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공포영화로 개봉한 <살목지>를 보고서 아쉬움이 많았다. 그저 저수지라는 으스스하고 미스터리한 공간이 소재로 사용된 것, 그리고 깜짝깜짝 튀어나오는 물귀신 외엔 공포감이 와닿지 않았던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몰입에 점점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스토리다. 단편적인 호러물보다는 차라리 이야기 측면에서 쫄깃함을 뽑아내는 스릴러가 나은 것도 그 이유다. 그런 영화들은 실제로 있을 법한 배경과 인물을 통해 관객들을 소구하는 경우가 많아 심장을 움켜쥔 적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중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기리고>를 만났다. 신비스러운 제목과 함께 마침 콘텐츠 소개에 기대감을 입고 고민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소원을 들어주는 앱 '기리고'
<기리고>는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목숨을 앗아가는 스마트폰 앱 ‘기리고’의 저주로 인해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받은 학생들이 저주를 해결하려는 학원 공포물이다. 총 8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리즈는 이야기 압축과 구성력이 뛰어나 휴일 하루 몰아보기가 가능할 정도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야기는 서린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기리고를 통해 수학 영역에서 전국 1등을 해달라고 빌어 이루어졌으나, 귀신에 의해 조종당해 생을 마감하는 등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주인공 세아, 건우, 하준, 나리가 앱의 저주와 비밀을 파헤치고자 사건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특히 소원을 빌어주는 앱 ‘기리고’를 개발하고, 추적하고, 정보를 수집하려는 과정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인터넷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밀의 부재 속에서 드러내기보단 가리기를 원하고, 뜻하지 않은 소원(혹은 비밀)이 세상에 알려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꺼림칙한 것으로 그려진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며 제각각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엉켜 결국 극단적인 방법인 저주와 누군가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주를 끊어내려는 믿음
그 연결고리를 끊어내려는 주인공들의 활약은 ‘믿음’으로 결국 결집된다. ‘샤머니즘(무당이 영적인 존재와 소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믿음 체계)’을 중심에 두고 있는 만큼, 믿음이 흔들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가장 먼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형욱은 세아가 자신의 뒷담화를 했다고 착각하는 등 교란이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사건 해결을 위해 앱을 지우려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영적 세계 속 혼령에 의해 종종 길을 잃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도 극 중 세아는 육상부 멀리뛰기 국가대표로 발탁될 만큼 신체적으로 단련된 인물로 그려진다. 멀리뛰기 성적이 나오지 않는 또래 육상부 학우에게 “겁이 날 땐 앞에 매트가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라고 말할 만큼, 그 믿음의 체계가 자신으로 또렷하게 집중되어 있는 인물이다. 그 때문인지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무너짐 없이 단단한 면모를 보여주어 나(현실 세계)와 혼(영적 존재) 사이를 유일하게 이어주는 인물로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꼭 쥐고 가는 것이 잘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에서 느낀 특별함의 이유는 사회의 단면과 밀접히 연결된 연출 및 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 ‘퇴마’라는 다소 전형적인 주제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급우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묘하고도 섬세한 심리를 혼령에 담아 저주와 연결한 점이 눈에 띈다. 애정과 질투, 응원과 시기 등 사소하지만 분명하게 자리하던 마음속 불씨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한 느낌도 들었다.
이런 양상은 과거로 돌아가 만난 시원과 혜령의 서사에서 기리고 앱의 창시 서사와 함께 드러난다. 두 인물 사이 비밀스러운 약속에 각자 숨기고 싶은 무언가, 그리고 사소한 어긋남 하나로 불붙듯 번져가는 ‘증오’는 끝내 저주가 되어 현재까지도 끊지 못하는 괴롭힘으로까지 확대되는 실정이다. 모두가 염원하는 소원의 무게는 다 다르겠지만, 그게 무엇이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던 무당의 대목이 떠오른다.
그래서인지 빨간빛의 오해와 증오가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기리고>의 서사 안에서 오히려 죽음을 담보로 하는 ‘소원’이 무겁다. 헤아릴 수 없는 영역으로까지 우리를 연결하는 ‘믿음’과 직결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뒤틀리는 시공간을 연상케 하는 연출은 꿈속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 <인셉션>을 떠오르게 하고, 절박한 매 순간을 보여주는 신예배우들의 실감 나는 연기는 금방 깊은 영적 세상으로까지 동화되도록 한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 <기리고>의 다음 시즌 소식도 얼른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