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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20살, 설레는 마음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당혹감과 의심에 휩싸였다. 전공이 나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확신에 차 들어온 곳에서조차 온전히 속할 수 없다는 사실은 무기력으로 이어졌다. 결국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결정했다. 이때의 나는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정의했다.

 

휴학 생활이 끝나기 직전, 우연히 앤코이 교육 재단에서 모집하는 희망 장학생에 지원했고 좋은 결과를 받았다. 상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글을 쓰며 내가 경험한 감각들이 기억에 남았다. 글을 쓰는 감각, 그리고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고 답해주는 경험은 마음 깊이 충만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나는 지금까지 글을 쓴다.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들도 조금은 명확해졌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글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나에게 글쓰기란 충만함과 동시에 패배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는 대상이다. 나의 부족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금방 소진되어 끊임없이 채워 넣어야 하는 존재. 그럼에도 우연히 만나 이어져 온 인연을 지켜내고 싶을 때 펼쳐보는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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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는 인도계 미국인 작가, 줌파 라히리가 낯선 언어, 이탈리아어로 쓴 첫 번째 산문집이다. 그는 영어로 쓴 첫 번째 소설, <축복받은 집>으로 200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나, 돌연 영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겠다 선언한다. 이 선언은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는 무기를 손에 쥐고 전쟁터에 나가는 행위만큼이나 무모해 보인다. 작가의 무모함에 대한 의문은 책을 읽을수록 서서히 풀리는데, 그 과정은 논리적으로 설득되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것에 가깝다.

 

책에서 이탈리아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언어로 정의되지 않는다. 이탈리아어는 그에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벵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집에서는 벵골어를, 학교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다. 집과 학교는 분리되어 있어 집에서 영어를, 학교에서 벵골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 섞이지 않는 언어들 사이에서 성장한 그는 자신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일종의 언어적 추방에 익숙해져 있다. 모국어인 벵골어는 미국에서 보자면 외국어다. 자신의 언어가 외국어로 생각되는 나라에서 살아갈 땐 계속 기묘하고도 낯선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홀로 환경과 조응하지 않는 미지의 비밀스러운 언어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움이 자신 안에 거리를 만든다.'
 

 

라캉에 의하면 아이는 큰 타자인 언어를 통해 주체를 획득한다. 즉, 언어는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그가 모국어 벵골어, 그리고 새로운 어머니, 영어가 아닌 어떤 연고도 없는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쓰겠다고 선언한 것은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운명적 만남과 불가항력적인 이끌림, 맹목적인 열망을 느끼는 대상. 이탈리아어는 바로 그의 정체성이다. 요컨대 이 책은 언어에 대한 책이자 정체성에 관한 책이다.


앞서 언급한 운명적 만남, 불가항력적인 이끌림, 맹목적인 열망은 그가 이탈리아어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 단어들이다. 이 단어를 조합하면 이탈리아어는 그를 완전하게 만들고, 매 순간 희열과 기쁨의 축복을 선사할 것처럼 보인다. 반면 이탈리아어는 그에게 좌절과 패배의 아픔을, 자신의 불완전함을 투명하게 비춘다.

 

 

'내가 이탈리아어로 쓴 짧은 글들은 사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난 그 글을 완벽하게 쓰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로마에서 만난 새 이탈리아 선생님에게 내 첫 작품을 보여줬다. 선생님이 내게 글을 돌려줬을 때 그 글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실수투성이였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거의 모든 문장이 수정됐다. 나는 빨간 펜으로 첫 글을 고쳤다. 수업이 끝날 때면 종이는 검은색만큼이나 빨간색 잉크로 얼룩져 있었다.'

 

 

이 책은 나 자신으로 가는 길을 환상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어쩌면 빨간색 잉크로 얼룩진 종이를 마주하는 것이 본질에 이르는 길이라 말한다. 효율과 성공이 중시되고 실패를 부끄럽게 여기는 흐름 속에서 비효율과 실패를 기꺼이 자처하는 그의 결심은 독자에게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성인이고 작가인 내가 왜 불완전과의 이 새로운 관계에 매력을 느끼는 걸까? 무엇이 날 이렇게 만든 걸까? 명확하게 이해가 될 때의 황홀감, 나 자신에 대한 보다 깊은 자각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은 발명, 상상력, 창조성에 실마리를 준다. 자극한다. 내가 불완전하다고 느낄수록 난 더욱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게 있어 이탈리아어는 글쓰기다. 운명적으로 다가와 필연이 된 소중한 인연. 사랑하는 만큼 상처를 안겨주는 존재. 그럼에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 어떤 언어에도 속하지 못했던 그가 이탈리아어로 마침내 하나의 책을 완성한 것처럼, 나는 나의 방식대로 이 곳에서 글을 쓰고 있다. 결국 우리의 토대가 ‘언어’라면 인간의 본질은 글을 쓰는 행위와 맞닿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새해를 맞이한 설렘으로, 다이어리에 한 줄 적어보면 좋겠다.

 

[나에게 이탈리아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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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울림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책인데, 다른 분의 리뷰를 보니 신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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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6 12:30:5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