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공연 시작 90분 전이었다. 인스타그램을 보다 우연히 알게 된 이 작품은 내 작은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현대의 생산성 강박과 AI 시대의 소외라는 관점으로 비튼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작품을 모티브로 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을 3번 본 사람이기에 원작의 내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원작을 모티브로 한 다른 작품이 또 있다는 것이 정말 흥미로운 것이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요 인물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아니라 ‘고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그 설정은 나를 즉흥적으로 혜화로 향하게 하기 충분했다.
커튼 뒤에서 등장한 고도는 어딘가 초조하고 긴장되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AI를 연상케 하는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고도는 깜짝 놀라 두 손에 쥐고 있던 여러 장의 대본들을 공중으로 날려 버린다.
그 모습은 마치 이 작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빵빠레 같았다. 그렇게 사방으로 흩어진 대본들이 기존 낭독극의 형식을 타파하는 동시에 텅 빈 무대를 채우는 소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우는 이 종이들을 하나하나 주워서 낭독한다.
자신이 있는 이 공간이 어디이고, 왜 자신이 그곳에 있는 건지 알지 못하는 고도는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라며 자신을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목소리는 고도에게 투두리스트들을 수행할 것을 명한다. ‘감정 표출하기’, ‘다리 찢기’, ‘자신도 모르던 새로운 취향 발견하기’, ‘바지 속에 개미가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등 간단한 것으로부터 시작된 투두리스트는 점점 어려워지고 괴상해져 간다.
처음에 고도는 이를 이행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목소리는 고도가 투두리스트들을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한다. 엉겁결에, 억지로 계속해서 투두리스트를 하나씩 완수해나가던 고도는 점차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다음 투두리스트는 뭔지 신나게 묻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지쳐가고, 또다시 목소리에게 분노한다.
그러다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투두리스트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실존적 의미를 탐색하라는 것. 바로 이 부분이 극의 하이라이트 장면이었다. 고도는 모든 것의 유한성에 대해 고찰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다 죽는다. 또한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지금도 실은 아무 의미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고 성취하려고 발버둥 친다.
그리고 고도는 깨닫는다. 아무리 많은 것을 해내려고 노력한들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 그는 이 말을 서너 번 반복한다. 마치 그 말로 자신을 위로하는 듯이. 또한 결국 나도, 타인도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면, 굳이 타인의 눈치와 세상의 요구에 나를 맞추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는 해방 섞인 결론에 도달한다.
고도가 그러한 통찰을 깨닫고 나서, 목소리는 더 이상 먼저 투두리스트를 제시하지 않는다. 고도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투두리스트로 등록되고, 동시에 성취된다. 그리고 나서 목소리는 나가는 길을 보여주며 마지막 투두리스트를 제시한다. ‘존재하기’
고도가 투두리스트를 수행하는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떠오르게 한다.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때로는 그것이 힘겹고 비상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자의든, 타의든 결국 해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건 또 다른 투두리스트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작품은 투두리스트란 우리가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제시한다.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무언가가 내 투두리스트가 되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다.
또한 작품은 우리가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살아 있는 목적을 다한 것이므로, 무언가를 이루고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고 너무 힘들게 발버둥 칠 필요 없다며, 관객을 조용히 토닥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밸은 이렇게 말한다.
고도가 대체 뭘까요. 고도는 신일까요?
아니면 신의 구원을 상징하는 그 무엇?
아니면 '이상' 같은 추상적인 개념?
아니면 막대 끝에 달린 당근 같은 거?
희망 고문이나 공허한 약속?
이렇게 고도는 기존 작품들에서 신성시되거나 경외감의 대상, 혹은 예측 불가능하고 결코 알 수 없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고도는 그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청년의 모습이다. 그 반전적인 설정이 원작이 말하는 인생의 본질적인 허무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잔잔한 위로를 만든다. 나만 벅차고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위로.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는 고도를 기다리는 의미에 대해 제시한다면, <고도의 투두리스트>는 우리가 어떠한 고도를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고도가 사실은 사회가 나에게 바라는 고도가 아닐지 고민하게 한다.
생각해 보자, 당신의 고도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나 또한 매일 수많은 투두리스트를 헤쳐 나가는 또 한 명의 고도이다. 아직 나는 이 과정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이 작품이 와닿았다. 마치 번아웃 예방 주사를 맞은 느낌이랄까. 앞으로 투두리스트를 이뤄가며 지칠 때, 내가 기다리고 있는 그 고도가 과연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성을 찾을 것이다.
언젠가, 투두리스트를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괜히 미울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 투두리스트만큼은 정말 잘 이루고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충분히 대단하다고.
(사진 출처 : 인스타그램 @neverending_p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