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는 신들의 과일이다.’
한국의 산천에 발을 딛고 자라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비유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권의 토속 신앙에서 복숭아는 장수와 영험함의 상징이자 신들이 별도의 도원을 두어 기르게 하는 신성한 과일로 자주 묘사된다.
이 ‘신성한 과일, 복숭아’라는 메타포를 중심으로, 한국의 전설과 민담 그리고 토속 신앙을 한데 아울러 매력적인 서사를 엮어낸 멋진 작품이 있다. 노도 / 비버 작가의 웹툰 <먹지마세요!>다.
언뜻 코스메틱 제품의 광고 카피를 연상케도 하는 이 작품의 제목은 실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가장 함축적으로 묘사하는 문구다. 주인공 ‘백도영’이 신들의 과일, 복숭아의 기운을 타고난 탓이다. 불의의 화재 현장에서 다른 이들을 구해내고 홀로 목숨을 잃었던 도영의 아버지는 신들의 화원에 숨어들어 복숭아를 훔쳐내고, 복숭아 덕에 잃었던 혼을 되찾아 아내의 곁으로 돌아간다.
어머니에게는 인간의 육신을, 아버지에게는 복숭아의 혼을 받아 태어난 아이 도영은 본래대로라면 천계의 과일 복숭아를 구경조차 할 수 없었을 지상의 수많은 귀(鬼)와 요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빼앗아 삼키고 싶은 탐스러운 먹잇감이다. <먹지마세요!>는 복숭아 소년 도영을 저마다의 이유로 삼키려는 이들과 저마다의 이유로 지키려는 이들이 모여 그려내는 한 편의 서사시이다.
<먹지마세요!>의 진가 중 하나는 바로 문헌 속 한국 토속 신앙을 지극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점이다.
한국 설화에서 용이 되기 이전 단계의 토속신으로 묘사되는 ‘이무기’는 작품 속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며 정장 차림에 장우산을 들고 다니는 젊은 사장으로 등장한다. 불교에서 모든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부처 ‘약사여래’는 한의원을 운영하며 인간들의 병을 고쳐 주는, 대학 교수를 연상케 하는 근엄한 중년 여성으로 나타난다. 본디 사람들의 인식 속에 우아하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자리한 ‘선녀’는 화려한 옷차림에 야구 배트를 들고 다니는 직선적이고 호탕한 여성 신으로 그려진다.
그 밖에도 전우치, 불가살, 그슨대, 강철이 등 한국 민담과 설화로 전해내려오는 수많은 존재들이 전통적인 고아함과 현대의 세련됨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모습으로 등장하여 작품의 마력을 배가시킨다.
이 ‘어우러짐’의 미학은 비단 전통과 현대를 엮어낸 등장인물의 구성에서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다. 복숭아 소년 도영을 삼키고자 하는 자들과 지키고자 하는 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 즉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들 이야기는 단일한 긍정문과 단일한 부정문으로 명명할 수 없는 저마다의 복잡함을 지닌 채 한데 어우러진다.
도영을 해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명백한 악역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실은 악역 그 자신이 아끼는 이들을 위하려는 정순한 마음이다. 도영 일행에게 선의로 머물 곳을 내어주었던 굴왕신은 도리어 그 선한 행동 때문에 자식처럼 아끼던 존재를 허망하게 잃고 만다. 이무기 ‘이묵’은 용이 되기 위해 줄곧 살생을 금해 왔으나, 그 신성한 금기는 결정적인 순간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지독한 족쇄로 작용한다. 작품 속 모든 존재의 의도, 행동, 결과는 언제나 일렬로 병치되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에서 <먹지마세요!>의 두 번째 진가가 등장한다. <먹지마세요!>는 이렇듯 복잡한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오직 단 하나의 정서만을 사용해 완벽히 엮어내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정서, 수많은 이야기의 날실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단 하나의 씨실이란 바로 ‘따뜻함’이다. 타고난 성품과는 다른 행동, 의도와는 다른 결과, 희망과는 다른 현실이 정신없이 모여들어 뒤섞이는 와중에도 작품은 ‘따뜻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비록 자신의 선의가 비극으로 돌아왔을지라도, 굴왕신은 슬픔을 씹어 삼키고 도영 일행을 그저 보내 준다. 무당 소년 허미를 따르는 신수 불가살은, 비록 허미가 자신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외면했을지라도 뒤늦게 돌아온 서투른 사과 한 번에 허미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 준다. 주인공 도영은 ‘자신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 싶어서’ 강해지려는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들이 어둠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을 때, 따뜻함은 비로소 점화하여 그들에게 빛을 돌려준다. '신은 인간의 일에 무정하여 인간이 원하는 바를 굳이 이루어 줄 이유가 없다'라고 말하던 선녀는, 친구 도영을 구하려는 허미의 다급하고 진실 어린 기도에 끝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살생을 금하는 금기 탓에 동료들이 해를 입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이묵은 결정적인 순간 삶의 목표를 저버릴 각오로 금기를 내던져 동료를 지키려 하고, 그 덕에 종국에는 삶의 목표와 동료를 모두 잃지 않게 된다.
의도와 행동과 결과가 병치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도 ‘따뜻함’을 지켜내는 이들은 언젠가 그들이 지켜낸 온기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 이는 <먹지마세요!>가 ‘따뜻함’이라는 하나의 씨실로 무수하고도 복잡한 이야기들의 날실을 훌륭히 엮어내는 방식이요, 동시에 ‘따뜻함’이라는 정서를 향해 찬사를 보내는 방식이다.
징벌과 욕망과 그 밖의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정서에 충실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 말하자면 권선징악에서 오로지 ‘징악(懲惡)’만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따뜻함’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물며 그것이 전통의 세련된 재해석, 박진감 넘치는 서사에 더해 기분 좋은 유쾌함까지 갖추고 있다면 감상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먹지마세요!>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따뜻한 작품이 매력적이기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