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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심해는 우주와 닮아있다. 끝도 없는 공간, 인간의 존재를 한낱으로 만드는 위압감, 그리고 미지의 두려움. 바다는 우주와 닮아 있다. 찬찬히 떠올려 본다면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문학동네 시인선 242, 신진용 시인의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는 이러한 심해와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다.

 

심해와 우주는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나의 경우에는 가장 먼저 미지의 두려움이 떠오른다. 인간이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유이한 두 지역, 바로 심해와 우주이다. 온갖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성대한 문명을 이륙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발전된 형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바다 아래와 하늘 너머로 시선을 돌린 이들은 여지껏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도 그 중 한명이니까 이는 저명한 사실이라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신진용 시인의 심해와 우주는 어떤 형태일까. 시집을 통해 그 형태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시라는 형태가 주는 특이성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에도 '독서 붐'이 왔다. 이전보다 독서량은 물론, 서점을 찾는 이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바야흐로 활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자는 더 이상 특이한 대상이 되지 않는다. 90년대만 해도 지하철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신문이 대중교통에서의 마지막 활자였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각종 전자 기기에 밀려 사라질 줄 알았던 활자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물리책이 아니더라도, 각종 E-BOOK 리더기의 등장으로 우리는 어디서나 편하게, 공간의 제약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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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러한 활자의 시대에도 시는 여전히 낯선 형태이다. 순식간에 빠져드는 소설, 나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에세이, 삶의 목표 설정을 도와주는 자기개발서와는 달리 읽는 사람에 따라 그 후기가 천차만별인 시는 아직도 대중 사이에서 익숙하지 않은 문학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학동네의 시인선을 통해, 그리고 각종 서점을 통해 이전보다는 쉽게 시를 접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식을 지우기는 힘들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다소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자발적으로 시집을 읽어본 적이 없다. 아마 심해와 우주를 이야기하는 시집이 아니었다면 한참 뒤에야 내 첫 시집을 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 시집을 읽기 시작한다면, 그 매력에 이끌려 자연스레 다른 시집들도 찾게 될 것이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시와는 달리, 현대시가 주를 이루는 현재 문학 시장에서 시집 한 권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집을 계속해서 다시 읽고,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다이어리에 시에 대한 생각을 적거나 친구들과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의 첫 시집은 완전히 내 삶 속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도 현대시를 접할 기회가 드문 대중에게 상당히 낯설게 다가온다. 심해와 우주를 글자로 표현한 듯한 구성은 처음 시집을 읽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어야 할 지 감도 못 잡을 정도로 다가온다. 대체 각주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이고 문단 구성은 또 왜 이런지. 읽는 내내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그렇게 1회독을 마치고 나면 대체 무엇을 읽은 것인가 호기심이 생긴다. 그렇게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심해에서 우주를 그리고 있다.

 

 

 

심해와 우주, 그리고 마음


 

*모든 해석은 개인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에는 심해와 우주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마음이다. 마음은 여러 형태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바닷물에 휩쓸린 모래 위 글씨처럼, 혹은 오래된 행성에서 보내는 편지 속 진심처럼. 그도 아니면 하나의 종교적 형태로, 아니면 인간의 형태로. 각자의 마음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형태에는 심해와 우주도 예외가 아니다.

 

심해, 다른 말로 해저는 끝도 없이 하늘을 바라지만 결국 하강한다. 수평선에 닿는 순간은 찰나이지만, 하강은 영원하다. 하늘의 천국을 꿈 꾸지만 해저에는 끝도 없이 깊은 또 다른 해저의 천국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바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어떠할까. 해변에서 우리는 여러 마음을 그린다. 모래 위 글씨 역시 찰나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그 찰나보다 오래 간다. 지워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형상화이다. 필자는 내내 소멸과 잔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마음을 중심으로, 각종 형태의 공간에서 소멸과 잔류는 영원하다. 소멸의 순간으로 마음은 끝나는 것 같지만, 미련, 사랑, 정, 기타 등등의 형태로 잔류한다.

 

해저가 마음의 종착지라면 우주는 무엇일까. 필자는 마음의 중력으로 구성된 우주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이토록 강대한 중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되지 못한다. 얼만큼의 중력이 존재해야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모일 수 있을까. 필자는 그 때를 상상하며 다시 우주로 편지를 보낸다. 오래된 이 행성에서, 언젠가 없어질 행성에서. 없어질 행성은 지구를 뜻한다. 편지를 받은 존재에게 지구는 오래된 행성이다. 무한한 우주에 한 점일지라도, 끝도 없는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는 우주일지라도. 우리의 행성은 언젠가 없어진다. 없어진 행성에서 모인 마음을 담은 편지는 우주를 건너 곧 누군가에게는 닿을 것이다. 그 편지가 닿고 나서도 우리의 마음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필자는 계속해서 마음을 이야기한다. 해저의 마음, 해변의 마음, 우주의 마음, 행성의 마음, 그리고 마음 그 자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강력한 힘인 마음은 어쩌면 해저나 우주보다도 더 미지의 두려움이다. 우리는 마음 하나를 읽지 못해 늘 전전긍긍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교류 속 마음의 존재는 우리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다가도,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게 없는 힘을 주기도 한다. 가 볼 수 없는 것들. 그 중심에 있는 건 마음이다.

 

여러 보이지 않는 것들의 본질적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려 하면 상당히 막막하다. 필자의 말대로 '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평생 경험하지 못 할 가능성이 높은 것들에 대한 고뇌는 시작하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그러나 '없어질 행성에서 씁니다'는 그 시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대시의 특징을 살려서 마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형상화 한 여러 시는 감히 닿을 수 없는 개념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이번 겨울, 시집과 함께 생각의 힘을 기르는 한 해의 마무리를 보내도 색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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