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내 영화 취향에 확신이 없었다. 그러다 짐 자무쉬의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아,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던 기억이 난다.
짐 자무쉬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감독이다. <김미 데인저>는 다큐멘터리, <데드 돈 다이>는 좀비 장르였음을 생각하면, 이런 스타일의 장편 극영화로는 <패터슨> 이후 9년 만의 신작이라 기대가 컸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 세 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가족영화다. '파더'는 나이 든 아버지의 집을 방문한 남매, '마더'는 어머니의 집을 방문한 자매, '시스터 브라더'는 최근 부모를 잃은 쌍둥이 남매가 등장한다.
![[크기변환]파더.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16181840_xsgkazvg.jpg)

가족영화는 그린 듯이 아름다운 모습을 주로 다룬다는 편견이 있었다. 이를테면 <바닷마을 다이어리>라는 영화를 봤을 때도 큰 감동을 받았지만,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반면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지만, 왠지 모를 다정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의도치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모두 빨간 옷을 입고 만나게 된 인물들처럼. 분명 그들은 가족이다.
영화에서는 흔히 드라마틱한 갈등을 겪고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실 일상에서 가까운 사람과 솔직하고 깊은 대화를 자주 나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우리 현실의 그런 면모가 고스란히 반영된 점이 좋았다. 영화는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어색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잡담에 가깝다. 그것이 어딘가 우리의 모습 같기에, 이해는 할 수 없어도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크기변환]스케이트보드.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16181857_qnbsrqbv.jpg)
또, 감독의 유명한 전작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무난한 영화였으나, 역시 짐 자무쉬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우선 세 이야기는 장소도, 인물도, 사연도 다 다르지만, 어떠한 모티프들을 반복적으로 노출함으로써 한 편의 영화라는 인상을 확고히 한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 롤렉스 시계, 위에서 촬영한 티타임 샷, 첫 장면부터 놀랍도록 티가 나는 자동차 창밖 CG 등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나름대로 의미하는 바가 있다. 세 편 모두에서 성인이 된 자녀들이 나오지만 실은 보드를 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것. '파더'에서는 가짜 같지만 진짜인 시계, '마더'에서는 진짜 같지만 가짜인 시계. 어색한 CG를 닮은 인물들의 어색한 기류. 그럼에도 가끔은 마주 보고 앉아 차 한잔을 함께하는 것. 진짜인 듯 가짜 같은 이 가족이라는 이름.
누구나의 일상에 존재할 법한 소소한 웃음 포인트들도 존재한다. (얼굴을 가리도록 큰 화분이라든지) 감독을 잘 모르는 이들도 얼마든지 입문할 수 있을 만한 부드럽고 잔잔한 작품이었다.

끝으로, '파더'와 '마더'에서는 주로 그러한 위트와 염세가 돋보였다면, '시스터 브라더'에서는 한결 차분한 톤으로 영화를 매듭짓는다. 그렇게 서로 어색하고 붕 떠 있는 가족이었지만, 부모가 아예 부재한 상황에서는 형제에게 기대어 눕게 된다.
영화를 볼 때 이 장면이 마지막 장면임이 느껴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더 보지 않아도 그냥 알 수 있는 장면.
이 영화에서는 쌍둥이 남매가 창고로 향했을 때 그 느낌이 들었다. 부모의 유품을 잔뜩 쌓아둔 그 창고 앞에서 나중에 하자고, 지금은 감당 못 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더없이 좋았다.
긴 머리의 브라더와 숏컷의 시스터가 함께 퇴장하고, 나는 그렇게 다시 내 세상으로 입장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