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의미
수잰스캔런의 「의미들」을 읽으며 책에 하나의 질문을 생각했다. 그녀에게 글을 쓰고 읽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의미들 뒤에는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이라는 부재가 붙어 있다. 다른 부재는 없을까. 의미들의 진짜 의미를 찾기 위해 책 속 그녀의 세계로 들어간다.
도서 「의미들」은 정신질환의 기록이자, 상실의 언어를 다시 짓는 일기이며, 한 여성 작가가 무너진 자신을 언어로 다시 세워가는 과정을 그렸다. 그러니까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록보다는 기억의 복원에 가깝다. 잃어버린 언어, 지워진 시간,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을 글을 통해 다시 세상에 불러왔으니 말이다. 그녀는 글을 써서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조차 불가능한 고통을 살아내기 위해 글을 쓴다.
스캔런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기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나’라는 존재가 해체되는 경험을 하며 이름도, 감각도, 언어의 힘도 잃는다. 이름은 번호로 바뀌고 시간의 감각은 사라지고 말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는 세계 속에서 존재의 무효를 경험한다. 시간이 흐른 뒤 작가는 그 시절의 자신을 기억과 문장으로 되살려내며 ‘미쳤던 여자’로 불리던 존재들의 의미를 다시 해석한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의미가 남았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어머니’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녀의 삶에서 어머니는 부재는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그녀의 기억 속 어머니는 따뜻하거나 친밀한 이미지라기보다 늘 무언가 닿지 않는 거리에 존재한다. 그녀의 회고록에 ‘어머니’라는 단어가 꽤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세상의 신뢰, 타인과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거리감 이 모든 것의 근원을 타고 과거로 가 보면 어머니의 부재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글쓰기는 ‘돌아가려는 욕망’과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 사이를 오간다.
어머니가 남기지 못한 말, 묻지 못한 질문, 받지 못했던 위로가 문장이 되어 자라난다. 어머니는 스캔런에게 사랑의 상징인 동시에 ‘말해지지 않는 슬픔’의 원천이다.
책을 넘기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말이 어렵지? 나는 그녀의 문장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한 문장을 읽고 머리에 입력하며 이해하는 편인데 머리에 흡수가 잘되지 않았다. 쉬운 듯한데 왜 문장이 불안정 한 것 같지? 이해되지 않는 구절을 한참 부여잡으며 내 머리를 탓했다. 이후에 내린 결론은 이야기라기보단 의식을 기록한 글, 작가 내면에 담겨있는 독백과 여러 감정들이 혼재되어 있으니 혼란스러움이 오갔다.
어쩌면 스캔런은 불안전함 그 자체를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있는 그대로 쓰지 않았을까. 그녀의 문장은 일부러 비워두고, 반복하고 툭 끊어진다. 그녀가 쓴 짧고 끊긴 문장들은 담을 수 없는 언어를 의식에 힘입어 쓴 감정의 흔적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정신병원에서 보낸 기억에 대한 회고도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받는다. 병의 기억을 미화시키지 않고 의식 그대로를 써 내려간 느낌이다.
문장의 미숙함보다는 병의 시간감각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듯한 문장도 있었다. 그래서 후반부에 갈수록 문장과 내용을 가슴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감응하려 노력했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가슴 속에 담금질하듯 느끼고 지나가니 한결 받아들이기 쉬워졌다.
그녀의 문체는 고요하고 절제되어 있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여백과 침묵이 공존한다.
스캔런은 ‘언어는 우리를 구하지 못하지만 머물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끝까지 완성되지 않은 불안정한 문장들은 어쩌면 살아있다는 또 다른 증거가 아닐까.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문장과 이야기를 쓰며 산다. 때로는 문장이 끊기고 의미가 어긋나며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의 경우 문장 안에 이야기를 많이 담다 보니 말이 안 될 때가 많았다. 「의미들」에서 스캔런은 불완전한 순간에야 비로소 진짜 의미가 태어난다고 말한다. 완성되기보다는 다시 쓰이며 살아남게 되는 게 진짜 글이라는 걸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