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오고 한 사람이 간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일이라고들 하지만 내겐 인연의 유동성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속수무책 한지를 깨닫게 되는 상황에 더 가깝다. 특히 연말은 주변인들의 이동이 더 잦은 시기이다. 대학생과 사회인의 경계에 있는 지금, 학기가 끝나 졸업하는 동기들, 취업에 성공해 또 다른 행선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친구들, 퇴사하는 선배, 부서를 옮기는 상사 등 헤어지게 되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다.
고등학생 때까진 같은 학교란 울타리가 꽤 강력해서 찾으면 언제나 친구들이 눈앞에서 찾아졌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나와보니 지인이 되는 사람들은 전국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갖고 모인 이들이었다. 나와는 고작 어쩌다 같은 수업을 들어서, 친구의 친구여서, 일하던 곳의 책임자여서란 작은 이유로 인연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때 각자가 가지는 다양성은 더욱 가시적이다. 고향도 나이도 진로도 제각각인 사람들과 나를 하나로 묶는 끈이 이렇게 사소하고 연약한 공통점이라니, 참 얄궂다.
지금처럼 흘러가는 생에 의해 자연스럽게 누군가와 멀어져야 할 때면 늘 미련과 괴로움은 내 몫인 것만 같다. 더는 서로의 삶이 겹칠 일도, 그럴 명분도 없을 것 같단 느낌이 오래 맴돈다. 내가 제외된 상대의 세상에서도 삶은 여전히 그대로 흘러갈 테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나조차도 상대의 안부를 잊고 살게 될 거란 생각에 무력해진다.
헤어짐은 본래 양방향의 행위라고 믿어왔지만, 막상 이런 순간마다 상대는 일방적으로 떠나고 나는 남겨지는 쪽이라는 기분이 든다. 어쩔 땐 손쓸 수 없는 상황과 삶의 변화무상함, 관계의 일시성을 미워하기도 했다. 미처 다 주지도 못한 정을 붙든 채 어쩔 수 없는 뒷모습만 바라보는 오래된 성정은 매번 내게 이런 질문을 남겼다. 왜 관계는 영원할 수 없는 건지, 왜 헤어지는 일은 이토록 슬픈 건지.
한 사람이 가는 일이 이토록 슬픈 이유는 한 사람이 온다는 게 어마어마해서다. 누군가 내 삶에 들어왔다는 것은 대략 이삼십 년의 과거와 일 년 남짓한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사오십 년 치 미래가 한꺼번에 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삶의 총량을 동반하는 도착은 정현종 시인의「방문객」을 읽는 순간 구체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인생이 오기 때문이다.”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섬>(문학판, 2009) 수록
시인은 한 사람의 도래를 그의 전 생애가 다가와 문을 두드리는 사건으로 그려낸다. 그리고 그 방문객의 일생에는 “부서지기 쉬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들어있다. 지금까지 내 삶에 잠깐 머물다 간 방문객들과 그들이 가지고 왔을 마음들을 생각해 본다. 학생 때의 아팠던 짝꿍, 같은 방에서 살았던 반 친구, 가깝게 지냈던 교수님, 먼 곳에서 온 동료까지. 나와 마주하기 전 어떤 일들을 겪어왔을까, 어떤 슬픔을 지녔을까.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과 함께 다가온 방문객은 자기 삶 전체를 등에 업은 채 내게 왔었구나.
그런 인연들을 머물 때가 되어 머물렀고 떠날 때가 되어 떠난 '시절인연'으로 치부하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자신의 인생 전부를 데리고 방문하는 ‘객’의 존재로 승격시킬 때 우리는 그들을 더 잘 맞이하고 배웅해 줄 수 있다. “바람을 흉내” 내며 “그 갈피”를 “더듬어”보고, 사람이 온다는 것, 그래서 간다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일인지 인지하는 순간 모든 방문객이 한층 더 소중해진다.
삶에서 여러 방문객이 떠나야 하는 시기다. 객이 올 때는 한 생애가 통째로 온다. 객이 갈 때는 그 생애 전체가 도로 문틈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목격한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이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간다는 것 또한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그러나 나와 잠시 함께했던 일생을 지닌 채 더 나은 곳으로 향하려는 객을, 그리고 그가 지닌 부서지기 쉬운 마음을 바람의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다면, 모든 방문과 떠남은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