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가 누구이고, 네가 누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렇게 마음이 조각나는 밤이면 속절없이 조각나는 마음을 누설해 버린다. 작은 술집에 나란히 앉아 술잔을 기울일 때, 네가 묵혀뒀던 고민을 이야기할 때, 내가 뭐라도 된다는 듯이 조언을 시작할 때. 너는 내가 되고 나는 내가 되는 심정으로, 사실은 나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너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감상이 삼인칭 시점으로 훅, 하고 느껴질 때가 있다.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게 되었냐면, 가끔은 그런 너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올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박상수의 네 번째 시집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가 그런 식이다. 조각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너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말을, 나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말로 번역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테다.
박상수는 치사하고 치열한 21세기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한 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깊숙하게 파고든다. 그의 무자비하게 직설적인 표현을 마주하고 있자면 우리도 아는 얼굴이 떠오르는 것만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 가장 쉬운 언어로 가장 깊숙한 마음을 꺼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아무도 네가 머무는 방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아무도 네가 어떤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하루가 짧고, 너의 일그러진 표정을 잠깐 생각했다가 이내 내일 아침의 메뉴를 떠올릴 것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슬픔이 있단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를 목소리가 너를 위로한다 너는 그것이 위로가 아니라 주문呪文이라고 생각한다 주문을 외우고 있으면 평화가 찾아오고 마침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된다 너는 웃는다 너는 바보처럼 웃는다 너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는다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지옥, 모든 것은 네가 만든 실패, 너는 실패의 지옥에서도 지키려고 애를 쓴다 부서져도 전부 부서지지는 않으려고 어딘가 안쓰럽게 애를 쓴다
—박상수, 「한 줌의 사람」 부분
이 사람을 마주할 때면 시인의 이전 시집인 『오늘 같이 있어』의 「초합리주의」 속 화자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다. (아마도) 권력의 아래에서 각종 잡일까지 맡아가며 자본주의에 응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마도) 정리해고일 뿐인 결말을 마주한 화자가, “차라리 물안경을 쓰고 (아마도 팀장일) 너를 사랑하려고 했”다고 중얼거리는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슬픔이 있”다고 주문처럼 외우며 현실 세계의 출근길에 올라야만 하는 모든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사람은, 적어도 박상수와 독자가 공유하는 시간선에서의 사람은, 내가 아끼는 너를 위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자 다짐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조각나고 또 조각나서 ‘화이팅!’조차 외치지 못하는 순간에 처한 사람을 위해 박상수는 미리 처방 약을 남겨둔다. 그의 처방 약은 활자로 쪼개지고 쪼개져서 우리에게 닿는다.
…아직도 서로 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뭐가 되지는 못했지만 되어가는 중이라고 여전히 믿으면서, 우린 살아 있는 거겠지 언젠가 이 믿음을 버려야 할 날이 올 거야 그것이 나에게 위안을 준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가, 면, 서.
—박상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부분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말하는 시인조차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안다. 마음이 조각나고 또 조각났는데 또 어떻게 다시 일어서야 한단 말인가. 말조차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화이팅을 외치겠다는 것인가, 그런 건 그런 게 가능한 사람한테나 해야 하는 말이지 않는가. 하지만 박상수는 한 권의 얇은 시집으로 그 모든 말에 대답하고 있는 것 같다. 나 씩씩해 보이지? 근데 실은 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그렇게 바닥까지 보여주고 있는 그를 인식한 순간 그 모든 허물 같은 화이팅이, 기만이 아닌 진짜 위로로 들리는 것만 같다. 때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세상이 조각나 있다는 걸 인지할 때, 그게 그렇게도 위로가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그러니 “낫토처럼 붙어서, 두고 간 너의 목소리를 내가” 지킨다고 말하는 화자는 정말 씩씩하다. “여전히 너는 어둡고, 마침내 실패했고, 실패한 것은 작은 사건일 뿐 눈을 가리는 진실은 아닌 거라고,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 말한다. (「들어줄게 너의 이야기를」) 시인이 “너”에게 보내는 모든 위로와 주문은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각난 밤의 작은 술집처럼, 그곳에서 이뤄지는 모든 몽롱한 대화처럼.
박상수는 시집의 끝자락에 덧붙인 에세이 「나의 디바 주동우」에서 배우 주동우를 향해 “이상한 일이고 이상한 힘”이라며 말한다. 주동우는 “분명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깊은 슬픔의 표정을 가졌지만 동시에 “정말 좋다. 진심이야, 너무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활기찬 에너지와 생명력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상수는 주동우를 본다. 우리는 다시 그런 박상수를 본다. “한 줌의 사람”에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다짐하는 것까지의 화자의 에너지가 “이상한 일이고 이상한 힘”이 아닐 리가 없다.
“숨 쉬어 조금 부족한 공기 속에서, 언제나 조금 부족한, 살아 있다는 기분”(「무호흡」)을 매번이고 느낄 테다. 그 모든 부족한 기분은 기어코 절망이 될 것이다. “내일부터 너는 아무것도 쌓지 않은 사람, 유일한 기쁨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이” 재계약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재계약」) 이렇게 치사하고 치열한 사회 속에서.
하지만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다. “내겐 부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부리로 네 깃털을 가다듬고 윤을 내어”주겠다고,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는 거니까, 그 일들이 너를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니까,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벌주려 하지 말”라고, 시인은 미리 처방 약을 남겨둔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그러니 내가 네가 되고, 내가 하는 너의 이야기는 사실 모두 내 이야기라고 고백한 데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가다듬고 윤을 내며 살아가는 힘을, 이 작은 책이 간절하게 노래하고 있다.
*이 글의 제목과 부제목은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에 실린 에세이 「나의 디바 주동우」 속 한 구절을 사용하였다.
**이 글에 인용되어 괄호 처리가 된 모든 시는 『너를 혼잣말로 두지 않을게』에 수록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