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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월이 시작될 무렵, 지나가는 상점들 앞에 하나 둘 가판대가 세워졌다. 며칠 뒤에는 여러가지 달콤한 간식들과 귀여운 인형들로 가득 채워졌다. 발렌타인데이가 찾아온 것이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상점에 들러서 저마다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초콜릿을 사갔다.

    

기독교 영향을 크게 받는 서구권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발렌타인데이가 큰 의미를 갖진 않지만 그럼에도 연인, 가족, 친구들 사이에서 즐거운 이벤트이다.

 

특히나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는 설렘이 가득한 날이 되기도 한다. 지난 날을 회상해보면 어릴 적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고백할 용기는 없지만 어처구니 없는 핑계를 대서라도 초콜릿만큼은 전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떠오른다. 시판용 초콜릿을 다시 녹여서 모양만 바꾸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복잡하던지 주방을 잔뜩 어지럽히고 꾸중을 들었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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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더 이상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며 초콜릿을 녹이지 않는다.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유명한 디저트를 상대방의 집 앞까지 배송할 수 있는 '효율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퇴근길 편의점 앞에 깔린 가판대를 보며 묘한 향수와 함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이유는, 그 시절 우리가 부렸던 '어처구니없는 핑계'가 성인이 된 지금의 삶에서도 여전히 절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각박한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대가 없는 다정함을 건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평소 "당신 덕분에 힘이 난다"거나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는 진심을 툭 내뱉기에는 왠지 모를 쑥스러움과 민망함이 앞선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진심을 드러내는 것에 서툴고, 때로는 그 서툼 때문에 소중한 관계에 소홀해지기도 한다. 이때 발렌타인데이라는 기념일은 아주 훌륭한 심리적 방패이자 명분이 되어준다. "오늘 발렌타인데이라기에 하나 샀어요"라는 가벼운 한마디는, 쑥스러움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허물고 진심을 전달하는 가장 매끄러운 통로가 된다.

 

어릴 적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초콜릿을 건네기 위해 밤새 고민하며 만들었던 수많은 핑계는, 이제 성인이 된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진화했다.

 

지친 표정의 직장 동료에게 건네는 응원으로, 혹은 무뚝뚝한 자녀가 부모님의 외투 주머니에 슬며시 넣어드리는 고마움 하나로 말이다. 비록 이것이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라 할지라도, 일 년에 하루쯤은 이런 '상술'에 기꺼이 속아 넘어가는 척하며 주변의 온기를 확인하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일상에 '다정함'이라는 윤활유를 치는 필수적인 의례에 가깝다.

 

결국 발렌타인데이의 본질은 초콜릿의 가격이나 브랜드에 있지 않다. 그것은 누군가를 떠올리며 선물을 고르는 시간과,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다가가려는 마음에 있다.

 

주방을 어지럽히며 초콜릿을 만들던 그 시절의 서툰 진심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곁의 더 넓은 관계 속에서 다정한 핑계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올겨울, 유독 춥고 삭막한 일상을 지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어처구니없는 핑계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마침 눈에 띄어서 샀다"는 흔한 변명 뒤에 숨겨진 진심 한 조각이, 누군가의 굳어있던 마음을 녹이고 예상치 못한 달콤한 위로를 전해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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