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맵핑히틀러>를 보았다. 블랙코미디를 특별히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공연장을 찾았는데도 결과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운 관람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나면 괜히 들뜨곤 하기에, 이번에도 귀가하는 길에 여기저기 나의 흥분을 전했다. 채팅방에서는 대략 이런 대화가 오갔다.


- 연극을 하나 봤는데 정말 재밌었음.

- 오, 그래? 무슨 내용이었는데?

- 21세기 한국에 히틀러가 나타나는 내용.

- 뭐?


내가 말하고도 헛웃음이 나왔다. 관람 전 시놉시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 당황스러운 설정이 어떤 전개로 이어질지 의심스러우면서도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정만 신박할 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도 있는 연극이었다.

 

 

맵핑히틀러_포스터_최종.jpg

 

 

<맵핑히틀러>는 평범한 공시생 유튜버 '한들호'가 10년 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기까지, 정치적으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다. 상황은 묵직하지만 극 전반에 흐르는 코믹하고 속도감 있는 분위기가 적절히 균형을 잡아주었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몹시 비현실적이고, 한들호와 그가 창당한 '공격개시당'의 논리도 죄다 허황되고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히틀러의 역사를 현대 한국 사회에 촘촘하게 '맵핑'시킨 솜씨와, 극 자체의 넘치는 에너지가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한들호, 고보슬, 최래민, 정가람이라는 인물들의 이름부터, '나의 투쟁'이 아닌 '나의 복음', 유대인이 아닌 '무소인', 기타 실제 사건들의 재현까지. 가벼운 듯하면서도 그 안에 뼈가 있는, 세련된 변주와 풍자가 이어진다.


때문에 히틀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어느 정도 알고 간다면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잘 모르고 본다면, 이 연극을 통해 그의 만행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

 

 

맵핑히틀러-스틸-1.jpg

 

 

위와 같은 기획 자체가 너무나 의미 있게 다가온 작품이었고, 그 외에 연기, 연출도 모두 훌륭했다. 특히 초반만 해도 친근하고 유쾌해 보였던 서른 살 청년과 친구들이, 점차 광기 어린 모습으로 변하기까지의 과정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에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캐스팅보드 앞으로 가 배우들의 이름을 기억해 두었을 정도로 말이다.


연출 면에서도 인상적인 요소가 많았다. 특히 연극 안에 영상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를 결합한 부분에서 이 극에 한층 더 매료되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들호의 결정적인 연설 장면이었다. 뒤편 스크린의 영상은 무대 위 움직임보다 1~2초의 딜레이를 두며 송출되었는데, 그래서인지 라이브 방송이라는 설정이 더 실감 났다.

 

마치 현재 우리가 20세기 히틀러의 자료를 보듯, 미래의 사람이 되어 한들호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여러모로 인상적인 연극적 체험들을 할 수 있었다.

 

 

[크기변환]1.jpg

 

 

사실 극이 고조되어 갈수록 속으로 계속 '말도 안 돼' 하며 경악했던 것 같다. 저 말도 안 되는 선동에 저렇게 온 국민이 넘어간다고? 너무 억지 아닌가?


그러나 바로 그때마다 불과 수십 년 전 인류의 역사가 떠올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자문하게 되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무려 6백만 명의 사람을 학살한 건 말이 되는 일이었나? 또, 한들호를 둘러싼 일들은 정말 비현실적이기만 한가?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자신의 논리에 갇혀 혹은 의도적으로 타인을 선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무조건적인 배척과 혐오가 만연하고, 폐쇄적인 인터넷 환경을 통해 그것이 강화되는 요즘 사회와 잘 맞물린다. 그런 점에서 이 연극은 과거에 대한 비판, 그리고 현재에 대한 풍자와 경고를 함께 잘 녹여낸 작품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끔찍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 그것이 지금도 비슷한 형태로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는 손쉬운 혐오와 순응보다는, 치열한 사유와 감시가 언제나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맵핑히틀러>는 그 노력의 일환임이 틀림없다.

 

 

 

컬쳐리스트 태그.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