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스노우글로브를 좋아한다. 둥근 유리구 안에 아기자기한 피규어들이 들어있고, 살짝 흔들면 흰 눈이 살랑살랑 내린다. 햇살에 반짝이는 유리구 안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하얀 조각들을 바라보면 마치 일렁이는 불꽃이나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 넋을 놓게 된다. 관광지 기념품샵에서 파는 것부터 마치 작품처럼 섬세하게 만들어진 것까지 그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내 마음에 쏙 들어오는 좋은 스노우글로브가 가지고 싶어 몇 년 전엔 해외의 전문 사이트에서 직구를 하기도 했다. 겨울 숲이 배경인 제품이었는데, 앙상한 나무들과 그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그리고 작은 사슴 두 마리까지 서늘한 겨울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었다.


스노우글로브를 가지고 놀다 보면 나는 그 작은 세계의 신이 된다. 어느 위치에 두느냐에 따라 낮과 밤을 만들 수도 있고, 얼마나 세차게 흔드냐에 따라 그 날의 날씨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문득, 정말 신이 있어서 날 이런 식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친다. 나라는 사람은 스노우글로브 자체고, 나의 세계는 모두 이 안에 담겨 있는 상상을 해본다. 모든 사람이 스노우글로브고, 길 거리를 보면 수 많은 스노우글로브들이 걷고, 서로 이야기하고, 부딪히며 살아가는 세상이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코미디 공상과학 영화 같으면서도 문득 이 상상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인간은 모두 자기 안에 개별적인 세계를 지니고 있다. 그 안은 스노우글로브 속 세상처럼 어떤 날은 맑다가 눈보라가 치기도 하고, 어두워졌다 밝아지길 반복한다. 대개의 시간은 그저 존재하지만, 때때로는 누군가의 눈빛을 받아내기도 한다. 마치 진열장 위의 작은 유리구가 애정, 무관심, 혹은 저런 것을 왜 돈 주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경멸의 시선을 받듯이 말이다. 한 인간의 세계는 유리 속에 갇힌 가짜 눈처럼 육체라는 껍데기를 쓰고 존재한다.

 

 

[크기변환]jamie-street-PzGiZBpv72Y-unsplash.jpg

 


스노우글로브와 인간의 내면세계 속 차이점은 실제로 목격할 수 있냐의 여부이다. 유리구 안의 세상은 어찌되었던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제 아무리 자세하고 깊게 설명을 한다 해도 절대 볼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그 둘의 공통점은, 둘 다 그 세계를 타인이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노우글로브 속 눈보라를 떠올려보자. 우린 그것을 볼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서 눈이 흩날리는 흐름을 겪을 수는 없다. 이 정도로 흔들면 눈이 얼마나 세게 내릴지 단지 예측하는 것만 가능할 뿐, 경험할 수는 없다. 유리구를 깬다면 내부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세계는 완벽히 파괴된 이후이다.


사람의 정신세계 또한 타인이 직접 겪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스노우글로브를 흔들어도 그 안의 눈의 흐름은 매번 다른데, 같은 일을 경험했다 해서 모든 인간이 같은 감정을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이 한 인간이 겪은 모든 일을 똑같이 겪는다는 가정부터가 말이 안되지만 말이다. 결국 타인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꽤나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의 행동을 모두 다 이해할 수도, 나의 모든 것을 이해 받을 수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의 아주 큰 부분이 인간관계이고, 그 관계들은 늘 크고 작은 불화가 끊이지 않는 것 또한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안에 직접 걸어들어가지도, 겪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세계를 마주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스노우글로브가 떠올랐다. 어떤 방식으로 눈보라가 흩날리고 있던, 그것이 받는 눈빛은 애정, 무관심, 혹은 경멸이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결국 타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에게 어떤 눈빛을 보낼지 선택하는 것이다. 그가 완벽히 이해될 때까지 몰아치거나 나에게 맞추기 위해 다그치는 것이 아닌, 그저 나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다. 한 스노우글로브가 다른 스노우글로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다정은 결국 완벽한 동일화나 예측이 아닌 애정 어린 시선일 뿐이다.


책상 위에 놓인 스노우글로브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가만히 내려 둔 탓일까, 그 세계는 참 평화로워 보인다. 괜시리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다보니, 유리구 위에 쌓인 먼지가 보인다. 이제서야 눈에 띈 먼지를 닦아내니 그 안의 세상이 더욱 밝게 빛나 보인다. 아마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겠지. 그래, 앞으로도 종종 먼지를 닦아주어야겠다. 나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아름다운 스노우글로브가 될 수 있게 말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