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소녀, 모모코와 이치고가 만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모모코는 이치고를 만나고 조금씩 마음의 벽을 허물기 시작한다. 서로 다른 색을 지닌 두 세계가 만나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2000년대 초반 일본 특유의 감성이 농축된 듯한, 노란빛이 짙게 감도는 이른바 오줌 필터의 인상이 강하게 남는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본식 만담 개그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뇌리에 깊이 박히는 OST는 물론 등장인물의 가지각색 다채로운 매력까지 전부 더해져 작품이 완성되어 간다.
단순히 소녀들의 우정만을 그려내는 데 그치지 않고 뇌를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명대사들 또한 돋보인다. 그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영화를 되새겨본다.
로코코, 그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를 지배하던 가장 우아하고 사치스러웠던 시대. 진지했던 바로크 시대 이후에 출현한 꽤 경박했던 예술 스타일.
평론가들은 이 시대의 예술을 지나치게 달콤하고 안이하며, 겉치레가 요란하고 저질스럽고, 음란하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달콤한 과자 같은 거잖아요. 달콤한 꿈의 세계에 푹 빠져들어요! 그것이 로코코의 기본 정신입니다.
나 역시 로코코에 몸을 바친 여자. 프릴로 장식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시골길을 산책... 하고 싶지만 무리네요.
여기는 21세기의 이바라키현. 시골이라기보다는 그냥 촌이라고 해두자, 저는 여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모코는 과거 프랑스 로코코의 미학을 동경해 온 소녀로 타인의 눈에는 다소 과하게 보일지도 모를, 너풀너풀한 프릴이 겹겹이 얹힌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이른바 ’롤리타 패션‘이라 불리는 옷차림은 일본에서 하나의 패션 장르로 자리 잡았지만, 모모코에게는 단순히 취향을 넘어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방식에 가깝다.
자신만의 내면 세계를 사랑하고 있는 모모코는, 내게 유난히 단단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오롯이 자신의 애정으로 완전한 세계를 빚어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여기서 말하는 완전함이란 결코 흠 없는 완전함이 아니다. 애정을 켜켜이 쌓아 올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밀도를 말한다. 냉소 어린 시선을 견뎌야 하고 깊이 사랑하는 만큼 상처받을 수 있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특정 무언가에 흥미를 가득 품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부풀어 올라와 있는 상대를 보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이 싱그러움을 느낀다. 깊이 사랑하고 아낌없이 애정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이 문득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 마음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시간을 요구하는지 알고 있기에, 오히려 좋아하는 감정이 싹틀 때면 아주 미세한 두려움의 떨림이 함께 따라오는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그릇이 있단다. 네 그릇은 달라, 비록 크지 않을지는 몰라도 예쁘고 훌륭한 그릇이야.
누구와도 다른 너의 길을 가도록 해. 네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을 꼭 찾게 될 테니까.
모모코의 할머니가 건넨 한마디, 반드시 큰 그릇이어야만 미래로 향하는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비록 크지 않더라도 예쁘고 훌륭한 그릇이면, 그만한 가치가 있고 나만의 고유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말.
누구와도 닮지 않은 자신만의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각할수록 기쁜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 나이기에 할 수 있는 일,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옷을 리폼하는 데 능한 모모코는 평소 매우 좋아하는 브랜드 ‘BABY, THE STARS SHINE BRIGHT' 일명 ‘베이비’ 매장에서 뜻밖의 디자인 제안을 받게 된다. 모모코는 자신의 취향과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끼지만 동시에 과거 마주한 적 없던 고민 앞에 서게 된다.
그녀는 예쁜 옷을 입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지만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단지 ’예쁜 옷을 입는 일‘에 머무는지 아니면 ‘예쁜 옷을 만드는 일’까지 닿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끝까지 파고들고 발전시켜 온 모모코에게조차 그 애정을 삶의 방향으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은 낯설고도 깊은 고민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분에 넘치는 행복이 눈앞에 있을 때 갑자기 깊은 병에 걸리곤 해요. 행복을 붙잡는 일은 불행에 안주하는 일보다 용기가 필요해.
이 말은 어린 시절, 행복을 찾아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엄마를 향해 모모코가 건넨 위로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말은 다시 모모코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브랜드 ‘베이비’의 디자인을 맡게 된다는 것은 더없이 큰 행복이었지만 모모코에게는 이를 온전히 붙잡을 용기가 필요했다.
행복이란 그저 다가오는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단순히 행복에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행복이란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동시에 한순간에 놓쳐버릴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행복은 준비된 사람에게 나직이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거창한 준비가 아니라, 조용히 마음을 다잡고 그것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
행복은 그렇게, 일상의 틈 사이로 스며들 듯 찾아온다. 모모코가 예기치 않게 이치고를 만나게 되었던 것처럼.
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혼자라고요. 혼자 태어나서, 혼자 생각하고, 혼자 죽어가요. 혼자서 살 수 없다니 그럼 나는 사람 말고 물벼룩이 될래요.
보고 싶어, 이치고.
인생은 혼자라고 줄곧 생각해 왔었는데…. 가족, 친구, 애인 전부 자신에게는 그저 사장, 담당자, 매니저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모모코는 이치고를 만나서 마음의 벽을 허물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누군가를 만나 생을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분명히 멋대로 기대하고 상심하며 귀한 감정을 소비하는 것보다, 혼자서 무엇이든 타파하며 독립적인 삶을 살 때 사람은 더욱 빛나며 타인이 자신을 우러러볼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나 마음을 주고 또 마음을 받는 것, 함께 어우러지는 것, 비록 그 상대가 견줄 수 없이 적은 수의 사람일지라도 그 값어치는 상당할 수 있다.
모모코는 이치고를 만나서 인생 처음으로 관계에 있어 배움을 얻는다.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고, 불행을 막아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런 기분이구나. 기쁨과 슬픔의 교차로가 모모코의 마음속을 휘젓고 다닌다.
이치고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의 통제 아래 놓여 있었고, 학교에서는 소심한 탓에 따돌림을 당했다. 슬픔으로 방황하던 이치고는 폭주족 ‘포니테일’의 리더에게 큰 위안을 얻고 폭주족의 일원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른바 ‘양키‘가 된 이치고는 아버지의 사업 영향으로 가짜 ‘베르사체’를 판매하게 된 모모코와 처음으로 대면한다.
자기를 버려야 어른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평생 어린이로 있겠어.
이 녀석, 모모코는 언제나 혼자 서 있어. 자기가 믿는 규칙을 지키면서 무리 지어 다니지 않으면 달리지도 못하는 너희 따위와 격이 다르다고.
모모코와 이치고를 보면서 느낀 건 두 사람은 이미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흔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를 둘러싼 담장을 허물고 감정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달랐다.
너무도 상반된 둘만의 완전한 세계가 합쳐져 더욱 아름다운 세계로 변모했다. 누군가를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신을 바꾸는 것보다, 그대로 거리낌없이 보여주는 ‘솔직함’이 상대와 자신을 잇는 관계라는 실에 있어 무엇보다 귀중하다고 느낀다.
나는 나의 세계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 내가 가진 생각과 그 중심을 둘러싼 온전한 세계를 바꾸지 않아도 된다. 성대하게 포장할 필요 없다. 모모코와 이치고가 각자 서로의 세계를 단단히 빚어내고 서로에게 내보였듯이, 자신의 세계를 세우고 가까운 상대에게 드러내어 보자.
비록 모두가 선망하는 주류에 속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본 모모코와 이치고는 반짝반짝 선명하게 빛이 났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막이 내려도 모모코는 사랑하는 로코코 세계 속에서 프릴을 어깨에 걸치며, 이치고는 바이크를 타고 시모츠마를 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곁을 조용히 지키며.
멋없고 유치해 보이고 유행에 뒤떨어진다고 한들 어떤가. 달콤한 상상을 하며 되고 싶은 자신을 마음껏 그려보자. 나의 인생이라는 버스의 종착역에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는 지금껏 수백 번 다잡고 수십 번 가꾸어 온 자신의 마음이 결정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