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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이다. 여름은 이미 지나갔고 언제 올까, 기다리기만 했던 가을이 이제서야 막 다가온 것 같다. 곧 12월이 되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금방 모습을 감춰버리겠지만 이렇게라도 슬쩍 얼굴을 비추니 감사할 따름이다. 작년, 재작년에 비하면 거의 사라진 계절이라 불려도 무방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 나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을 꼽으라면 가을을 꼽을 것이다. 우리는 11월의 어느 날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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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낸다는 건 감이 익어간다는 것


 

가을은 따뜻한 색감의 계절이다. 낙엽도, 과일도, 사람들의 재킷도 노란색, 주황색, 밝은 갈색으로 바뀐다. 여름에 비해 한층 낮은 색감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따뜻한 색의 향연으로 보인다. 연한 주황이었던 감은 점점 무르익어 가 형광을 띨 정도로 밝아진다. 연한 주황에서 형광 주황이 되었다는 건, 감이 익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익어가는 감은 물렁물렁해진다. 만지면 폭 들어가고 세게 만질 때는 손자국이 남을지도 모른다. 다 익은 감을 접시에 두고 반으로 잘라 스푼으로 조심조심 먹으면 달콤한 가을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지내고 무릇 새싹이었던 생명들이 노랗게 익어가는 나날. 겨울을 보내기에 앞서 우리는 저마다의 색으로 익어가고 있다.

 

중고등학생의 삶으로 비유하자면 봄은 학교 입학, 여름은 학교 적응, 겨울은 작별 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맘쯤 졸업을 앞둔 대학생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가을은 어떤 계절일까. 가을은 익어가는 계절이다. 봄, 여름 동안 해왔던 일들을 천천히 되돌아보는 시간, 연말에 앞서 자신이 해온 것들을 정리하는 순간. 이때 사람들은 초록의 경계에서 벗어나 각각의 색으로 무르익는다.

 

그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 세상은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진한 갈색 혹은 연한 갈색으로 물든다. 그렇게 따뜻한 세상에 모여 사람들은 물렁물렁해진다. 콕 찌르면 푹 들어가는 계절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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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낸다는 건 발치에 별이 떨어진다는 것


 

노란 낙엽을 멀리서 보면 꼭 별 같다. 나뭇잎이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질 때 햇볕이 든다면 꼭 별들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렇게 떨어진 별은 길바닥에 놓인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별을 밟고 다니는 것이다.

 

노란색 낙엽이 아니더라도 가지각색의 낙엽을 길바닥에서 마주치면 왜인지 모르게 한번 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든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은 두 손으로 들기도 어려울 만큼 무거울 테지만 바닥으로 떨어지는 별은 두 손 잔뜩 들어도 가볍다. 떨어진 낙엽을 모아다가 허공에 뿌리면 그게 바로 별똥별이다.

 

그러니 가을이 된다면 우리는 마음속에 소원 하나 정도는 꼭 지니고 다녀야 한다. 혹시 모른다. 어디 길 위의 노란 낙엽이 우리의 소원을 궁금해할지도. 연초서부터 꾹꾹 눌러 담은 바람이 있다면, 만약 그 바람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채라면 아직 포기해선 안 된다. 가을은 포기를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별똥별처럼 행운을 가져다주는 계절이니까. 발에 채는 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 많은 별이 많은 사람의 소원을 들어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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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낸다는 건 터진 은행을 쓸어 모은다는 것


 

가을은 냄새로도 알 수 있다. 은행나무의 은행이 떨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다 익은 은행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길바닥 위로 툭툭 떨어진다. 무방비하게 터져버린 은행은 고약한 악취를 동반한다. 저절로 코에 손이 간다. 맡고 싶지 않은 냄새가 자꾸만 풍겨온다.

 

하지만 은행의 악취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터진 은행을, 떨어진 낙엽을 쓰는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냄새나는 은행을 빗자루로 천천히 쓸어 모으다 보면 바닥이 저절로 청소되고 냄새는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하루하루 쓸다 보면 바닥도, 마음도 깨끗해진다. 기분 나쁜 나날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맘때쯤이면 가을이 끝나 가있다.

 

가을은 겨울이 되기 전 묵혀왔던 감정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는 계절이다. 터져버린 은행을 계속해 쓸어 내는 것처럼, 어지러운 감정도 쓸어내면 된다. 한 박자 쉬어가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정리하지 못했던 것들이 불쑥불쑥 마음에 떨어지고 터져버리면 쓸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되어주는 게 바로 가을이다. 우리는 그렇게 내일을 준비하고 겨울을 맞이한다.

 

사계절 중 가장 짧은 계절이 되어버려 눈 깜짝할 새 사라지기도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가을과 함께이고 싶다. 우리 모두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미래, 제발 누군가 들어줬으면 하는 소원, 모른 척 외면해 온 감정이 있다. 하지만 이제 다 괜찮아질 거다. 우리는 가을을 보내는 중이니까. 어쩌면 우리가 달고 사는 불안함도, 금방 사라지는 가을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가을을 보낸다는 건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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