 다조마루의 진술은 상반되고, 결국 마사코는 주술을 부려 죽은 남편의 혼을 불러온다. 그런데, 그녀의 몸에 빙의한 남편 타케히로 또한 전혀 다른 진술을 펼친다. 심문은 점점 미궁 속에 빠져든다.

 

 

 

1. 세 가지 진실


 

다조마루는 타케히로를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사코가 두 남자에게 욕을 보인 채로 살아갈 순 없다며, 타케히로를 죽여달라고 했고,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치른 끝에 타케히로의 목숨을 거두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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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코는 다조마루에게 겁탈당한 후, 남편이 자신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으며,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자신의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박혀있었다고 얘기한다.


타케히로는 다조마루가 아내를 겁탈한 건 사실이지만, 자신을 죽인 건 아니라고 말한다. 도리어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고, 그 충격으로 인해 자결했다는 것이다.


산속에서 다조마루가 마사코를 겁탈했다는 것. 그리고 '타케히로'가 죽었고, 나무꾼에 의해 발견됐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타케히로가 죽음에 이른 과정은 각각의 주장이 달라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다. 가녀리고 연약해 보이는 마사코의 눈물, 큰소리치는 다조마루, 혼이 되어 잠시 빙의한 타케히로의 한 섞인 외침까지. 게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나무꾼은 마사코, 타케히로, 다조마루의 말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는 길을 지나가 싸우는 소리를 듣고, 우연히 현장을 훔쳐보게 된다. 마사코는 두 남자에게 욕을 보인 채 살아갈 순 없다며, 다조마루 더러 타케히로를 죽여달라고 한다. 타케히로는 고작 마사코 같은 부인 따위에 자신의 목숨을 버리긴 싫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말하는데, 분노한 마사코가 두 사람의 싸움을 부추긴다.


"남자라면 칼로 여인을 쟁취하는 법이죠!"


그녀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두 사람은 흙바닥을 뒹굴며 개싸움을 벌인다. 결국, 타케히로가 죽고 마사코는 도망가 버린다.


만약 나무꾼의 말이 사실이라면, 세 사람 다 본인의 이미지를 위해 왜곡된 진실을 말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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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은 개싸움에 불과했지만, 다조마루는 멋지게 싸워서 얻어낸 승리인 척 꾸몄다. 마사코는 자신이 남자 둘의 싸움을 부추겼고, 당시 시대상에 반하는 여성임을 밝히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타케히로는 사무라이인 자신이 개싸움에서 졌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 차라리 자결한 척했던 것이다.

 

물론, 나무꾼의 말이 진짜라는 보장은 없다.

 

 

 

2. 눈앞에 놓인 사실


 

황망함에 잠긴 세 사람은 빗속을 뚫고 들려오는 우렁찬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기가 버려진 채 울고 있었고, 남자는 아기를 감싼 옷을 빼 든다. 나무꾼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되는 거라며, 그를 꾸짖는다. 하지만 남자는 어차피 애를 버린 것 자체가 매정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죽은 타케히로의 가슴에 꽂힌 단도를 뽑아간 게 당신이 아니냐며 정곡을 찌른다.

 

'목격자' 신분을 유지하던 나무꾼은 순간 말을 잃는다. 승려는 아기를 안아 들고, 울음을 달랜다. 나무꾼이 손을 뻗자, 승려가 놀라며 언성을 높인다.


"이젠 애한테까지 손을 댈 셈이오?!"


"집에 아이가 여섯 있소. 아이 여섯을 키우나 일곱을 키우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요."


나무꾼의 말을 들은 승려는 곧장 사과하며 부끄러워한다. 아기를 건네받은 나무꾼은 승려에게 인사를 건네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승려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얘기해 왔으나, 남자에게 들은 말만으로 나무꾼을 '악인'으로 낙인 찍었다. 결국 승려가 주장한 신념도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던 거다.


우리는 현재 '탈진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오래전이나 지금이나 인간 세상에서 모두들 자신이 유리한 방향대로 진실을 왜곡하고, 전달하고 싶어 하는 걸 막을 순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온전한 진실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자기 자신조차 속이죠.'


라쇼몽에 나오는 대사이다. 나는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 적 행위에 빠져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적는 나조차도 말이다.


나무꾼은 돈을 벌기 위해 타케히로의 가슴팍에 꽂힌 단도를 훔쳤다. 그렇지만 그는 갓 태어난 새 생명의 존귀함을 받아들이는 어른이기도 하다. 사람이라면 본디 가져야 할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애를 버려야만 했을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며 옷을 훔쳐 가려는 남자를 나무랐던 게 아닐까?

 

라쇼몽은 열린 결말이다. 나무꾼이 아기를 키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기를 이용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 나무꾼이 남자의 부도덕한 행위를 저지했던 건 진심이었다고 본다. 아기는 그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목 놓아 운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기를 빗속에 내버리지 않고 떠안은 나무꾼의 선택은, 당장 눈앞에 주어진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마음이었음을 의미한다.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많지 않지만, 눈앞에 놓인 사실만은 명백하다. 빗속을 뚫고 들려온 아기의 울음소리 같은 것 말이다. 진실을 판가름 짓기 위한 입싸움보다도, 당장 눈앞에 놓인 사실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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