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고향으로 이장할까 한다.”

 

아버지가 입을 뗐을 때 식탁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며 밥을 깨작거렸고, 나는 고개를 잠깐 갸웃하고는 다시 콩나물국을 들이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잘 바른 생선 조각을 엄마 밥 위에 하나, 내 밥 위에 하나 공평하게 올려놓은 후에야 본인 밥을 크게 한 숟갈 떴다.

 

아버지는 고향에 있는 선산으로 얼른 두 분을 모시고 오라며 종중에서 성화를 부린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몇 년 동안 고민을 했는데 요즘 세상에 아들이 새삼 돌아가신 조부모님까지 모실 것도 아니니 차라리 나 죽기 전에 시골 선산에 모시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근데 시골이 멀긴 또 너무 멀어서 은퇴하고 나서 해마다 한 번이나 겨우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둥 변명 아닌 변명과 푸념 아닌 푸념을 한참이나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다시 생선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밥을 벌써 반 공기쯤 먹어치운 내가 물었다.

 

“올해 이장하기로 벌써 결정된 거예요?” 나의 질문에 엄마가 조금 더 크게 한숨을 쉬며 대신 대답했다.

 

“네 아빠는 맨날 다 자기가 알아서 결정하잖니.”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정당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논리적인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고 믿는 시민의식의 소유자인 아버지는 종종 본인의 머릿속에서 민주적 절차를 완벽히 마무리한 뒤, 이견 없이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훌륭한 결론을 내려 우리에게 ‘통보’하는 식으로 결정을 내리곤 했다. 아버지는 섬세하게 발라낸 생선살을 다시 엄마와 내 밥 위에 먼저 올렸고, 그 후에야 본인의 밥을 한 술 떴다. 말하자면, 참 자상한 독재였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상을 치우면서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들. 혹시 그날 시간 좀 낼 수 있나. 오전에 어려우면 저녁에 화장터라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나는 평소처럼 건조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갈 수 있는지 좀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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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지는 가을날이었다. 하늘은 화창했지만 바람이 서늘했다. 나는 얇은 경량 패딩을 챙겨 입고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섰다. 예약해둔 업체에서 파묘부터 유골 수습까지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우리는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전에 장인어른 이장했을 때 뼛조각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더라며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라고 했다. 그럼 파묘 맛집인가. 중년이 되면 서로 별별 맛집을 다 추천해주는구나 생각하면서 나는 조금 웃었다. 그 외에는 대체로 침묵이었다. 유독 아버지 앞에서만 무뚝뚝해지는 나와, 그런 나에게 굳이 수다를 떨지 않는 아버지가 둘만 있을 때 자주 만드는 침묵의 하모니였다.

 

오랜만에 방문한 시립묘지는 여전히 고요했다. 햇빛 아래 반짝이는 이름 모를 풀과 꽃과 나무 들이 정겨우면서도, 그곳의 유난한 고요가 묘한 거리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그리움을 안고 다녀갔을 몇몇 묘지 앞에는 소담한 꽃다발이 아직 싱그러움을 머금은 채 놓여있었다. 한참을 관리하지 않았는지 지저분한 풀들이 웃자란 묘지들과, 다른 곳에 이장을 했는지 흔적만 남은 묘지들도 여럿 보였다. 이제는 고인을 매장하지 않기에 이곳 시립묘지가 떠나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가족들이 찾아오는 명절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골 마을처럼 느껴졌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는 것도 아니었고, 친척들과 함께 찾지도 않았으나 아버지와 나는 매년 한두 번씩은 이곳에 들렀다. 언제나 꽃 한 송이 없이 빈손으로 왔다가 엉망으로 떨어진 나뭇잎을 치우고 덩굴진 풀뿌리들을 꺾으며 짧은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곤 했다.

 

“이제 여기 오는 것도 마지막이겠네.”

 

아버지가 어쩐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풍경을 눈에 담으며 기다리는 사이 승합차 한 대가 다가왔다. 서둘러 차에서 내린 이장 업체 사장님과 아버지는 초면에도 다짜고짜 손을 맞잡으며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종잡을 수 없는 요즘 날씨 얘기. 길 찾는데 한참 걸렸다는 소소한 대화. 마치 좋은 일로 만나 기쁨을 나누는 사이처럼 보였다.

 

이장은 좋은 일인 걸까. 죽은 이를 좋은 곳에 다시 모시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지는 걸까. 그래서 굳이 힘을 쓰고 돈을 써서 마음에 남아있을 슬픔의 잔여마저 덜어내는 걸까.

 

“아이고, 사장님 그럼 오늘 잘 좀 부탁드립니다.”

“껄껄. 걱정 마세요. 준비하고 갈 테니 먼저 올라가서 제사 지내고 계셔도 됩니다.”

“하하. 저는 교회 다녀서요. 가서 기도나 잠깐 하면 되죠, 뭐.”

 

아버지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교회 일이라면 유난히 열심인 집사님이었다. 파묘. 선산. 그리고 집사님.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아들. 먼저 올라가서 기도나 좀 하고 있자.”

 

산을 깎아 만든 공동묘지를 오르면 주변의 큰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 잔디도 잘 안 자란다는 어느 구석. 언제나 축축하고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그늘 밑 야트막한 봉분 아래 오래 전 살았던 두 사람이 나란히 묻혀있었다. 오늘은 그들을 다시 만날 것이었다. 긴 세월을 거슬러서 눈으로 직접 마주할 것이었다. 짧은 기도, 사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 감고 있던 찰나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 뒤를 따라 올라온 사장님과 인부가 묘지 근처에 장비를 풀어놓았다. 삽과 곡괭이, 톱과 호미. 요란하지 않아 오히려 믿음이 가는 단단한 도구들이었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복면으로 얼굴을 단단히 감싼 사장님이 무덤 주위를 돌며 삽으로 땅을 세 번 찍었다.

 

“파묘합니다. 파묘합니다. 파묘합니다.”

 

순간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믿는 동시에 혹시 어떤 일이 일어나진 않을까 은밀히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죽음 이후의 세계란 증명할 수 없지만, 혹여나 그런 세계가 정말 존재한다면, 길한 일이나 복 받을 일이 생겨나길. 그렇지 않다면 흉한 일이나 화를 입는 사건과는 멀어지길. 나도 모르게 이런 소망을 빌고 있을 때, 서걱, 삽으로 무자비하게 땅을 파내는 소리가 들렸다. 영화처럼 요란한 징과 장구 소리도, 중얼중얼 염을 외는 소리도 없었다. 다만 고요했고, 단순했으며, 조금 서늘했다.

 

푸욱, 서걱.

 

그런 시간이 오래 계속됐다. 땅을 파낼수록 괜히 추워지는 기분에 나는 몸을 한껏 웅크렸다.


*


“곧 나오실 거 같아요. 관이 보이네요.”

 

삽질을 멈춘 사장님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사장님의 유쾌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나는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3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는 누군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간 아무 의미 없는 유기물이거나, 혹은 아주 큰 의미가 있는 삶의 흔적일, 오랜 시간 땅속 깊이 묻어둔 미지와의 조우. 두 분 다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아들은 기억 못하겠지?  너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아버지는 종종 내게 물었다. 그럼 아버지는 다 기억하고 있을까. 얼굴, 목소리, 혹은 감촉까지. 생생하게 남은 기억일까. 아니면 희미하게 변색된 추억일까.

 

삽을 멀리 던져둔 사장님이 호미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거무튀튀하게 변해버린 삶의 조각들이 하나둘 올라왔다. 생각보다 얕게 파낸 너무 축축한 땅에서, 아직 완전히 썩지 않아 그물처럼 엉킨 수의 사이로 하나씩 발견되는 흔적들. 이런 곳에 계셨구나. 지구에서 우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시간만큼만 우리와 떨어져있었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건 고작 이 정도로 얕았구나.

 

작은 박스에 유골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겨우 박스 하나 채울 만큼씩만 남아있는 몸. 한 사람의 몸이 이토록 작아질 수 있다니. 한 사람의 일생이 이토록 왜소해질 수 있다니. 유골이 수습되는 중에 나는 자꾸만 곁눈질로 아버지의 얼굴을 살폈다. 아래로 내려간 눈꼬리, 굳게 다문 입술을 내밀어 약간 치켜 올라간 턱. 아버지는 지금 나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한 때는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고, 또 한 때는 세상에서 가장 초라하게 느꼈을 부모의 작은 몸에서 아버지는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이제 두 분 유골은 다 모신 거 같네요.”

“아이고,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은 파헤친 묘지를 다시 흙으로 메우고 평평하게 다졌다. 꽤나 오랜 시간 걸려 파냈던 구멍이 빠르게 메워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해왔던 작별이 첫 장면으로 돌아간 듯, 너무 평평해진 시간의 흔적이었다.


*


개장 화장 절차는 간소했다. 새로 죽은 사람들의 화장이 모두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저녁이 되면 먼저 죽은 사람들의 흔적을 재빠르게 태우기. 엄숙한 화장 절차를 마친 유족들이 모두 떠난 승화원에는 고요한 침묵, 혹은 소소하고 평범한 대화만이 잠깐 떠올랐다가 재빠르게 사라졌다. 지금 여기 남은 이들은 이미 오래전 떠났던 고인을 다시 한 번 떠나보내는 사람들. 슬픔도 긴장감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 화장터의 여유로운 공기가 오히려 낯설었다.

 

기다림의 시간이 끝나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빠르게 모셔진 유골들은 각자 지정된 자리에서 태워졌다. 축축한 땅속에서 천천히 희미해지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흔적은 이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바싹 마르고 빠르게 부서져갔다. 분골을 마치고 하얀 보자기에 싸인 유골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고, 서늘한 밤바람이 한결 가벼워질 만큼 따뜻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두 분의 유골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선산에 모시는 게 더 나은 거예요?”

“아무래도 종중에서 같이 관리도 해주고, 매년 제사도 지내주니까 더 낫겠지.”

“제사가 뭐 중요한가. 어차피 아부지는 교회 다니는데 뭘.”

 

내가 장난스레 말하자 아버지는 민망한 듯 웃음을 지었다.

 

“이제 외롭진 않으시겠지.” 아버지가 말했다.

“살아생전 네 할아버지랑 할머니 원망도 많이 했었는데. 그래도 좀 더 좋은 곳에 모시기로 하니까 마음이 한결 편하네.”

 

다시 익숙한 침묵이 흘렀다. 차갑게 몸을 식힌 저녁의 어둠이 차창을 타고 들어왔다. 두 번째 이별. 이제는 맹렬한 슬픔도 아니고, 질긴 죄책감도 아닌, 애정도 미움도 얽히고설켜 순해진 마음이 다른 곳에 묻힐 것이다. 그 마음이 남기고 간 빈자리 위로 새로운 꽃이 피어나고 풀들이 자랄 것이다. 살아있는 두 사람의 몸과, 먼저 떠났던 다른 두 사람의 몸을 싣고서, 우리는 고요한 그리움의 세상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고 있었다.

 

“아들 배 안 고프나. 집에 가서 족발이나 시켜먹을까.”

“좋죠. 엄마랑 셋이 맥주도 한잔 하고.”

 

누군가 파묘의 이유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테다. 복을 빌기 위함도 아니었고, 화를 피하기 위함도 아니었다고. 그건 그저, 아주 오래된 그리움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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