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솔로지옥,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시즌이 바뀌며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어김없이 또 빠져든다. 연애를 직접 하는 것도 피곤한 세상에서 왜 굳이 남의 연애를 보는 걸까. 단순히 재미있어서라고 하기엔 그 몰입이 그저 단순한 수준으로 보이지 않는다. 커플이 성사되면 함께 기뻐하고, 엇갈리면 함께 아쉬워하고, 편집된 장면 속 눈빛 하나에도 댓글창이 들썩인다.
이러한 양상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정작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연애가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혼자 지내는 게 편하다는 말도 어느새 낯설지 않아졌다. 사람들은 연애를 안 하는 이유로 연애에 쏟아야 할 감정과 시간이 부담스럽고, 상처받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실 어떻게 보면 연애를 안 하는 게 더 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필요한 감정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데 그렇게 연애로부터 한 발짝 물러선 사람들이 정작 연애 프로그램 앞에서는 눈을 떼지 못한다. 직접 하기는 싫은데, 보는 건 좋다. 이 모순적으로 보이는 마음 안에 사실 우리가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진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안전한 설렘
연애의 시작에만 존재하는 그 특유의 긴장감과 떨림, 말 한마디에 온종일 의미를 부여하던 그 시간들이 있다. 그렇게 상대의 아주 작은 신호들도 내 일상을 장악하던 날들 중에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는 날도 있었을 것이고, 서툴게 내 마음을 표현하려 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연애를 오래 한 사람도, 오랫동안 혼자인 사람도, 연애가 귀찮아진 사람도 그 순간만큼은 그리워한다. 정확히는 연애 자체가 아니라 그 시작의 감각을.
내가 생각하기에 연애 프로그램은 그 감각을 가장 안전하게 소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설레는 마음에는 불안한 감정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불확실한 관계에서의 그 미묘한 감정은 설렘이기도 하지만 벅차도록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연애프로그램에서는 현실에서라면 내가 직접 감당해야 할 그 감정들을 화면 속 누군가가 대신 겪어준다. 거기다 연애 프로그램은 현실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여러 명을 알아볼 수도 있는 세상이니까. 현실의 연애가 수많은 눈치와 타이밍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낭만적인 세계처럼 보인다.
연애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 설렘을 느끼며 만족한 우리는, 더이상 직접 상처받지 않아도 되고 직접 고백하지 않아도 된다. 만약 그들이 엇갈리게 되더라도 그 순간 또한 재밌는 도파민으로 작용할 뿐이다. 설레는 감정만 취하고 그에 따르는 불안과 두려움은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어쩌면 그게 연애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현실의 연애는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지만, 화면 속 연애는 그냥 앉아서 봐도 되니까 그 간편함이 사람들을 계속해서 화면 앞으로 불러들이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어딘가 피로해지는 순간이 있다. 너무 잘 만들어진 세트장, 너무 꾸민 모습만 보여주는 출연자들, 너무 자극적으로 편집된 감정선. 물론 그게 나쁜 건 아니지만 보다 보면 이게 진정한 감정인지 그저 콘텐츠인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 출연자들이 정말 상대에게 마음이 있는 건지, 아니면 카메라 앞에서 마음이 있는 척을 하는 건지. 그 의심이 한 번 들기 시작하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연애 프로그램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로 유명세를 얻기 위해 출연한 것 같은 참가자들을 꼽는다. 연애를 하러 나온 건지 얼굴을 알리러 나온 건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감정이 진짜인지 연출인지 구분이 안 되기 시작하면 몰입이 흔들린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설레게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진심으로 설레는 감정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장면만 남은 것 같은 느낌. 안전하게 대리 경험하러 들어왔다가 오히려 공허함을 안고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연애 프로그램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도가 높아지던 와중에 최근 침착맨 유튜브에 올라온 김총무와 출판사 직원 김아영 씨의 소개팅 영상이 좋은 반응을 만들어냈다. 이 영상에는 세트장도 없고, 극적인 편집도 없고, 보정된 조명도 없다. 그냥 두 사람이 카페에 앉아 이야기 나누는 장면이다. 약간의 지령이 있는 상태로 시작했지만 진짜 소개팅처럼 어색한 침묵도 있었고, 서로 말이 겹치는 순간도 있었다. 김총무가 긴장해서 많은 말을 하다가 뒤로 갈수록 긴장이 풀리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질문을 나누는 흐름은 정말로 그냥 다른 사람의 소개팅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명해지고 싶어서 방송에 나온 게 아니라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단순한 진심이 영상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만들어준다. 가공되지 않은 감정이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오는 느낌. 둘 사이의 어색함이 진짜라서 설렘도 진짜로 보여진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두 분이 사귀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댓글 반응은 유독 따뜻했다. 마치 친한 친구들의 연애를 보는 것처럼 다들 좋아하며 응원하는 반응이었다. 내가 지켜본 사람들이 잘 됐다는 느낌, 처음부터 끝까지 옆에서 보고 있었다는 느낌. 아마 그 영상이 연출된 감정이 아닌 실제 사람의 감정을 보여줬기 때문에 생긴 반응이 아닐까. 사람들은 결국 연애 프로그램에서 단순히 서로를 선택하여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완결 장면이 아니라, 진짜 사랑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카메라를 의식해서 만들어낸 감정이 아닌 손을 떨면서도 예쁘다는 말을 전하는 그 진심을 원했던 것이다.
우리가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건 연애가 가능한 세계를 확인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람과 사람이 서로에게 설레고, 어색한 대화 속에서도 조금씩 가까워지고, 알아가다보면 결국 마음이 닿는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 그 당연한 사실을 요즘 세상에서 잘 확인할 수 없으니 자꾸만 찾아보고 싶은 것이다. 정교하게 연출된 감동보다 투박하고 어설프더라도 진짜처럼 보이는 장면에 더 오래 머무는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는 설레고 싶은 게 아니라, 설렘이 아직 이 세상 어딘가에 있다는 걸 믿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