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길을 거부하는 사람. 나의 짧다면 짧은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거다. 정형화 된 길을 누구보다도 착실히 걸어왔지만, 그 누구보다도 거부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내가 애정한 모든 것이 그 반항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피아노와 작곡부터 시작해서 법의학과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내가 '애정'해온 대상은 전부 흔히들 말하는 '돈이 안 되는 것'들이었다. 당연히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는 작은 핑계를 대 본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는 그 애정들을 여전히 간직한 채 살아오고 있다. 그저 치기 어린 학생의 꿈이었더라도, 내 세계를 넓혀주고 그 세계로 향할 수 있게 도와준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 중 현재의 나를 완성시킨 두 요소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한다. 바로 음악과 천문학이다.
나의 세계를 형성하는 과정
내가 음악을 언제부터 사랑했을까? 정확한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이라 정의하기 시작한 건 15살 때부터다.
클래식 피아노만 치던 나에게 밴드부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무대가 아닌,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함께 음악을 완성해나가는 무대라니. 마치 이 세상은 나 혼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며 위안을 건네는 듯 했다. 때마침 그때의 나는 손목 부상으로 큰 상심을 얻은 상태였다. 당연하게도 클래식 음악으로 먹고 살 것이라는 어린 날의 희망과 착각. 그런 환상을 깬 첫 단계가 아이러니하게도 손목 부상이었다. 클래식은 물론, 피아노 자체가 보기 싫었다. 그런 나에게 다른 기회로 다가온 게 밴드부였다. 부담되는 혼자만의 무대가 더 이상 아니었다. 천천히 하나씩 부원들과 맞춰가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음악을 연주하고, 듣고, 사색에 잠길 때면 내 세상이 더욱 넓어지는 듯 하다. 음악이 닿는 곳은 새로운 생각이 열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각하게 된다. 나만의 세계를 형성하게 된 것도 모두 음악 덕분이었다. 내 생에 첫 우울을 함께한 것도 음악이었지만, 그 우울을 극복하고 빠져나올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음악이었다. 내가 나의 모든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던 시작점에는 음악이 함께 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아직도 음악을 사랑한다. 15살의 그 때처럼 심장이 뛰는 건 아니지만, 하나 확신할 수는 있다. 내가 평생을 함께 갈 존재라고.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의 출발점도 모두 음악이었다. 나의 애정 대상, 그 시작도 대부분 음악이었다. 음악을 듣고 좋아하게 된 책, 음악 때문에 좋아하게 된 영화, 음악으로 인해 생긴 인연 등. 나의 모든 세계의 시작점이자 그 끝인 음악을 사랑한다고 나는 기꺼이 말 할 수 있다.
좀 더 큰 세계로
천문학과 음악.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조합은 한 밴드에서 시작한다. 바로 밴드 '원위'이다. 19살이 막 되었던 나는 그저 막연하게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할 거라 생각했다. 별다른 꿈이 없는 이과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거다. 컴퓨터가 좋아서가 아닌, 모두가 하니까 따라간 거다. 인생의 모든 궤적에서 큼직한 반항을 쌓아온 나에게는 다소 부끄러운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밴드 '원위'를 알게 된 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밴드 '원위'는 우주를 노래하는 밴드라고도 불린다. 대부분의 노래가 말 그대로 각종 우주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수많은 우주를 들으며 내가 쉬이 지나쳤던 나의 새로운 애정을 상기할 수 있었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내가 가장 흥미로워 했지만 애써 묻어두었던 정의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모든 것인 이 가설은 고등학교 물리학1 시간에 배운다. 그저 내신을 위해 암기한 정의이지만, 이 정의는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외면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피아노를 꿈으로 삼기에는 너무 무모하다는 이유로 한 번의 상심을 겪었던 내 마음이 그 마음을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밴드 '원위'의 여러 우주를 통해 내가 애정하는 것들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도 큰 애정이 되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드러낼 수 있구나, 하는 희망과 용기를 얻었던 거 같다. 어쩌면 일종의 분출일 수도 있겠다. 정확히 당시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하나 확실한 건 그 이후로 내가 천문학을, 정확히는 천체물리학을 좋아한다 말할 수 있던 것이다.

천문학을 꽤 진심을 다해 좋아했다. 대입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쓸 때, 다른 학과로는 도저히 쓰기 싫어서 결국에는 천문학과로 썼다. 천문학과로 방향을 바꾸니 놀랍도록 글이 잘 써졌던 건 덤이었다. 짧은 시간에 깊이 빠진 거지만, 내 감정이 잠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애정은 오래갔기에, 그리고 나를 우주라는 훨씬 큰 세상으로 연결시켜준 천문학을 절대 놓을 수 없기에. 내 세계의 시작점인 음악과 비슷한 감상이었던 거 같다. 시작과 끝이 음악이라면, 그 구성 대부분은 우주일테니까.
천문학자 중에서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한없이 거대한 이 우주 앞에서 우리의 존재는 너무나도 작고 별 거 아니라서 회의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살짝 다르다. 내가 천문학과에 진학한 것도 아니고, 천문학자는 더욱이 아니기에 다른 감상은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나는 우주를 생각할 때 경외심과 동경심이 가장 먼저 든다. 그리고 이어지는 쓸쓸함은 아마 내가 두 번째로 상실감을 겪었던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외심과 동경심의 이유는 간단하다. 나의 모든 생각들이 이 우주 앞에서는 별 거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종종 한없이 깊은 만약의 늪에 빠진다. 만약 내가 이 학과에 진학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그때 이걸 이렇게 했더라면. 이 모든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결국 밤잠을 다 설치게 한다. 그러나 끝도 없는 이 우주 앞에서는 나의 생각들은 모두 먼지만도 못한 걱정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의 늪은 곧 가능성의 미련으로, 내 미련은 한없이 구질구질하다. 그러나 우주는 딱 잘라서 말한다. 걱정과 근심은 모두 먼지라고. 나를 만약의 늪에서 꺼내주는 가장 확실한 위로이다.
현실이 허락하는 한에서 최대한 낭만적으로. 현실과 내 세계의 타협점이다. 그 타협점 속에서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낭만과 애정을 추구하며 살아갈 거다. 그게 내 세계가 나에게 알려준 삶의 방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