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억이 나지 않는 일들이 종종 있잖아요. 혹은 나에게는 기억조차도 없는 것들이요. 저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는데요. 어머니는 항상 그 존재와 내가 닮았대요. 얼굴도, 키도, 팔과 다리도, 그와 비슷하대요. 어머니는 매번 그 남자와 나를 비교하지만 전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어머니는 왜 계속 그와 내가 닮았다고 말하는 걸까요. 나는 꼭 그와 닮아야만 하나요? 아니, 정말 나는 그를 닮았을까요? 평생을 본 적이 없지만, 핏줄이 이어진 그 남자를요.

 

 

 

CHROMAK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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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MAKOPIA》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7집 앨범이다. 2024년 10월 28일에 발매되었고, 1주년을 맞은 2025년 10월 28일에는 트랙 mother가 추가되었다. 그는 암묵적으로 앨범을 2년 주기로 발매해왔지만, 《CHROMAKOPIA》는 그 규칙을 깨고 3-4년의 텀을 두고 나온 유일한 앨범이다.

 

앨범 커버 속 주인공은 타일러로, 자신의 얼굴과 비슷한 가면을 쓰고 있다. 그는 매 앨범마다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들어 왔다. 마치 가면을 바꿔 끼듯 하나의 컨셉, 음악 스타일을 입혀 전 앨범과 완전히 다른 작품을 창작해왔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서의 '가면'은 다르다. 《CHROMAKOPIA》에 담긴 스토리를 읽어내면 이 가면은 자신의 페르소나 중 하나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 담겼음을 느낄 것이다. 2025 그래미 어워즈 베스트 앨범 커버상을 수상한 만큼, 커버는 《CHROMAKOPIA》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다.

 

《CHROMAKOPIA》가 발매된 후, 리스너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오랜만에 발매한 앨범이기도, 음악성이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놀라움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자전적인 앨범이라는 것이었다.

 

 

you are the light

넌 빛이야

 

it's not on you, it's in you

네 겉에 있는 게 아니야, 네 안에 있어.

 

 

앨범의 첫 트랙은 어머니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이 짧은 문장은 단순한 의미를 넘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어머니의 말로 시작됨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결심을 한 것이기도 하고, '자전적인' 앨범이기에 어머니로 인해 세상에 눈을 떴고, 이 앨범이 나올 수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작을 알리는 어머니의 짧은 몇 마디가 앨범에서 전하고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이 트랙부터, 타일러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타일러, 그의 삶과 내면을 담아내다


 

Noid

 

 

Privacy? Huh, yeah, right, I got a better shot in the NBA

사생활? 그래. NBA 선출되는 게 더 쉽겠네

Ain't no respect for nothin', voice recordin' our discussions

아무것도 존중받지 못해, 대화는 다 녹음된다고 

Her, him, they, them, or anybody, I don't trust 'em at—

그녀, 그, 그들, 걔네, 누구든 하나도 믿을 수 없어

At all, some pray for my fall 

하나도, 누군가는 내가 망하길 기도하지

 

 

유명세 이후의 삶은 축복이 아니게 된다. 집에 침입하는 악성 팬들로 총을 지니고 자게 되고, 누군가가 들어오진 않았는지 매번 문을 세 번 체크한다. 접근하는 여자들 역시 재산을 위해 오는 건 아닌지 의심부터 하게 된다. 자신의 피해망상을 이야기하다 그림자 속에서도 누군가가 보고 있는 것 같다며 괴로워한다. 나를 사랑하지만 괴롭게 하는 팬들과 파파라치, 내 유명세를 망가뜨리려 오는 이들, 타일러는 자신의 삶이 겉보기엔 좋아보일지 몰라도 그에 따른 대가는 피해망상 속에서 사는 것이고, 자신을 내버려달라며 노래는 끝이 난다.  

 

 

Darling, I

 

 

Love em all for different reasons at the same damn time

모두를 각자 다른 이유로 사랑한다고. 동시에 말이야

See monogamy, that shit is not for me

봐, 일부일처제라니, 나에겐 안 맞아

One option for everybody? don't you lie to me

모두를 향해 한 개의 선택지? 거짓말하지 마

Too many rules I'm too curious to try to be hiding things

 규칙은 너무 많고, 난 갇히기에 호기심이 너무 많아

 

 

'계속 사랑에 빠진다'며 시작되는 이 노래는, 연인이 아닌 다른 이에게도 사랑에 빠진다는 말이다. 한 사람만 사랑하기엔 영원은 너무 길고, 동시에 여러 차들을 각자 이유로 모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 타일러 역시 규범 외의 사랑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지, 이렇게 살다간 외롭게 그래미 트로피나 안고 쓸쓸하게 끝나겠다고 한다. 달달한 사운드 위에 상반되게 일부다처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는 곡이다.


 

Hey Jane

 

 

never had no scare, in my life till now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두려움은 처음이야

ain't in the space to raise no got damn child

나는 아이를 키울 준비가 전혀 안 됐어

hey jane, i'm terrified, i'm petrified

제인, 나 너무 무서워, 겁에 질렸어

i don't wanna give my freedom up, or sanitize it

 내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도 없애고 싶지도 않아

 

 

예상치 못한 임신 소식으로 그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린다. 소식을 들은 타일러는 제인에게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안심시키지만, 상황에 대해 점점 불안해하며 여전히 자신은 아이를 키우기 두렵다고 말한다. 제인에게 선택을 맡기지만 아이를 지우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제인은 이미 낙태를 한 경험이 있기에 아이를 지우기를 원치 않는다. 이 트랙에서 타일러가 '아버지'가 되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강하게 드러낸다.

 

 

Like Him

 

 

앨범의 중심이자, 첫 질문으로 돌아가는 곡이다.

 

 

Mama, I'm chasing a ghost

엄마, 전 유령을 쫓고 있어요

I don't know where he is

그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Mama, I'm chasing a ghost

엄마, 전 유령을 쫓고 있어요

Do I look like him? 

내가 그 남자랑 닮았나요? 

Like him 

그 남자랑?

 

 

어머니가 타일러에게 '그'와 모든 것이 닮았다고 이야기하며 곡은 시작된다. 타일러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는 의문과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진다. 타일러는 '그'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다. 아버지는 타일러가 아주 어렸을 적에 떠났다. 아버지의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물을 뿐이다. 아버지는 대체 누구였고, 자신과 어디가 닮은 것인지, 내가 아버지와 닮았다는 건 나에게 무엇인지.

 

 

so do i look like him?

그래서, 제가 아버지를 닮았나요?

do i look like him?

제가 아버지와 닮았나요?

i don't look like him

저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어요

 

 

타일러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다가, 자신은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고 말한다. 원망스럽거나, 보고 싶다거나ㅡ그런 쪽이 아닌, 그저 자신은 자신이라는 것. 노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어머니의 말ㅡ사실 아버지는 너를 키우고 싶었지만, 어린 나 때문이었다는 고백ㅡ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말이 진실일지, 거짓이 담긴 위로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대화를 곡에 넣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아버지를 단순한 결핍으로만 두지는 않는다는 것.

 

 

 

어머니, 내가 아버지와 닮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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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타일러가 쓴 '가면'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겠다. 그것은 또 다른 페르소나가 아니라 아버지의 그림자다. 자신의 얼굴에 딱 맞는ㅡ자신과 닮은 가면. 그러나 자신의 것이 아닌. 타일러는 이 가면을 쓰고 연기하지만, 오히려 허물을 벗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다 드러낸다.

 

내면을 드러내기란 두려운 일이다. 되려 약점이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운 것.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는 먼저, 자신의 피해망상을 이야기했다. 피해망상 뿐 아니라, 자신이 바람기가 있다는 사실도, 여자친구를 임신시킨 적이 있다는 사실도, 그리고 가정사도. 이 '가면'을 썼기에 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면을 쓰면 '척'이 가능하니까. 지금껏 여러 페르소나를 탄생시켜왔으니, 이 역시도 어쩌면 페르소나로 받아줄 수 있기를 바라며.

 

아닐 것이다. 사실은 페르소나로 받아주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 앨범은 타일러의 고백이라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범위에서, 말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상황들이 있지 않은가. 음악을, 아니, 예술을 하는 모든 이가 누군가에게 깊게 닿을 수 있는 다리는 '자신의 삶'을 녹여내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타일러는 약 30여 년의 감정을 정리해 내려놓을 준비를 한 것이다. 실제로 타일러가 이번 월드 투어를 다 돌고 난 후 쓴 편지에, 이 앨범이 자신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타일러는 묻지 않을 것이다. 닮았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결국 자신으로 남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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