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 회화, 사진 등 예술 분야는 물론 광고, 패션, 인테리어 등 일상으로도 확장된 초현실주의를 살펴본다.

전시 정보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2025.12.13 – 2026.03.08
전시 구성
제1장 오브제: ‘객관’과 ‘초현실’의 관계
제2장 회화: 시각예술의 새로운 문
제3장 사진: 변용하는 이미지
제4장 광고: ‘기능’하는 구성
제5장 패션: 욕망에 대한 환기
제6장 인테리어: 실내 공간의 변용
누구나 손쉽게 생성형 AI 이미지를 찍어내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젤리 질감의 키보드 ASMR 영상, 구름의 단면을 보는 등 다양한 상상력을 AI를 통해 구현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에서 발견되는 왜곡된 텍스트와 맥락을 벗어난 영상들은 우리에게 '불쾌한 골짜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논리적 인과관계에서 벗어난 황당하면서도 기묘한 이미지들은 어떻게 보았을 땐,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했던 '초현실주의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한다. 우리는 지금 기술의 오류가 만들어내는 제2의 초현실주의 전성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흔히 초현실주의라고 하면 '무의식'이나 '현실 초월'을 먼저 떠올린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속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적 요소들을 보며, 나 역시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오로지 자신만의 강한 예술적 세계관 안에서만 작업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졌던 듯하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진정한 목표는 '주관'에 갇힌 자아에서 벗어나, 눈앞의 현실을 '객체(Objet)' 그 자체로 다시 바라보는 데 있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서구 사회가 신봉하던 이성과 합리주의가 무너지며 예술가들은 더 이상 현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던 것에 있다. 따라서 이들은 주체를 떠나 객체에 도달함으로써, 우리가 의심 없이 수용하던 일상적 현실보다 더 고차원적인 '상위의 현실'을 추구했던 것이다.
제1장 오브제: ‘객관’과 ‘초현실’의 관계
이러한 지향점은 1936년 열린 «초현실주의 오브제»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전시에서는 일상의 오브제가 맥락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를 탐구하며, 익숙한 물건이 한순간에 낯설고 기이하게 느껴지는 '언캐니(Uncanny)' 개념을 제시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와 맥을 같이 하는 이 감각은, 사물의 친숙함을 박탈함으로써 우리를 새로운 인식의 지평으로 안내한다. 이 전시의 제1장을 보는 내내 «초현실주의 오브제»전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느꼈다.

Marcel DUCHAMP, Hat Rack, 1917 / 1964 (Schwarz ed. 6/8),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rt, Kyoto
*해당 작품은 전시장 촬영이 불가하여, 도록 사진으로 대체한다.
<모자걸이(Hat Rack)>는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으로 벽에 높이 걸린 채 사물 자체보다 그림자를 통해 먼저 보인다. 관람객은 시선의 높이에서 사물의 직접 확인하는 대신, 벽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며 실제 사물을 눈으로 추적하게 된다.이러한 연출은 대상을 한 번 더 낯설게 만들어준다. 사물을 직접 보고 모자걸이라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벗어나서 그림자를 통해 대상을 찾게 되는 과정에서 모자걸이는 일상의 도구에서 벗어나게 된다. 우리를 한 번 더 주관에서 떨어져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다.
제2장 회화: 시각예술의 새로운 문

(왼) 르네 마그리트, <왕의 미술관>, 1966년, 요코하마 미술관
(오) 르네 마그리트, <기성품 꽃다발>, 1957년,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
두 작품 모두 르네 마그리트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남자의 뒷모습과 실루엣이 눈에 띈다. 먼저 <기성품 꽃다발>에는 남자의 뒷모습에 더불어 보티첼리의 <봄>에서 등장하는 여신 '플로라'가 보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상을 익숙한 배경에서 떼어내어 낯선 환경에 배치해 충격을 주는 '데페이즈망' 기법이 사용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마그리트가 고전 명작의 도상을 가져오면서 이를 '오마주'가 아닌 '레디메이드'라 칭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그리트가 명작을 인용한 이유도 객관성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기성품 꽃다발>과 <왕의 미술관>은 '중절모를 쓴 남자의 실루엣'이라는 시각적 요소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어 더욱 세트의 작품처럼 다가온다. 제작 시기에 9년이라는 간격이 존재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두 작품 사이의 연관성을 추론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해서 두 작품을 연결하고자 했으나 '이것도 결국 나의 주관에서 키워진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도달했다. 마그리트가 살아있다면 당장 달려가 물어보고 싶기도 했지만, 오히려 남은 전시를 더 내려놓고 즐길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제4장 광고: ‘기능’하는 구성
살바도르 달리, 포스터 ‘오베르뉴, 프랑스 국유 철도’, 1969
살바도르 달리가 프랑스 국유 철도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이 포스터는 화산 지대인 오베르뉴 지역을 홍보하고 있다. 화면 전체를 이끄는 화산의 붉은 배경 위로 대비되는 녹색 이미지가 시선을 끈다. 특히 다양한 크기의 나비들이 무리 지어 날아가는 이미지가 인상적인데, 자유와 가벼운 '나비'의 이미지와 파괴적이고 육중한 '화산'의 이미지가 서로 충돌하며 기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여기서 화면 곳곳에 흩뿌려진 물감의 흔적들은 이 두 이미지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시각적 완성도를 높인다. 이 작품은 초현실주의가 대중을 매료시키는 광고의 영역으로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충돌되는 두 이미지의 조화를 통한 시각적 효과는 광고효과를 더 극대화한다. '확장된 초현실주의'라는 전시 주제에 잘 맞는 작품이지 않은가.

이번 전시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오브제와 회화뿐 아니라 상업적 영역으로 확장된 작업을 확인할 수 있어 인상적이었다. 과거 초현실주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추구했던 무의식의 세계가 오늘날 생성형 AI의 기술적 오류를 통해 의도치 않게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하여, 전시도 훌륭했지만, 오사카 나카노시마 미술관의 공간 디자인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오사카 여행을 계획이 있다면 한 번쯤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