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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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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나의 두 원수 집안, 몬테규와 캐플릿의 자식들이 나누는 사랑 이야기는 수 세기 동안 비극의 대명사로 전해져 왔다. 프랑스 뮤지컬로 시작하여 2009년 한국 초연 이후 17년 만에 재연되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을 이 비극을 다시 비춘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영원할 비극을 기대하는 모순적인 마음으로 한전아트센터를 찾았다.

 

 

 

점멸하는 별빛과 배회하는 죽음


  

<로미오와 줄리엣>은 추상적인 가치를 무대 위에 실체화한다.

 

무대 배경을 가득 채운 찬란한 ‘별빛’ 조명은 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빛은 인물들의 감정 변화에 따라 점멸을 반복하며 불안정한 운명을 암시한다. 이 빛의 점멸 곁에는 언제나 형상화된 ‘죽음’이 배회하고 있다.

 

죽음을 맡은 배우는 극 내내 인물들의 곁을 맴돌며 운명의 종착점을 암시한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혹은 인물들이 스스로 비극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갈수록 ‘죽음’의 몸짓은 부풀어 오르고 격렬해진다. 벤볼리오가 전해주지 못한 편지를 떨어뜨린 순간이나 두 주인공의 자살 장면에서, 죽음은 더 이상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이들의 운명을 집어삼키는 능동적인 존재로 거리를 좁혀온다.

 

이러한 긴장감은 가문의 갈등이 심화할 때 더욱 역동적으로 변하는 댄서들의 동선으로 이어지며, 이 비극이 파국을 향해 멈출 수 없는 속도로 치닫고 있음을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

 

 

 

사랑, 자유, 그리고 죽음


 

극이 진행될수록 로미오와 줄리엣의 감정은 전형적인 ‘사랑’의 정의에서 벗어난다.

 

열여섯 살과 스무 살, 주변으로부터 ‘영원한 사랑은 없다’라며 미성숙함을 지적받던 이들이 택한 결말은 역설적이다. 줄리엣은 자신의 생을 스스로 마감함으로써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원한 사랑’을 시간 속에 박제한다. 영원의 길이를 줄임으로써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셈이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사랑 그 자체보다, 자신들의 의지를 가문과 세상에 증명할 강력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로미오 역시 마찬가지다. 방황하며 주변에 휩쓸리던 초반의 수동적인 모습과 달리, 그가 그토록 외치던 ‘자유’는 죽음을 통해 완성된다. 가문이 얽힌 증오를 끊어내기 위해 스스로 사랑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끝을 책임지기 위해 단검을 드는 행위는 단순한 감정의 폭주라기보다 주체적인 자기 결정에 가깝다. 이들에게 사랑은 자유를 향한 탈출구였으며, 죽음은 그 자유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

 

 

 

죽음을 통한 완성


 

누군가는 이들의 자살을 미성숙한 도피로 보겠지만, 실상은 다르다. 몬테규와 캐플릿 가문이 각기 다른 삶과 결혼을 강요하며 개인의 의지를 억압할 때, 연인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영역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죽음’뿐이었다.

 

자유를 갈망하던 로미오와 영원을 원하던 줄리엣은 결국 죽음이라는 같은 결말에서 만난다. 이들에게 사랑과 자유는 오직 죽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비극과 삶이 뗄 수 없는 숙명이라면, 이들은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함으로써 가문이 정해준 운명에 균열을 내고 비로소 주체적인 인간으로 남기를 택한 것이다.

    

이로써 아름다운 도시 베로나의 증오는 두 연인의 죽음이라는 가장 능동적인 희생 앞에서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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