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윤동주의 <사랑스런 추억>에서 문장을 빌려와 지어보았습니다.
머리가 복잡한 요즘입니다. 글을 쓰러 도서관에 왔는데 하루 종일 쓰다가 엎기만을 반복했습니다. 그냥 솔직하게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다짐하니 그래도 조금씩 손이 움직이네요. 보통은 내용을 다 쓰고 제목을 짓는 편인데, 이번 글은 왜인지 꼭 저 제목으로 된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요즘은 정말로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잘 살고 싶은데, 그러나 삶이 엉망이라 생각하면 길을 잃는 기분입니다.
낮이고 밤이고 그저 동네를 걸어 다녀요. 어제도 거의 두 시간을 휘청휘청 걸었습니다. 그리고 매달리듯이 이런저런 글을 찾아 읽습니다. 대등한 위치에서 사랑하지 않고 자꾸 매달려버리는 것, 그게 나의 오래된 문제라는 걸 잘 아는데도요. 사실상 이게 요즘 제 일과의 전부입니다.
최근에 이런 좋은 드라마를 챙겨보고 있기도 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나는 싸우고 있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무가치. 자신의 무가치함을 방치하지 않고 싸우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로 이미 강한 거겠죠.
또, 요즘 저는 편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친구에게, 가족에게 손 편지를 한 번씩 써서 건네보기도 했어요. 작년 이맘때 서간문을 기고하면서 이런 말을 썼더라고요. 편지를 쓰는 건 힘들다고, 내 이야기를 짧게 탁 풀어놓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하지만 요새는 또 편지가 좋아진 거예요. 산문인 듯 시 같은 편지라는 것이 참 좋습니다.
특히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편지가 좋아요. 5월이 되었다고, 알고리즘에 <오월의 청춘> 속 희태의 편지가 뜨길래 다시 읽었어요. 길고 긴 이야기와 마음을 몇 개의 문장으로 눌러 담아 전할 수 있는 게 참 좋다고 생각해요.
영화 <파반느> 속 미정의 편지도 정말 좋아해요.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고아성 배우의 나레이션 부분이 너무 좋아서 두어 번 돌려보고 편지 내용을 조금 메모해 두기도 했어요.
미정은 이렇게 설명하더라고요. 경록이 어둠 속에 있던 자기를 불러세워 같이 있어 주었다고. 하지만 좋은 순간들이 쌓여갈수록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고. 초조해지고, 괴로워졌다고.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어요. 나는 잠들기 전까지 당신을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 당신을 그리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을 떠났습니다.'
정말 모순적이지만, 인간만이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아닐까요? 흔히 말하는 잠수이별(...)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쭉 본다면 분명 미정의 감정선을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미정은 그냥 간절하게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미정은 요한의 소식을 듣고 어둠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음속 깊이 어둠을 지닌 인간은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일지.
저도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시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단정해버리면 삶 자체가 더는 성립되지 않더라고요. 그러니 그냥 믿어야겠죠. 헤어 나올 수도 있다고. 미정은 더 강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경록을 떠남으로써. 그 모순적이고 복잡했던 관계로 인해서요.
사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주절주절 쓰고 있는지 저도 잘 몰랐는데요. 여기까지 쓰고 나니 알 것 같아요. 나의 결론은, 나를 지키고 싶어요. 어떻게든지. 나를 지키고, 나를 용서하고 싶어요.
가치 있어지는 것. 밝음으로 나아가는 것. 같이 있을 누군가.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무가치함과 싸울 수 있는 힘. 혼자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것. 그런 것들은 지금의 제게 간절히 필요합니다.
아까에 비해 머릿속이 꽤 정리된 듯해요. 독자에게 친절한 글은 아니지만, 이걸 쓰는 동안 오늘의 제가 조금 살아났으면 그걸로 됐다고 너그러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글을 남기고 저는 다시 돌아가려고요. 오래 거기 남아있기를 빕니다.
원래부터 내 길이 있는 게 아니라 가다보면 어찌어찌 내 길이 되는 거야
장기하 - 그건 니 생각이고 中
이 글을 읽고 생각난, 좋아하는 노래 가사를 공유합니다.
삶이 엉망이라 생각하면 길을 잃는 기분이라고 하셨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그런 길이란 애초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진 님의 상황이 정확히 무엇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휘청이듯 걸어도 괜찮고,
그 걸음도 결국 나만의 길이 될 거라고
저는 문득 믿어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지 모른 채 쓰셨던 이 글이
나를 지키고 싶은 또 다른 사람의 마음에
현진 님의 이야기를 아스라이 닿게 해 준 것처럼요.
그리고 그 마음 또한 조금이나마 살아나게 해준 것처럼요.
저는 '예술은 인간을 사유하게 하는 매개체'라는 슬로건을 표방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무언가를 접하고 애호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현진님은 무가치함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작 저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면 책이든, 영화든 가장 먼저 저버리고 스스로에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것에 눈 먼 장님이나 다름 없습니다.
현진님의 글을 읽으니 저녁에는 단편 영화라도 한편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느낀 건, 글쓰기가 사람을 치유하기도 한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그 이유가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의 생각이 정리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글이나 일기를 쓰다 보면 흐릿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미처 몰랐던 생각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쉽게 글쓰기를 놓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이 글을 통해서도 결국 글쓰기가 또 한 사람을 살리고 있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 글을 읽고 나니 현진님과 제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마치 마주보고 앉아 혹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눈 것만 같아 마음이 풍족해집니다. 삶에서 방황을 겪으실 때든, 삶이 행복하실 때든 자주 글 써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