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행동양식의 이유는 사라진다. 그래서 사랑은 불합리한 행동을 이따금 하게 한다. 어쨌든 사랑이란 마음이 시키는 것이고, 마음이란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존재다. 마음이 간다는 말과 사랑이 온다는 말은 그래서 같은 말이 되기도 한다. 별을 따다 준다거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망언 역시 그래서 때때로 진담이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랑에 기쁨이나 환희 같은 긍정적 감상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은 때때로 슬픔이나 우울함 같은 부정적 감상도 가지고 온다.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영원히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시점은 정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없는 시점은 정할 수 없다. 우리는 유한하고 사랑 역시 유한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대체로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이유 없는 사랑의 표본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려 한다. 가지지 못한 것은 주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의 죄책감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는 ‘나’라는 객체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을 것들을 하나씩 감내한다. ‘나’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직업이나 성격, 궁상, 굽신이 그러한 것들이다. 자식에게 무언가를 줄 수만 있다면 부모는 별을 따오고 다 큰 자식도 눈에 넣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랑만큼은 영원할 것 같지만 역시 유한하다. 부모가 죽으면 그 사랑은 끝난다. 그래서 노모와 노부의 자식 사랑은 슬플 뿐 아니라 서글픈 감상까지 부른다. 여전히 자식에게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지만, 가진 것들이 줄어간다. 가지지 못한 것들을 주기 위해 애쓰나, 정신과 육신이 예전 같지 않다. 필요 이상의 죄책감만 불어난다. 사랑은 유한하다는 지혜를 두고 애틋함만 불어난다.
우리 집안에는 노모가 한 분 계신다. 나에게 외할머니인 노모는 세 딸과 다섯 손주를 키워냈다. 그런 노모의 잠바 주머니에는 늘상 손수건이 있다. 소박한 생김새와 은근한 목욕탕 냄새가 꼭 노인의 물건 같다. 노모는 세 딸과 다섯 손주가 스스로 티슈를 뽑아 콧물을 닦을 때까지 그들의 콧물을 닦아냈다. 세월이 흘러 그들 모두가 스스로 티슈를 뽑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노모의 잠바 주머니에는 늘상 손수건이 있다.
모두가 그 손수건을 기억하지만 모두가 그 손수건을 잊었다. 노모는 여전히 그들의 콧물을 닦아주려 매일같이 손수건을 삶고 손수건을 가지런히 개어 잠바 주머니에 넣지만, 이제 손수건을 꺼낼 곳은 주책맞은 눈물을 닦을 때뿐이다.
살아생전 언제 또 올지 모를 남편의 산소에서, 살아생전 언제 또 볼지 모를 호주 사는 둘째 딸의 출국장에서 주섬주섬 손수건을 꺼낸다. 눈물이 많아진 노모는 서글프다. 주책맞게 흐르는 눈물이 서글프다. 커버린 자식과 꼭 그만큼 늙어버린 자신이 서글프다. 노모에게는 여전히 이유 없는 사랑이 오고 있지만 노모는 알고 있다. 사랑은 유한하다는 지혜를.
오늘따라 날이 참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