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와 그녀를 살리기 위해 태어난 동생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안나는 아픈 언니에게 맞는 골수와 장기를 주기 위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공적으로 선택된, 이른바 맞춤 아기이다. 안나와 같이 희귀 질환을 앓는 자녀를 치료할 목적으로 탄생시키는 아기는 Saviour Sibling (구세주 동생)으로 불리기도 한다.
의학적으로는 희망일지 모르지만, 윤리적으로는 딜레마다. 맞춤 아기는 태생부터 타인의 의도와 기준이 개입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안나는 사랑스러운 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픈 언니를 위한 유일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안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언니 케이트를 위해 자신이 가진 수많은 것들을 내놓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무거웠던 이유는, 이 비극적인 상황 속에 악인이 없기 때문이다. 안나의 부모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아픈 딸을 살리기 위해 안나를 수술대에 올리는 부모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딸을 살리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라 할지라도, 한 인간을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를 위한 수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

영화가 그리는 동생의 희생과, 소송 뒤에 숨겨진 자매의 사랑은 아름다운 드라마로 완성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자리잡은 현실의 문제는 여전히 서늘하게 남아있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속 안나와 케이트는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운명을 선택했지만, 과연 현실의 수많은 존재들이 이들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을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단으로 살아야 하는 삶은 너무나 가혹해 보인다. 맞춤 아기, 유전자 가위. 그밖에도 현대 사회를 이루고 있는 혁신적 기술 뒤에는, 여전히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무거운 과제가 놓여 있는 듯하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윤리적 쟁점 위에 따듯한 가족애를 덮으며, 우리가 기술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결국 사람임을 묵직하게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