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라벨 밤의 가스파르 중 교수대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참 좋아한다. 앞선 모든 말들을 다 반전시킬 수 있는 마법 같은 문구다. 그 어떤 부정적인 말이 나열되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면 모든 걸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술, 그 중에서도 미술에 대한 책을 벌써 두 차례 읽는 중이다. 부끄럽게도 인문학 책을 가까이 하지는 않는 편이라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완전히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나에게 지난 제작 활동을 돌아볼 소중한 계기를 제공했다.

 

 


예술은 죽었다.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예술은 죽었다’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이 한 문구로 귀결된다. 함께 살아가는 것. 시간이 지나며 예술을 바라보는 기준은 계속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전하는 가치는 언제나 명백하다. 작품을 통해 창작자가 살아온 과정을 바라보고 그 너머를 짐작하는 경험, 즉 타인에 대한 이해이다.


공동체 사회에서는 치우친 시각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름을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과의 차이를 꾸준히 인식하고 성찰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한데, 책은 바로 그 역할을 예술이 기꺼이 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는 그 예술의 역할이 향유하는 사람보다 창작자에 더 가까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완성된 예술은 그런 질문들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줄 순 있지만, 타인 이해의 해답을 쥐어줄 수는 없다.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학교 졸업 공연 당시, 나는 연습 과정과 제작팀의 노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완성된 작품보다도 이 과정을 기록해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고 부딪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모양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모두 드러내고 싶었다. 실제 공연이 예술의 완성된 모습에 조금 더 가깝겠지만, 나는 실제 공연은 모든 본질의 10%도 담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가진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니었다.


‘서로 너무도 다른 우리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공교롭게도 실제 연극의 주제도 유사했다. 원시 인간들이 큰 환경적 변화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것인가. 그럼 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연습과 제작 과정이 연극 너머의 주제를 크게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관객들은 실제 공연을 보지만 그 이후의 내막을 상세히 알진 못한다. 하지만 창작진들은 그 과정을 모두 보고 몸소 체험한다. 그리고 공연을 마무리하고 무대를 철거하는 그 순간까지 공연을 시작했을 때부터 시작됐던 그 모든 과정이 체화된다. 예술은 결국 그 모든 순간들을 거쳐 창작자들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의 모습을 알아가면서, 기꺼이 상대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의 틈을 열 수 있게 된다.

 

 

 

예술은 살고 있다.


 

이처럼 예술의 생사는 어느 한 쪽의 시선으로만 고려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모든 예술의 형태 속에서 내가 그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책이 말하는 예술은 마치 액체같다. 어떤 병에 담기냐에 따라 예술이 보여주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진다. 콜라병에 담긴 예술을 본 사람은 맥주잔에 담긴 예술을 보고 죽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술을 담는 그릇은 계속 변하지만, 우리는 그 변화의 형태를 인지하고,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현대의 예술이 건강하게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예술을 어느 전공자의 영역으로만 한정하지 않고, 저마다의 표현 방식으로 풀어내는 긍정적인 교류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옹기 그릇에 담긴 예술은 죽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그릇에 담길 다양한 예술은 앞으로도 기꺼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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