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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Yang EJ (양이제)]



돈 드릴로의 <화이트 노이즈>는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필두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돈 드릴로는 주인공인 '잭 글래드니', 아내 '버벳 글래드니',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드니스', '스테피', '하인리히', '와일더'로 구성된 총 6명의 가족을 통해 기술 발전으로 전통적 감각이 무너지는 현대상을 묘사합니다.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인간 정서는 ‘죽음 불안’입니다. 유선 수상기(텔레비전)의 보급이 이루어졌던 1970년대의 미국에서 죽음은 대중에게 전과는 다른 인상으로 다가옵니다. 먼저, 각종 재해와 사건·사고는 텔레비전의 RGB 컬러와 유리 액정을 거쳐 기호화됩니다. 빨강, 초록, 파랑이란 3원색으로 재조합된 사건 현장은 또다시 액정에 한 꺼풀 덮여 본래와는 다른 왜곡된 채도를 띠게 됩니다. 아무리 최소한의 딜레이가 있다고 한들, 이로 인해 실시간 현장 중계를 보더라도 우리는 '실제' 현장에 있지 못합니다. 기호화를 거친 사건·사고는, 그 속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다가오지 못하고 본질로부터 멀어진 하나의 오락거리로 전락합니다. 이는 잭 글래드니와 그의 자녀가 텔레비전의 화산 분출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단락에서 잘 드러납니다.

 

비단 70년대의 미국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 또한 수많은 기호화된 죽음을 마주합니다. 인터넷 통신 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사고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현장을 중계해 줄 적절한 매체만 있다면요.) 인간이 사는 동안 보고 접하는 타인의 죽음의 양은 과거와 달리 급격하게 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죽음 현장에 직접 방문해 애도할 수 없습니다. 매일 수백 건의 부고 소식을 듣지만, 그 모든 죽음 현장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그 정보량이 너무나도 방대하여 우리는 육체적인 한계와, 시간적·경제적 한계에 부딪힙니다. 결국, 이 모든 부고 소식은 대부분 찰나의 표정, 폭발음과 파편, 불길한 검은 연기 등의 이미지 몇 장으로 처리될 뿐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량과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는 속도 사이의 격차가 클수록, 그리고 이러한 경험이 쌓일수록 미디어에 보도된 사람의 죽음은 할리우드 영화의 사실적인 CG 장면과 점점 분간하기 어려워집니다.

 

통신 기술과 편집 기술(CG)의 발달뿐만 아니라, 현대의 의학 기술도 죽음의 인식을 바꾸는 데 한몫했습니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과거의 한국을 되돌아봅시다. 돌잔치는 아이가 무사히 1년 동안 살아남았음을 축하하는 잔치였습니다. 그만큼 아이가 생후 1년을 넘기기가 어려웠음을 뜻하지요. 환갑잔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평균 사망 시기가 30 중반~40대 전후였던 조선 시대를 떠올리면, 60세란 가히 천수를 누린 듯한 나이였을 테지요. 반면, 현대 의학의 발달로 과거의 치명적인 질병들은 충분히 극복 가능한 것이 되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죽음이란 앞으로 반세기 뒤에나 벌어질 머나먼 미래가 되었지요. 그렇기에 더더욱 현대에서 ‘때 이른’ 죽음은 마치 이례적인 대재앙처럼 여겨집니다. 가까운 이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과거나 현대나 똑같이 슬프고 비통한 일이겠으나, 대부분이 기술로 통제 가능한(혹은 그렇게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통제 불가능함이란 인간의 의지로는 절대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며, 그로 인해 더 큰 좌절과 절망을 안겨줄 만한 것이 됩니다. 통신 기술의 발달은 죽음을 ‘남일’처럼 만들고, 동시에 의학의 발달은 죽음의 위압감을 불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런 흐름에서, 주인공 잭과 아내 버벳은 현대인이 가지는 죽음 공포를 극단적으로 느끼는 인물로서 등장합니다. 그들의 죽음 공포는 ‘유독가스 공중유출 사건’을 통해 더 심화됩니다. 결국, 잭은 인류사에 기억될 잔악한 집단 죽음을 일으킨(그래서 죽음 위에 군림했다고 여겨질 만한) 히틀러의 카리스마에, 버벳은 공포를 마비시킨다고 알려진 약물 ‘다일라’에 기대어 죽음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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