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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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현실 그 자체는 아니지만,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이다. 영화가 현실보다 앞서 나갈 수도, 반대로 뒤따라갈 수도 있다. 장르도 마찬가지다. 장르는 관객의 요구에 맞춰 반복과 변주 속에서 재탄생한다. 같은 장르의 영화를 봐도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시대의 흐름을, 혹은 이미 지나온 한 시대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가끔 시대를 앞서 나간 영화를 볼 때면, 우리에게 나타난 변화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한국 고전 영화이자 현대식 멜로의 출발점이 된 영화,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은 시대를 앞서 나간 영화라 할 수 있다. 본편은 대학 교수 부인 ‘선영’이 양품점에 취직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중심으로 여성의 욕망을 다룬다. 1956년, 전후 한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고 가정에서 벗어난 여성의 주체성을 말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영화들과 차별된다. 물론 한계점도 명확한데, 가정으로 복귀하는 결말과 더불어 세계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 그러하다.

 

영화 속 세계는 환상 속 세계처럼 그려진다. 이를테면 영화의 중심 배경이 되는 ‘서울’은 전쟁의 여파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활기차며, 사치와 향락의 풍경이 스크린을 채운다. 빈곤, 실업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밀려나고 성적 욕망과 쾌락만이 남아있다. 이처럼 욕망과 질투, 연애와 사랑으로 가득 찬 환상의 세계는 마치 ‘꿈’같이 느껴진다. '꿈'이란 한숨 자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금방이라도 소멸될 수 있는 세계다.

 

그래서 영화 속 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꿈이라면, 영화는 끊임없이 주인공 ‘선영’의 잠을 깨운다. 가령 영화는 현실과 꿈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선영의 꿈을 부추기는 인물은 학교 동창, 윤주다. 윤주는 선영보다 진보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댄스에 익숙하며, 경제적 자립을 위해 백사장과 공모한다. 전통적인 여성으로 보이는 선영에게 춤과 사업을 권유하기도 한다. 늘 선영보다 앞서 있는 윤주는 주인공, 선영의 미래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선영의 잠을 깨우는 인물은 다름 아닌 선영의 아들이다. 아들은 영화 내내 선영을 부른다. 선영에게 질문하고, 선영에게 부탁하고, 선영을 찾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관객의 위치다. 관객은 선영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선영의 욕망에 동화된다. 그러나 중간 중간 삽입되는 아들의 존재는 선영뿐 아니라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예컨대 옆집 청년, 신춘호의 집에서 은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선영은 ‘엄마 여기 왔어?’ 라는 아들의 부름에 놀란 표정으로 일어난다. 이 부름은 둘의 시간을 포착하던 관객에게 닿으며 에로틱한 장면이 선사하는 관음증적 쾌락을 해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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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 청년 신춘호의 집에서 춤을 추는 선영

 

 

그렇다면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대표적인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양품점 사장과 선영의 불륜 행각이 발각되고, 선영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퀀스. 이 시퀀스는 선영의 미래였던 윤주의 죽음과 현실로의 복귀를 요청하는 아들의 이미지로 마무리되며 선영의 깊은 잠을 깨운다.

 

첫 장면, 카메라는 댄스 파티장 앞 한 사장과 선영을 담는다. 댄스 파티장에 늦어버린 두 사람은 댄스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창 진행 중인 파티장을 향해 선다. 이때 화면은 파티장 안, 춤추는 윤주의 모습으로 교차 편집되는데 화려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속, 평화로운 얼굴의 윤주가 보인다. 편안한 얼굴과 달리 윤주의 상황은 급박한데, 백사장의 사기행각에 넘어가 큰 돈을 잃었기 때문이다. 결국 윤주는 결심에 찬 얼굴로 술에 약을 타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윤주의 마지막을 함께 지켜본 두 사람은 차를 타고 프레임 밖으로 도망간다. 쇼트가 전환되면 호텔 방에서 춤추는 두 사람이 있다. 끊어졌던 음악이 다시 재생되고, 윤주의 죽음은 두 사람의 모습과 교차된다. 그리고 그 순간, 뜬금없이 방에 누워있는 선영의 아들이 등장하며 마무리된다.

 

윤주가 선영의 미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측면에서 이 시퀀스는 두 사람에게 닥칠 미래(선영의 죽음)를 함께 관람하는 행위(댄스장을 향해 서 있는 두 사람)처럼 느껴진다. 죽음의 이미지와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이미지가 음악과 함께 연결되며 환상 속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때 아들의 모습이 삽입되면 꿈의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다. 결국 현실과 꿈이 교차하던 세계는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복귀할 것’

 

이렇듯 여성의 욕망과 자유를 다루는 재현 방식에 있어서 한계가 존재하는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변화를 예고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요컨대 반복과 변주 속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현대식 멜로'의 출발을 알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랜만에 한국 고전 영화를 꺼내보며 새삼스레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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