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최근 예술 이론에 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예술 관련 이론과 역사 공부를 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한 가지 단점도 느끼게 되었다. 바로 정형화된 틀로 예술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예술가가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면 그의 작품 속 요소와 기법을 모두 인상주의라는 틀안에서 해석하게 되고, 비슷한 화풍을 가진 다른 화가들 또한 인상주의적 특징이 강하다고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술이나 미술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이전에는 “화가는 왜 이것을 그렸을까?”,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와 같은 질문을 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즉, 특정 화풍이나 소재로 단정하기보다 작가와 작품 자체의 의미를 고민하는 데 더 집중하였다.

 

 

_파리의 작은 미술관_ 입체표지.jpg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작가는 왜 이러한 스타일의 그림을 그렸는가?”, “다른 예술가들과 사회적·공간적 환경은 작가의 의도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졌다. 또한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당시 파리의 거리를 직접 거닐며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IMG_0217.jpg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예술가들 (자코메티, 귀스타브 모로, 로댕, 피카소, 수잔 발라동 등)은 19~20세기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비슷한 화풍을 형성하기도 했지만,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만의 가치와 개성을 더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들은 누구보다자신의 예술을 사랑했으며, 예술적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나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의 목적은 일상생활의 먼지를 씻어내는 것"이자 "예술은 삶을 기쁘게 축하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사람들은 내 그림이 변했다고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저 나일 뿐이다. 예술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작품에 임하는 그 순간만이 드러나는 것이 예술" - 피카소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거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이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 알베르토 자코메티

 

 

또한 나는 평소 미술관을 방문할 때 어느 시기에 건립되었는지, 어떤 건축가가 지었는지, 어떤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에만 주로 관심을 두었던 것 같다. 정작 그 미술관이 왜 그 자리에 세워졌는지, 누가 설립했는지, 그리고 작품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히 정부의 정책 때문이거나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가나 부유한 수집가들이 공공의 목적으로 설립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파리의 여러 미술관이 어떤 과정을거쳐 설립되었는지, 그리고 각 미술관이 지닌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과 피카소 미술관이었다.

 

폴 마르모탕은 19세기 프랑스의 부유한 수집가로, 아버지가 모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물 및 고전 예술품을 계승하고 수집하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사후 자신의 저택과 소장품을 프랑스 예술원에 기부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술관이 설립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정작 폴 마르모탕이 당시 기피했던 인상주의작품들을 예술원이 적극적으로 수집하면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인상주의 작품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미술관의 이름 또한 인상주의 대표예술가인 모네의 이름이 추가되어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바뀐 점이 매우 인상깊었다.

 

피카소 미술관의 설립 과정도 흥미로웠다. 스페인 출신인 피카소는 프랑스 국적을 얻고자 했지만 끝내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후 가족들이 상속세를 작품으로 납부하면서 프랑스 정부가 대규모의 피카소 작품을 소유하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피카소 미술관이 만들어졌다. 프랑스인으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대표작 상당수가 프랑스의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IMG_5844.jpg

 

 

앞서 언급했듯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로 하여금 실제로 미술관과 파리의 거리를 거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책은 미술관의 위치와 배치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 된 거리 이름, 역 이름, 표지판의 의미까지 자세히 소개했다.

 

이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역이나 도로가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며 직접 찾아보곤 했다. 예를 들어 잠실은 과거 누에를 기르던 지역이었고, 강남은 한강 남쪽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명의 유래를 하나씩 이해해 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역명이나 도로명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러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작가가 파리에 어떤 예술가들이 어디에 얼마나 머물렀고 활동했는지를 사진과 글을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보며 몇몇장소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고, 언젠가 직접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그런 흔적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전쟁과 급속한 도시 개발, 재건축 과정을 거치면서 과거의 모습을 온전히 간직한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50~60년 전에 살았던 집이나 동네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과거 예술가들이 살았던 공간을 찾아가거나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물론 일부 유명 인물의 생가나 유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비교적 오래된 건물과 도시 경관이 잘 보존된 파리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IMG_5842.jpg

 

 

이러한 생각을 하다 보니 책에 등장하는 르코르뷔지에의 도시 계획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꿈꾸었던 대대적인 파리 도시 재개발 계획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파리 예술가들의 삶과 발자취를 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미술관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와 그곳에서 살았던 예술가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작품이 탄생한 환경까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게해 준 책이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