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작년 5월 말이었다.

   

약 8개월 동안 준비해온 연구 논문과 졸업 시험을 마친 나는 허탈함, 쓸쓸함, 후련함, 기쁨 등 오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시험 기간만 되면 맑아지는 날씨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우울한 기분을 없애고 싶어, 무작정 다음 날 떠나는 당일치기 기차표를 끊었다. 행선지는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였다. 그리고 갈 만한 여행지 계획을 세웠다.


출발 약 2시간 전인 아침 7시. 기차가 차고지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운행이 취소되었다.

 

"신이 가지말라는 계시인가?"라는 생각에 그냥 기숙사에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환불을 받든 대체편을 타든 일단 해결해보자는 생각에 매표소로 향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대체편은 이용할 수 있지만 환불은 기차 회사에 직접 연락해 봐야 가능한지 알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다음 대체편이 무엇인지 여쭤보았더니 한 번 갈아타서 약 2시간 30분이 걸리는 환승 루트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원래대로라면 직행으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고민 끝에 기차표 가격인 38파운드가 아까워서라도 가기로 마음먹었다.

 


IMG_6752.JPG

 

 

한국 기차와 달리, 영국 기차에서는 와이파이나 데이터가 잘 터지지 않아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음악을 듣는다. 여행길에 음악을 듣는 것은 여행하는 날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기억을 더 선명하게 남기는 나만의 방식이다.

 

화창한 날씨 때문이었는 지, 아니면 웨일즈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그날은 콜드플레이의 Viva La Vida와 Paradise가 떠올라, 그 노래들을 들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IMG_6756.jpg

 

 

도착했을 때는 이미 12시였다. 해는 쨍쨍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실패할 일이 없는 영국의 베트남 쌀국수 프랜차이즈인 Pho에 방문했다. 늘 그렇듯 음식은 특별할 것 없는 소고기 쌀국수 맛이었다.

 

 

IMG_6781.jpg

 

 

식사를 마친 뒤에는 웨일즈의 유명한 전통 디저트인 웰시 케이크를 사러 Fabulous라는 가게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붐비지는 않았다. 다음 날 친구들과 약속이 있어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을 만큼 구매했다. 웰시 케이크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스콘과 쿠키의 중간 식감과 맛이라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팬케이크나 호떡, 그리고 쿠키 사이 어딘가의 식감과 맛에 가까웠다.

 

 

IMG_6767.jpg

 

 

드디어 본격적으로 명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카디프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라고 하면 단연 카디프성이다. 기원전 1세기 부터 약 2,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카디프성은 과거의 웅장함과 화려함을 품고 있었다. 그렇게 약 2시간 동안 성 안밖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날이 좋아서인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소풍을 많이 나온 듯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IMG_6969.jpg

 

 

돌아가는 기차가 6시였기 때문에 나는 서둘러 두 번째 행선지로 향했다. 두 번째 목적지는 카디프 국립 박물관이었다. 소장품들은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당시 글과 씨름하며 공부만 하던 터라 시각적인 자극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래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방문하고 싶었다. 아주 유명하거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없었지만,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만나 웨일즈의 마스코트인 용과 관련된 조각상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IMG_6983.jpg

 

 

마지막 목적지는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와 카디프 베이였다. 시간 제약 때문에 갈까말까 고민했지만, 평소 즐겨보던 드라마 <닥터후>의 배경이기도 하고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라 직접 눈에 담고 싶어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IMG_7048.jpg

 

 

원래 계획과 달리 일정이 틀어져 카페에서 쉬는 시간이나 여유로운 시간이 줄어든 점은 아쉬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여행이었다.

 

러닝이나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이 계속 걷거나 뛰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머릿속이 정리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 다녔지만, 주변 풍경의 변화와 새로운 경험 덕분에 반복적인 일상과 학업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또한 늘 듣던 영어가 아닌 웨일즈어를 보며 또 다른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고, 처음 만난 가게 직원들과 성 직원들의 따뜻한 친절함 덕분에 웨일즈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웨일즈와 카디프의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