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면 어김없이 따뜻한 가족 영화들이 생각나곤 한다. 큰 테이블에 따뜻한 음식들이 가득 올라와 있고, 주황빛 조명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 그리고 북적북적한 사람들까지 곁들이면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켜며 보았던 창가 너머의 화목한 집안의 풍경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 속 가족들은 서로 포옹을 나누고 즐겁게 웃으며 차가운 겨울 속 유일한 서로의 등불이 되어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 가끔 일부 모습은 현실에서 발현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 시트콤 속 가족들처럼 작은 해프닝들이 이어지며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균형을 유지한다.
제82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 사자 상을 수상한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3부작 형식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장편 영화다. 세 편의 이야기는 타의든 자의든 서로 거리를 둔 가족 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인물들 간의 대화를 통해 각각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성격을 알 수 있고, 그들의 과거를 유추할 수 있는 점에서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내용이 시나리오가 있는 영화라는 점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회 실험의 한 장면을 보듯 삐거덕 대는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긴장감과 애정이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시니컬한 유머 코드가 가득한 대화 속에 마치 엄마나 아빠, 형제들과의 나눈 메신저 내용이 생각나면서 공감 가는 포인트가 가득하다.
세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재미도 있다. 슬로 모션처럼 보이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 아이들, 빨간색의 의상, 명품 시계, “밥이 네 삼촌이다” “차로 건배해도 되나?”라는 대사까지 각각의 이야기에서 문화적, 관계적 차이를 보이며 의미를 자아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색깔이다. ‘파더’ 이야기에선 남매가 붉은색 니트를 입고 아버지는 푸른 계열 후드티에 모자 부분에 살짝 붉은색이 가미돼있다. 개인적인 해석으론 붉은색이 의미하는 것이 가족 내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붉은색 말고도 눈에 띄는 색은 대비되는 푸른색이었는데 미스터리한 캐릭터인 아버지는 푸른 계열이 가미된 집에 파란 후드티를 입고 있어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한 모습으로 보였다.
반면 ‘마더’의 어머니는 강렬한 레드 트렌치코트를 입고 레드 립을 칠하고 있다. 이는 상담사에게도 권위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머니의 강한 성격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말로 주로 나타내기 때문에 입술까지 빨간색으로 칠한 게 아닌가 싶다. ‘파더’ 부분과 마찬가지로 ‘마더’의 집 또한 소파나 책이 푸른 계열을 많이 띄고 있으며, 그들의 대화가 이뤄지는 티타임 테이블보다 푸른 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다.
재밌는 점은 가족 중 부모와 연결된 점이 있거나,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자식도 푸른색 의상이나 물건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파더’에는 남매가 나오지만 아버지와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집 수리와 같은 온갖 핑계를 대는 그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아들은 붉은 니트 안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있다. 그가 아버지를 위해 값비싼 생활품들로 가득 찬 박스를 주며 하나하나 설명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들을 보여주는 아이 같아 어쩐지 짠해 보였다.
이런 모습은 ’마더‘에서도 표현되는데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첫째 딸은 하늘색 와이셔츠 안에 붉은 이너를 입고 있고 차량 색도 푸른색이다. 반면 자유로운 영혼의 둘째 딸은 장난기 많아 보이는 캐릭터가 그려진 붉은 상의에 금목걸이, 청바지를 입고 핑크색 머리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의 상반되는 캐릭터는 어머니의 책을 몰래 보는 장면에서 뚜렷하게 보이는데 자신의 책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는 어머니의 성격을 아는 첫째 딸은 동생을 말리면서도 궁금한 점을 멈출 수 없고, 동생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결국 어머니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 책을 꺼낸다.
‘시스터, 브라더’ 섹션에서도 대비되는 색은 보이지만 앞선 이야기들처럼 눈에 띄진 않는다. 안타까운 사고로 부모를 잃은 남매는 푸른 계열이 아닌 짙은 회색의 청바지를 입고 있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찾은 부모의 집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여동생은 붉은 나시를 입고 있고, 그녀에게 버팀목이 돼주며 담담하게 이겨내려 하는 오빠는 가방에 작은 붉은 액세사리만 달려 있다. 무채색으로 된 집 안과 두 남매의 모습과는 대비되게 가족들과 함께 찍은 옛날 사진은 알록달록한 모습이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졌다.
“차로 건배해도 되나?” “뭐 어때” 세 가족은 오랜만에 모인 서로를 위해 물과 차로 가득한 컵을 높이 든다. 비록 자주 만나거나 심적 거리가 가까운 가족들은 아니어도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순수한 물처럼 서로가 이어진 존재임을 각인시키는 것만 같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시대가 거듭될수록 전형적인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가족들이 광범위 해지고 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대화하기가 어려워도, 함께한 시간이 짧아도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동네 아이들처럼 어디에든 있고, “밥이 네 삼촌이잖아!”라는 말처럼 간단하고 쉽게 해결되는 사이이지 않을까? 가족 행사가 많은 연말, 간결하고 우아한 시선으로 관계를 다시 되짚어 보는 영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12월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