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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1.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순간, 강렬히 가지고 싶은 것이 생긴다면? 그건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일 지도 모른다.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2022)'는 삶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꿈을 찾게 된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1957년, 전쟁에 나가 소식이 끊긴 남편을 10여 년째 기다리던 해리스 씨에게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런던의 반지하 집에서 살아가던 해리스 씨는 남의 집 청소를 해주며 돈을 모았다. 중년의 그녀는 가진 게 많지 않아도 행복했다. 남편을 다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희망을 품던 그녀는 친구에게 편지를 대신 읽어달라 부탁한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르고, 친구는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전해 준다.
젊은 시절을 함께한 이의 부고. 살아가는 이유였던 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된 해리스 씨는 실의에 빠진다. 주변인의 도움으로 일을 계속 이어 나가지만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마치 배를 가른 저금통처럼.
부잣집 사모님의 집을 청소해 주던 어느 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레스를 보게 된다. 값비싼 디올 드레스는 꼭 천사의 날개 같아서, 걸치는 순간 자유롭게 날아오를 것만 같다. 당시 디올은 기성복을 만들지 않았고 오로지 상류층만을 위한 '맞춤복'을 고집했기에, 해리스 씨는 직접 파리에 있는 디올 매장에 가서 드레스를 사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 생각한 그녀 앞에 강렬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드레스가 나타났고, 그건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과도 같았다. 두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혈색이 도는 해리스 씨를 보고, 역설적으로 내가 한참 우울하고 힘들어했던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어둠 속의 물보라처럼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욕망이랄 것이 사라졌고, 삶의 이유를 찾지 못했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부럽다. 일말의 희망이라도 품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게.'라는 생각을 할 만큼 모든 의욕이 없어진 때였다.
이별 직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운 것처럼, 무언가를 잃고 나면 다시 채우는 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해리스 씨가 드레스를 입겠다는 목표 하나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을 때, 그녀가 삶의 이유를 찾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쥔 것처럼 보였다.
해리스 씨는 가정부 일과 더불어 수선 일까지 하고 로또에 당첨되며 거짓말처럼 파리에 갈 만큼의 돈을 모았지만, 친구와 경마장에 갔다가 욕심을 내어 돈을 잃게 된다. 디올 드레스를 포기하고 자책하는 그녀에게 실낱같은 빛 한줄기가 내려오는데, 바로 남편의 연금이었다. 그녀는 기적처럼 기운을 차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디올 드레스 한 벌' 사는 여정이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파리는 해리스 씨를 마냥 반기지만은 않았다.
2. 드레스가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
디올의 이인자와 다름없는 직원은 해리스 씨를 반기지 않고 매장에서 쫓아내려고 한다. 그러자, 해리스 씨는 가방에서 돈을 꺼내며 항의한다.
"나도 드레스를 살 돈이 있다고요."
직원은 겉모습만 보고 해리스 씨가 디올 드레스를 살 돈이 없다고 판단한 거였다. 정확히는 '그녀같은 서민'에게 드레스를 파는 건 디올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상황을 지켜보던 다른 직원 루카스와 램버트 후작의 도움으로 디올 패션쇼를 관람하게 되고, 마음에 드는 드레스에 번호를 붙일 수 있게 된다.
서민인 해리스 씨가 드레스를 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손님은 일부러 해리스 씨가 찜한 드레스를 사버린다. 해리스 씨는 약간의 아쉬움을 머금지만 금세 털어버리곤 두 번째로 찜해둔 드레스라도 사겠다고 결심한다. 해리스 씨의 원대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싶던 때 청천벽력 같은 말이 들려온다.
"저희 옷은 다 맞춤 제작이라서 시간이 걸려요."
원칙상 만들어진 옷을 판매할 수 없고, 디자이너가 직접 며칠에 걸쳐 맞춤 드레스를 제작해 준다는 거다. 해리스 씨는 파리에 더 체류할 돈도, 옷도, 숙소도 없었다.
다행히 친절한 직원 루카스의 도움으로 머물 집을 찾게 되었고, 일주일간 파리에서의 새 삶이 펼쳐진다.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고 공연을 보러 가자고 얘기하는 후작. 해리스 씨는 얼어붙은 마음이 다시금 수줍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해리스 씨에게 일주일은 그저 드레스를 맞추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그녀 자신을 돌아보고 돌볼 기회였을 지도 모른다. 남편을 기다리면서, 남의 집 청소를 해주면서 살아가던 그녀. 평생 남을 위해 살아가던 그녀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기 시작했다.
늘 런던에만 머물던 그녀는 파리의 밤거리를 거닐게 되고, 10여 년간 소식 없는 남편만 기다리던 나날을 훌훌 날려버리곤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된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한층 더 용기 있고 대담해진다. 경영난을 이유로 직원을 대거 해고하려는 디올 회장을 찾아가 항의하고, 그녀를 도와주던 직원 루카스에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루카스는 해리스 씨에 힘입어 경영난을 해결할 방안을 얘기한다. 상류층을 위한 맞춤복만 고집하지 말고, 모두를 위한 기성복도 만들어보자고, 회장을 설득한다.
회장이 루카스의 의견에 수긍하며 디올 직원들은 해고 위기에서 벗어난다. 영국에서 온 중년 여자가 디올의 앞날을 바꿨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알았을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한다 한들 상관없다.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부조리에 참지 않고 소리 내는 것. 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일주일을 보내고, 해리스 씨는 그토록 원했던 드레스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간다. 전과는 달리 받지 못한 임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더욱더 당당한 사람이 되었다지만, 헛헛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는 가정부로 일하던 집 주인인 젊은 여자에게 드레스를 빌려주기까지 한다. 마치 물결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초록빛 원피스는 여자에게 꼭 맞는다.
그런데, 여자가 드레스를 태워 먹는다. 어떤 손해배상도 없고 그저 끝자락이 그을린 드레스와 쪽지 하나만 돌아올 뿐. 해리스 씨는 디올 드레스를 깊은 물 속으로 던져버린다.
인생 제2막을 열어주나 싶었던 드레스. 그랬던 드레스가 불에 타면서 입지도 못하는, 싸구려 옷보다도 못 한 존재가 되었다. 해리스 씨는 일도 나가지 않고 내내 누워있기만을 한다. 그런 와중 디올로부터 선물이 도착하는데, 그건 바로 그녀가 경매에서 첫 번째로 찜한 드레스였다. 디올 직원들이 해리스 씨의 드레스가 불탄 사실을 알고 그녀를 위로하고자 드레스를 보내온 것이었다.
해리스 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넘버 '1'을 매겼던 드레스보다도 디올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그들이 함께했던 날들을 기억해 주고, 그녀를 위로해 준다는 것. 그녀에겐 그것이 그 어떤 명품 드레스보다도 근사한 것이었다.
후작과의 사랑은 헤프닝으로 끝이 났고, 빌려준 드레스도 날려 먹게 되었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녀에겐 집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무엇보다 변화한 그녀 자신이 있으니까 말이다.
3. 옷감을 고르는 시간.
사별한 50대 여성인 해리스 씨는 드레스를 통해 주체성을 되찾았다. 손재주를 살려 수선일을 시작했고, 파리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앞날을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누군가는 가난하고 나이 든 그녀가 명품 드레스를 입겠다 했을 때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런 건 부잣집 사모님들의 몫이라고. 다 늙어서 드레스를 언제 입을 거냐고. 하지만 해리스 씨는 달랐다. 사람들이 함부로 가능성을 재단할 때, 그녀는 자신이 입고 싶은 옷, 그리하여 원하는 삶을 '재단' 해나갔다.
나는 이 영화를 엄마와 함께 보기 위해 구매했다. 당시 엄마는 억울하게 직장을 관두게 되어서 많이 힘들어했다. 눈에 띄게 수척해진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엄마는 일을 구하지 못할까 봐 무서워했고, 자꾸만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실제로 사회는 50대 여성에게 냉담하니까, 엄마의 걱정이 지극히 현실적이라 나도 덩달아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가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지금껏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은 거다.'라는 말을 믿어왔다. 그런데 '늦었다'의 기준이 대체 뭘까? 나는 그저 남들이 얘기하는 '기준'에 따라 움직여왔음을, 영화를 통해 깨달았다. 인스타그램, 유튜브에서 누군가 떠들어대는 인생 조언을 들으며 침묵의 나선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들에 따르면 내 가치관의 상당수가 틀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셀럽이,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정답'이라 하니까 그것이 절대적인 믿음 같아 보였다.
해리스 씨를 변화시킨 건 값비싼 디올 드레스가 아니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그녀 자체로 귀한 존재였으니까. 중요한 건 결국 내가 옳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일이었다.
나 스스로를 귀히 여기는 믿음이었다.
성장 서사는 젊은이의 몫이라고 생각해 왔던 지난 시간을 반성하게 만드는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성장을 거듭한다. 우리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바뀔 수 있다. 1957년, 런던에서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해리스 씨처럼. 나는,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멈춰서 옷감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해리스 씨가 파리에서 보낸 일주일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옷을 짓듯 가능성을 재단해 나가자. 침묵 속을 맴도는 대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자. 내 발걸음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