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세상은 000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문장을 마주한 적이 있다. 가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이란 곡의 가사로 쓰여 많은 청자에게 선택받은 문장이며, 여러 SNS 매거진에도 아쉽지 않게 쓰인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땐, 나 자신을 알기도 바쁜데 누가 누구의 세상을 반으로 나누냐며 무심히 혀를 찼었다. 그러나, 그랬던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건 문장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단 뜻이고, 더불어 내 세상을 반으로 나눈 대상이 언제든 변하거나 더해질 수 있다는 점을 알리며 글을 이어보려 한다.
[내 세상은 '시인 윤동주'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시의 매력을 처음 느낀 건 고등학교 국어 시간이었다. 내가 다닌 학교의 국어 수업은 늘 모둠활동이었는데, 매시간 주어진 글에 대해 모둠원끼리 견해를 나누고 모두의 생각을 정리한 뒤 한 사람이 대표로 발표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 당시 다루었던 수많은 글 중에서도 윤동주의 시에 가장 관심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수줍음이 많아 늘 발표하기를 꺼렸던 나지만, 윤동주의 시를 직접 소개하고 싶은 욕심에 할 줄도 모르는 발표를 자처했다. 얼굴 전체가 붉게 타오르고 있음을 알면서도 친구들과 해석한 시의 내용을 내 입으로 뱉어냄으로써 시인 윤동주와 한 발 더 가까워짐에 소소한 기쁨을 누렸다.

윤동주의 시가 시험 범위에 포함된다는 핑계로 시 전체를 외우는 데 시간을 쏟았다. 특히 그의 시 <자화상>을 수천 번 읽어내린 경험은 윤동주를 유명 시인이 아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식민지 시대 속에서 일제의 불의를 알면서도 정작 아무것도 하지 못함에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곧이어 그런 자신을 차마 미워할 수 없음에 연민을 느끼고, 동시에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시의 화자는 여고생 시절의 나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그가 살던 시대만큼이나 소란하지는 않았지만, 옷깃을 스치는 얕은 바람에도 균형을 잡지 못했던 시절이었기에 자연스레 시 속 화자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시인 윤동주는 그토록 소박한 문장들로 작은 일에 쉽게 휘청이던 나를 품어주었고, 비포장도로와도 같았던 과거의 나는 윤동주의 시를 통해 반성과 고뇌, 그리고 성찰의 의미를 배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혼란을 겪느라 윤동주의 시를 잊고 살았다. 그러다 그를 다시 마주하게 두 차례의 경험은, 현재의 내 삶의 방식이 그(윤동주)로 인해 정돈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전의 한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대전 여행 중에 방문한 서점에서 윤동주의 시집을 보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결제를 마친 후였다. 시집을 구매한 뒤로, 매일 밤 시집을 펼치며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위해 성찰한다.
시집을 곁에 둔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윤동주의 시가 내게 남긴 건, 더없이 순수할 수 있음에도 나를 포함해 내가 아끼는 존재들을 위해 결국 성숙해져야 함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윤동주를 마주한 곳은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히 깊이 박힌 탓에 일본에 방문하기를 꺼렸다. 하지만 그곳을 가까운 이웃집 드나들 듯 자주 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고 일본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씩 피어올랐고, 그렇게 (친구와) 가게 된 일본 교토에서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도시샤 대학에 마련되어 있는 그의 시비를 마주하였다.
태극기와 꽃이 차분히 놓여있던 시비 앞에서 일본에 대한 미운 감정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한때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했던 나라가 한국인 시인을 기억해 준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과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짧은 생애에 영향을 준 그 나라를 향한 미운 감정이었다.
부정적 의미에 가까운 미운 감정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있다. 하지만, 20년하고도 4년을 더 사는 동안 처음으로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준 시인을 향한 존경심이 있기에, 그마저도 품어줄 용기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윤동주는 또 한 번 나를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시인 윤동주 외에도 내 삶에 영향을 준 존재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근본적인 깨달음의 필요성을 알게 해준 단 한 명의 존재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기까지 읽어낸 당신도 이 글의 제목이 된 문장에 자신의 삶을 대입해 보기를 추천한다. 장담할 순 없지만, 앞으로 남은 날들을 보다 더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끝으로, 언젠가는 내 세상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 자신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