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단어만큼 복잡한 단어가 있을까.
무엇이든 내 입맛에 맞게 선택하고 맞출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가족’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부터 만들어지는 작은 단위. 그 무엇보다 나와 끈끈하고 끈질기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가족이라 부른다.
누구에게나 필연적인 단어라 그런 걸까? 어떤 창작물에서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는 무척이나 필수적이고, 또 다양하다. 누구의 시선에서 어떤 가족을 그리느냐에 따라 그 형태와 관계가 천차만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가족 얘기를 중점으로 다루는 작품을 감상하게 될 때면 이번에는 또 어떤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가 그랬다.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서로 다른 세 가족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들 세 가족은 국적도, 구성원도 모두 달라 보이는 모습이지만, 어딘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듯하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가족 <파더>는 딸과 아들이 아주 오랜만에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사이가 살가워 보이지 않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기애애하게 안부를 묻고 차를 마시며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일상적인 인사가 끝이 난 후에는 침묵이 공간을 지배한다. 어머니의 상실 이후, 가족 사이에 금이 간 것은 확실한데 그 금을 메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다 보니까 관객들은 대체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결국 저녁 식사를 함께 하지 않겠냐는 아버지의 물음은,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어 하는 듯한 자식들로 인해 불발된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이야기는, 외로이 혼자 사는 아버지가 멀어져 버린 두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인 걸까.
영화는 결말부에서 반전을 선사한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떠나자마자 거실을 꽉 채우고 있던 ‘혼자 사는 노인들이 쓸 법한’ 소품들을 덜어낸다. 그의 손에는 진짜 롤렉스 시계가 반짝이고 있으며 마당 한구석에는 꽤 좋은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연인을 만나러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가는 모습을 보다 보면, 과연 자식들이 알던 부모님의 모습은 ‘진짜’ 그들의 모습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그들이 아버지의 진짜 모습, 즉 여유롭고 풍족한 생활을 영유하는 모습을 알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멀어져 버린 사이 때문일까, 끊겨버린 대화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굳이 더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이 질문은 두 번째 가족의 이야기와도 연관된다. <마더>의 어머니가 온갖 디저트와 차를 준비해 둔 채 자신의 딸들을 기다리고 있다. 1년에 한 번 만나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지는 이 가족은, 역시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티테이블에서 음식과 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옷차림을 칭찬하며 승진을 축하한다. 그러나 역시 그 이상으로 대화는 이어지지 않는다. 첫째 딸은 중간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하고, 둘째 딸은 친구의 차를 타고 왔다는 사소한 사실까지 알리기 싫어 거짓말을 한다. 딸들에게 관심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어머니 또한, 쉽사리 무언가를 말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1년에 한 번 있다는 차 모임을 이렇게 상투적으로 흘려보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들 가족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단절되어 있는 관계처럼 느껴진다. 서로의 깊은 속 얘기는 알려 하지 않는, 관계만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딸들이 떠나는 모습을 문가에 기대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파더와 마더의 모습을 본다면 그렇게 단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는 마지막 이야기인 <시스터, 브라더>에서도 알 수 있다. 사고로 부모님을 잃게 된 쌍둥이 남매가 부모님이 살던 집에서 그들을 애도하고 기억하는 내용이다. 남매는 부모님의 유품 중에 왜 가짜 신분증이 있는지 모른다. 부모님에 대해서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부모님과 함께 떠나보낼 뿐이다. 남은 유일한 가족인 서로에게 기대어서. 유일하게 같은 사람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우리와 가장 가까운 관계는 가족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가 우리 가족에 대해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어쩌면 모든 것을 아는 것보다 한 발짝 멀어져 있는 것이 더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어서가 아닐까. 무언가를 감춰서 소중한 관계-비록 지금은 멀어졌을지라도-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파더>에서 자식들이 아버지의 반전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마더>에서 1년마다 열리는 티타임이 일부의 침묵으로 이루어진 것도, <시스터, 브라더>에서 남매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것도. 모두 지극히 평범한 가족 관계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파더>와 <마더>의 어색한 남매와 자매들 또한 언젠가는 분명 시스터와 브라더의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