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leto(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0022949_zphqcbxo.jpg)
청춘을 여름에 빗대는 일은 익숙하다 못해 정형화된 공식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푸른 하늘, 쏟아지는 햇살과 우거진 녹음, 공기 중을 가득 메운 물방울의 맑은 느낌과 선명한 색채. 모두 청춘을 묘사하는 데 적격이며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요소들이다. 관념 속에서 청춘과 동일시되는 여름은 언제나 푸르른 여름이다.
그러나 여기에 홀로 잿빛 여름을 노래하는 영화가 있다. ‘청춘은 여름이다’라는 전제는 동일하나 이들의 필름 안에서 여름이란 색채가 없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회색의 여름이다. 1981년 레닌그라드의 잿빛 여름 속으로 길을 내는 영화의 이름은 <레토>다.
![[크기변환]leto(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0023018_ztryfmud.jpg)
레닌그라드의 뮤지션인 빅토르와 마이크, 마이크의 연인 나타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로 이루어진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레토>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공연에서 환호성을 내지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 자유의 음악을 열망하는, 적국의 음악을 소리 높여 부르는, 위태롭고 미숙하며 그리하여 도리어 아름다운 젊음이다.
이들의 모티브가 된 밴드 ‘KINO’의 음악과 당대를 수놓았던 뮤지션들의 음악은 영화를 이끄는 가장 큰 축이다 - 음악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 주는 단계를 넘어, 음악이 없이는 영화가 진행되지 않는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환상적인 편곡을 통해 원곡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감상을 더하는 것은 <레토>의 큰 매력 중 하나다.
![[크기변환]leto(3).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0023037_katxdpwi.png)
몇몇 곡에 이르렀을 때, 온통 잿빛이던 화면에는 예상치 못했던 선명한 색조가 끼어든다. 동시에 화면에서는 당대의 레닌그라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자유’, 그리고 ‘낭만’이라는 두 단어가 실현된다. 숨막히는 기차 안이 저항의 펑크 록을 펼치는 공연장이 되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무미건조했던 버스 안은 모두가 한 소절씩을 맡아 노래하며 우주비행사처럼 유영하는 장소로 변한다.
비현실적인 색상, 낯설 만큼 자유롭고 낭만적인 전개와 어우러져 꿈 같은 순간을 선사하던 화면은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차분한 문구 하나를 내밀며 찬물을 뿌린 듯 순식간에 잿빛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음.
모닥불 근처에 모여 앉아 노래를 하다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로 뛰어드는 밤. 술인지 약인지 분위기인지 모를 것에 취해 노래하다 끝내 환상의 경계를 넘어 영사기 속 바다로 사라지는 친구들. 이끌려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불가항력적 인력(引力)을 느끼는 이와, 홀로 빗속에서 그 인력의 반동을 감내하는 그의 연인. <레토>가 담아내는 장면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 후대의 열망이 된다. 살아 보지 않은 시절에 대한 애틋함을 품게끔 태어난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이들은 청춘이라는 가사 없이 청춘을 가장 아름답게 노래하는 음악이다.
영화를 지배하는 잿빛 색조는 억눌림과 싸늘함과 그 아래에서 몸을 비트는 청춘을 한데 뭉뚱그린 시대상의 색상이기도 하며, 돌아오지 않을 시절을 기록하는 필름의 색상이기도 하다. 어느 의미에 중점을 두어 받아들이느냐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영화를 보는 모든 이가 공통적으로 공유할 한 가지 감상이 있다면, 그것은 ‘잿빛이 아닌 <레토>는 존재할 수 없다’라는 사실일 것이다.
![[크기변환]leto(2).pn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0023225_dptukcxr.png)
영화의 제목 <레토>는 여름이라는 뜻이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은 KINO의 ‘Summer is Ending(Кончится лето)’을 기반으로 약간의 편곡을 가미한 사운드트랙 ‘Summer Will Be Over Soon’이다. 이들의 여름은, 그리고 여름과 병치되는 대상인 청춘은 - 단순히 젊음을 넘어서, 문자 그대로 푸른 시절은 - 언젠가 끝을 맞이할 것이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잿빛 여름을 향해 날리는 종이비행기와도 같다.
이 여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다시는.
동시에 이 여름은 아름다웠을 것이다 - 그 무엇보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