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초연으로 막을 연 뮤지컬 ‘판’이 벌써 여섯 번째 시작을 맞이했다. 2025년 12월 23일부터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되는 해당 작품은 문성일, 현석준, 윤은오, 김지훈, 김대곤 등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19세기 말 조선의 어두운 시대상 아래, 패관소설을 낭독하며 부패한 세상 속 한 송이 꽃을 피우는 매설방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110분 상당의 러닝타임을 가졌으며, 전통 판소리와 현대적인 음율의 조화가 두드러지는 극이다.
극 중 악기 연주자들의 위치와 그들의 역할이 굉장히 특유하다. 무대 양 옆으로 제1건반과 산받이가 위치하여 끊임없이 배우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인 점이 특히 인상깊었다. 우리 판소리에서 소리꾼과 고수가 합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듯, 산받이 역의 배우는 다양한 배역을 소화함과 동시에 관객들과의 자연스러운 합일을 이룬다. 오케스트라가 관객의 시야에서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제1건반, 즉 지휘자를 극 한쪽에 배치함으로써 배우들과 자연스러운 합을 맞추는 모습은 즐거운 관람 포인트가 되어준다.
또한 인상깊었던 점은 배우들이 거의 무대 밖으로 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정 배우가 맡은 부분의 극이 진행될 때에 해당되지 않는 배우들은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산받이나 건반 옆에 앉아 자연스레 극을 감상한다. 이는 전기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며, 동시에 극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감초를 뿌리는 훌륭한 연출적 선택으로 보인다.
‘판’의 신스틸러는 단연 전기수 ‘호태’이다. 춘섬의 매설방에서 일하는 이야기꾼인 호태는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주인공인 양반 달수에게 전기수의 자질을 가르치는 넘버인 ‘낭독의 기술’에서는 매혹적인 탱고 선율을 바탕으로 한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가하면, 관객 투표를 통해 선정한 장르를 기반으로 즉석에서 받은 키워드 두 가지를 이야기 속에 섞어내어 2분 즉흥 낭독을 하기도 한다. 다채로운 목소리와 순발력을 요하는 역할임에는 틀림없으나, 필자가 관람한 김지훈 배우의 회차는 어려운 키워드와 주제임에도 상당히 매끄럽고 즐거운 진행을 선사했다.
또 하나 눈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꼭두각시 놀음’이라는 넘버이다. 본격적인 시사 풍자를 보여주며 매 시즌마다 그 내용이 바뀌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 6연에서는 작년 계엄 사태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인다. 풍자의 수위가 상당하며 탈의 얼굴과 가사가 상당히 직접적이다. 어둡지만 시원스런 장단 아래 펼쳐지는 정치 비판은 우리 전통 탈춤을 연상시키며 개인적으로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다만, 조금 더 우화적이라면 배로 즐겁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 역시 남는 대목이다.
이야기의 절정은 패관소설을 모두 불태워버리라는 관아의 명 이후 수감된 주인공 달수의 넘버, ‘새가 날아든다’에서 표출된다. 마을 사람들이 사또를 벌줄 시간을 벌기위한 달수의 이야기판이 주된 내용이다. 극 중 새가 종종 등장하는데, 보통 풍자극에서 악인을 벌주거나, ‘꼭두각시 놀음’ 중에 탐관오리를 벌하는 상징적인 주체로 등장한다. 해당 넘버에서는 전통 민요 ‘새타령’을 연상시키는 가사와 함께 카혼을 이용한 유사 난타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을 압도하는데, 이때 무대는 번뜩이는 조명과 새 모양의 조형물, 그리고 컨페티가 함께 어우러져 시민들의 소리가 불러온 거대한 폭풍의 한가운데처럼 느껴져 아름다웠다. 해당 넘버의 건반 연주자 분의 표정 역시 극에 완전히 몰입한 연주자의 모습 같아 상당한 인상을 주었다.
블랙 코미디,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를 적절히 섞은 모습의 뮤지컬은 관객들에게 또 한번 삶을 살아갈 풍부한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듯 했다. 하나 생각할 점은 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가 주되다보니, 캐릭터 하나하나의 서사나 전체적인 플롯의 연결점에서 구멍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력적인 연기와 신명나는 곡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들의 이야기에 웃고 우는 우리를 마주할 수 있다. 뮤지컬 ‘판’ 이 보여주는 이야기의 힘은 사람들이 슬픔을 잊고 웃음을 읽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