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인천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 INAS 2025(인천 아트쇼)가 돌아온다. 미국, 일본, 독일, 중국, 태국 등 10개국 200여 개 갤러리가 참여하고, 전시 규모는 5,000여 점에 이른다.
작년 기준 방문객은 약 7만 명, 거래액은 100억 원 이상이었다는데 어떤 분위기일지 상상만으로도 북적인다.
올해 INAS가 나에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2년 전 함께 전시를 기획했던 이들이 ‘낫포유(NotForYou)’라는 신진 아티스트 콜렉티브를 꾸려 이 페어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작업 방식도, 태도도 ‘정답 없이 함께 논다’에 가까운 팀이라 늘 흥미로웠기에, 이번 데뷔 무대가 유독 기대된다.
신진 아티스트 콜렉티브 ‘낫포유(NotForYou)’
낫포유는 2024년 결성된 콜렉티브다. 사진작가 유영재, 일러스트레이터 박재홍, 후각예술가 이정우, 전시기획자 김태언이 수평적으로 협업한다.
이들의 방식은 단순하다. “하나의 규칙을 정하고, 그 안에서 각자 하고 싶은 대로 논다.” 인터넷 밈부터 고전 명화, 모두에게 익숙한 심리 현상까지 가볍고 넓은 스펙트럼을 다루면서도, 매체는 사진·일러스트·향·오브제처럼 각자 다른 길로 뻗어나간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결과물도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그래서인지 올해 INAS 2025에서 그들이 선보이는 전시는 제목부터 독특하다. 《BANANA TAKES OVER!》
만약 선악과가 바나나였다면? – 《BANANA TAKES OVER!》

이번 전시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관습적 상징들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어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세잔의 사과는 현대회화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애플의 로고는 디지털 혁명을 상징하며, 선악과는 낙원의 붕괴를, 그리스·로마 신화 속 황금사과는 신들의 전쟁을 불러왔다.
말하자면 사과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다양한 의미를 품어온 ‘상징의 총집합’이다.
낫포유는 이 무거운 상징 체계를 아주 단순한 규칙 하나로 뒤흔든다. 바로 “사과를 바나나로 바꾸기.”
사과가 언제나 무게감 있는 상징을 품어왔다면, 바나나는 반대로 슬랩스틱 코미디나 만화적 익살을 떠올리게 하는 가벼운 과일이다. 낫포유는 이 대비를 활용해 마그리트의 대표작부터 카프카의 소설 『변신』, 그리고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문장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고 위트 있게 다시 풀어낸다.
그 결과로 뉴턴의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늘로 치솟는 바나나, 화면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세잔식 바나나 정물화, 백설공주에게 건네지는 ‘바나나 선악과’ 같은 장면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총 9점의 시각·후각 기반 작품들과, 조향사가 직접 제작한 전시 기념 캔들 1종으로 구성된다.
움직여야 보이고, 향으로 완성되는 작품
![[포맷변환]_동적인 정물화 2_웹용.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17185255_gwbiobdf.jpg)
대표작은
낫포유는 이 단순한 가정을 바탕으로 기존의 상징을 비틀고 새로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확장해 나간다. 사진작가 유영재, 일러스트레이터 박재홍, 후각예술가 이정우가 함께 작업한 이 작품 속 바나나는 중력에 끌려 떨어지는 대신, 오히려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솟아오른다.
떨어지는 사과가 ‘우연한 순간의 깨달음’을 상징한다면, 하늘로 치솟는 바나나는 ‘능동적으로 방향을 틀어 나아가는 혁신’을 상징하는 셈이다.
작품은 렌티큘러 기법으로 제작되어,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바뀐다. 왼쪽에서 보면 떨어지는 사과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떠오르는 바나나가 나타난다. 즉, 그저 멈춰 바라보는 것으로는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이 직접 좌우로 움직이며 두 장면을 스스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 ‘바나나 + 땀 향’을 섞은 향이 은은하게 퍼져, 땀 흘리며 상승하는 바나나의 에너지까지 후각으로 전달된다. 이처럼 관객은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움직이고 보고 냄새 맡으며 작품을 완성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이는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가 말한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개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포맷변환]_매달아 올리기_웹용.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1/20251117185255_qwlibewt.jpg)
아트페어 속에서 되묻는 질문: 몰입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트페어는 대체로 가격과 투자, 거래 중심의 분위기가 짙다. 하지만 낫포유는 이번 부스에서 그 흐름의 반대편에 서고자 했다고 말했다. “우리가 예술을 좋아했던 이유는 결국 작품이 주는 ‘몰입’ 때문이 아니었을까?” 관객이 작품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잠시 현실을 벗어나는 그 경험, 그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힘을 다시 불러오고 싶었다는 설명이 특히 인상 깊었다.
사실 이러한 태도는 이전 전시에서도 이미 드러난 바 있다. 올해 홍대 인근 갤러리 ‘알지비큐브’에서 열린 《담배 빌려드립니다》展에서는 ‘마니아’의 세계를 시각·후각·이미지 감각이 뒤얽힌 방식으로 구현하며 다감각적 몰입을 유도한 바 있다.낫포유는 이처럼 ‘놀이 형태의 협업’을 실천하는 팀이다. 사진, 회화, 후각이라는 서로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이 “사과를 바나나로 바꾼다”라는 단순한 규칙만 공유한 채,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변주한다.
그래서 이들의 전시 공간은 유독 ‘놀이의 자리’처럼 느껴질 것이며, 움직이고, 맡고, 웃고, 다시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관객은 어느새 작품의 공동 제작자로 나서게 될 것이다.
MZ세대가 만든 ‘밈 아트’, SNS 시대의 새로운 미술 언어
개인적으로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대되는 지점은, 낫포유가 인터넷 밈(meme) 문화를 예술의 언어로 끌어올린 방식이다. 익숙한 이미지를 비틀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밈의 속성은 이미 SNS 세대에게는 하나의 직관적인 감각으로 자리 잡았다. 낫포유는 이 감각을 사진·일러스트·향·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는 작업으로 확장하며, 단단히 굳은 신화를 유머로 풀고, 무거운 담론 대신 일상의 가벼운 즐거움으로 관객과 만나려 한다.
그 시도 자체가 오늘의 MZ세대가 사용하는 새로운 예술 언어처럼 느껴진다. 전시의 공간 연출을 맡은 브랜드 경험 디렉터 김자영의 ‘하우스 오브 노에네(House of Noene)’ 역시 큰 역할을 한다. 노에네는 아이디어의 본질을 ‘경험’으로 전환하는 데 능한 팀인데, 이번에도 낫포유의 놀이적 세계관을 관람자가 직접 참여하고 몸으로 느끼는 감각적 서사로 구축했다고 한다.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관객이 그 안으로 들어가 함께 ‘논다’는 개념 자체가 이번 작업의 핵심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INAS 2025는 그 자체로도 매우 큰 축제지만, 그중에서도 낫포유의 《BANANA TAKES OVER!》는 개인적으로 놓치기 아까운 전시다. 예술이란 결국 ‘함께 놀고, 참여하며, 잠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경험’이라는 사실을 기분 좋게 상기시켜주는 팀이다. 올해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리는 INAS 2025에서, 겉과 속살이 전혀 다른 바나나처럼 익숙한 감각을 뒤집는 이들의 세계를 한 번 마주해보길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