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시어들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없는 15편의 시들은 발표 당시에는 난해함을 이유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지금은 그 난해함이 하나의 작품을 설명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쉽게 의미를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은 많은 갈래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특징 때문에 발표 후 거의 10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새로운 예술로 재탄생되어 오기도 했다.
연작시 15편 중 가장 유명한 <시제 1호>에는 13명의 달리는 아해들이 등장한다. 왜 아해들이 무서워하며 달리고 있는지, 골목은 왜 막혀 있어도 뚫려 있어도 괜찮은지 시에서 주어진 단서가 많지 않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안에서 오감도를 해석해 나가는 사람의 시선은 시를 읽는 자신을 중심으로 아해와 골목의 의미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공놀이클럽의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그렇게 시를 분석하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이 뭘 무서워하는지도 모르세요? 빨리 연극이나 시작해요!”라며 말을 걸어온다. 연극에서 아해들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체의 자리에 서, 각자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이야기한다. 배우들은 각각 자신이 공포를 느꼈던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며 원작의 13명의 아해가 무서워하며 질주한다는 문장에 의미를 덧붙여간다.
아해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린이연극이라는 장르명에 ’이상한’이라는 수식어가 덧붙은 까닭이 궁금해진다. 우선 이상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상하다는 단어는 정상적인 상태와 다르거나,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른 것을 나타내는 말이다. 연극의 아해들은 자신의 공포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이상한 부분을 이상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해들이 문제 삼는 이상한 부분은 바로 공포라는 감정이다.
어른의 관점에서 공포는 아이에게 언급해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이들이 무서운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막고, 아이가 친구끼리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겁낸다. 그러나 언급을 최대한 피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풀리지 않은 마음속 감정과 질문들이 마음에 남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차곡차곡 쌓여 가기도 한다.

아해들은 그렇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진솔한 공포에 대한 경험을 무대 위에 늘어놓는다. 사람들과 자신을 단절시키는 스마트폰이 무섭기도 하고, 자신만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은 학교가 무섭기도 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부모가 무섭기도, 혹은 태어나기 무섭기도 하다. 13장으로 나뉜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자신의 고민과 감정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는 전제는 유지한 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린이 배우와 같이 어른 배우 역시도 자신의 진솔한 경험과 감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어른 배우들 역시 어린이 배우와 구분되지 않고 모두 아해라고 불리며, 나이를 먹을 때마다 묻어놓았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해 간다.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가 없어진 무대 위만큼 무대 아래 객석도 경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기존의 어른 관객 위주였던 명동예술극장에는 어린이와 보호자 모두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할 수 있는 열린 객석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그런 만큼 객석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이 함께 앉아 있었다. 그런 다양한 나이의 관객들 앞에서 풀어놓는 진솔한 감정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의 장이 된다. 4장의 주말 아침마다 자는 척을 하는 부모님의 에피소드에서는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자신의 부모에게 사실 알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른들은 과거를 회상하며 웃기도 혹은 울기도 한다.
그렇게 연극은 어린이와 어른의 구분 없이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털어놓고 이를 공유하는 장이 되어 끊임없이 현실과 상호작용을 한다.

연극의 마지막 장 이후,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말할 수 있는,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서로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는 것을 생각한다. 아해들이 다 같이 즐기고 춤추며 끝나는 커튼콜 이후, 연극의 이야기에 대해 한참 이야기하는 여러 관객을 보며 현실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연극과 예술의 힘을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