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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조명]

어떤 대상의 의의나 가치를 다시 들추어 살핌


익숙한 대상과 사건들이 다시 새롭게 보이는 중입니다

이 글은 당연함에 가려졌던 그 가치를 재조명한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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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를 빼고 교정 중이다. 교정 4개월 차에 접어든 나는 이제야 겨우 브라켓(치아 교정 시 교정 와이어를 장착하기 위해 치아에 붙이는 장치물)에 익숙해진 기분이다. 보다 장기적인 구강 건강을 위해 내린 결정이긴 하나 이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브라켓을 달고 최소 1년 반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정말이지 신경쓰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양치 시간이 평소보다 배로 걸린다는 고충이 있다. 1차로는 일반 칫솔로 요리조리 브라켓을 피해서 이를 닦고, 2차로는 모 가운데가 V컷으로 파인 교정용 칫솔로 브라켓을 한 번 더 닦아 줘야 한다. 세면대 유리 앞에서 놀랄 때가 얼마나 많은지. 한껏 옹졸하게 말려들어 간 윗입술 때문에 현타가 와서 웃었다가 또 그 모습에 깜짝 놀라서 웃지도 못한다. 웃고 싶은데 웃기 싫다.


이 정도면 사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입술도 쉽게 건조해진다. 립밤을 발라도 발라도 끝이 없다. 가장 최악은 무의식 중에 입술을 뗐다가 건조해진 아랫입술의 속살이 브라켓에 쩍 하고 찍히는 것이다. 그 고통에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교정을 갓 시작한 첫 달은 우울감이 정점을 찍었었다. 자질구레한 고비들이 삶의 질을 은근히 떨어뜨렸다.


허나 정말로 슬픈 것은 저것들이 슬픈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를 가장 비통하게 만든 끝판왕은 바로 ‘식사’였다. 교정은 먹는 즐거움과 함께 씹는 낙까지 앗아갔다. 음식을 터프하게 한입 가득 베어 물고 뜯어먹는 일이 삶에 있어 얼마나 큰 낙인지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실감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는 모 제약회사의 광고 카피마저 떠올라 날 슬프게 만든다.


와이어를 전보다 더 굵은 것으로 교체하는 날이면 뭔가를 씹고 싶다는 의욕이 싹 달아난다. 고작 철사 한 줄이 브라켓 사이에 들어갔을 뿐인데 치아에 가해지는 압력은 어마어마하다. 퍼져 있던 게 바짝 조여지는 느낌이라 조금만 힘을 줘서 씹어도 이가 전부 튕겨져 나갈 듯한 고통이 전해진다. 새 와이어로 교체한 이삼일 동안은 양치하는 일에도 눈물을 줄줄 흘렸다. 단무지 하나 잘못 씹었다가 입안에 번개가 치는 일을 겪고 서러워진 나는 진지하게 식음을 전폐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민을 했다는 거지 식음을 전폐한 건 아니다. 잘 못 먹는 건 못 먹는 거고 어떻게든 또 먹을 궁리를 해야 했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의 생존 의지는 참 강인하면서도 징그러운 것 같다. 별안간 문 하나가 닫혀 버린 인간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우주도 나름 선심을 쓰려 한다. ‘씹는 낙이 사라졌다고? 그럼 다른 데서 기쁨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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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이 또 벌컥. 이번엔 ‘죽’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지친 마음으로 손잡이를 돌렸더니 글쎄 죽이 나왔다. 내게 그것은 심심·삼삼·허옇다의 영역에 있는, 굳이 애써서 절대 사먹지 않는 음식 중 하나인데 죽이라니. 문지방에 발을 살짝 걸쳐놓고 넘어갈까 말까 고민했다. 그러다 어떤 예감이 들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죽집에 가면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라고. 재밌는 일도 생길 거라고.

 

직감을 따라간 곳은 ‘ㅂ’으로 시작하는 프랜차이즈 죽집 매장이었다. 키오스크 화면으로 튀어 오르는 이 알록달록한 메뉴들이 정녕 죽인가 싶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 나. 내가 죽을  등한시한 세월 동안 이쪽 세상에서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 장애가 올 정도로 종류가 다양해 메뉴 화면을 몇 번이나 넘겨 봤는지 모르겠다. 뭐 먹지 굴레에서 나를 해방시켜 준 것은 바로 ‘반반죽’이었다. 반반 메뉴라고는 짬짜면이나 피자 치킨 정도밖에 모르는 인간에게 반반죽의 등장은 최초의 불씨를 목격한 인류 조상의 심경처럼 짜릿하고 강렬한 것이었다. 유, 유레카...!


참깨계란새우죽이 반반의 모습으로 식탁에 올랐다. 정갈한 상차림에 마음을 뺏긴 나는 죽이 영롱해 보여서 감탄했다. 죽은 예뻤고 심지어 화사했다. 고소하고 부드럽고 간간한 쌀알을 한입 넘기자 속이 뜨끈해졌다. 그간의 맘고생을 어루만져 주기라도 하듯 죽은 내게 평온을 안겨 주었다. 반반죽의 여운은 다시 한 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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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스럽던 새우죽을 한 그릇으로 풍풍 떠먹고 싶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품자 세계는 자꾸 열렸다. 지난번에는 고민 대상이 메뉴였다면 이번에는 ‘죽의 갈기’였다. 일반죽과 미음 사이에 껴 있는 중간 갈기의 죽이 내 흥미를 돋구었다. 중간 갈기의 새우죽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세 번째 와이어를 장착한 인간은 생각했다. 새우는 무사할 거라 생각했던 나는 새우까지 곱게 갈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거 하나만 슬펐고 나머지는 행복했다. 씹을 것도 없이 꿀떡꿀떡 넘어갔다. 얼얼한 이로도 잘만 먹었다.


근심이 사라지고 배가 부르니 주변이 보였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걸 지켜봤다. 매장 안은 작업복을 입고 늦은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과 모임 중인 어르신들과 아빠와 딸과 주문건을 픽업하러 온 손님들로 생기가 넘쳤다. 나도 그들 사이에 끼어 죽집 풍경의 한 일원으로서 잠시 머물렀다.

 

“무탈하자”가 인사말이 된 별의별 일 가득한 세상에서 이토록 소소한 죽의 세계는 어떤 효용을 가질까. 세상은 내 죽 얘기에 관심 없겠지만 그러려니 한다. 나는 그저 지금 내 모습에서 아주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랄 뿐이니까. 원치 않게 갑자기 문이 덜컥 열리고 닫혀도 그 앞에서 조금은 의연한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별안간 열린 세계에도 이쯤이야 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싶다. 그런 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현실은 겨우 교정 후배에게 먹을 만한 죽 메뉴와 쌀알 곱기를 3단계로 추천해 줄 수 있는 정도라 웃음만 나온다. 하지만 뭐 어떤가. 이렇게 얕게 넓어지는 세상도 있는 거지. 고작 그 정도의 세상일지라도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세계로서 분명 닿을 것이다. 별안간, 어쩌다, 뭉클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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