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빈체로] 포스터_앨런 길버트_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jpg

 


안나 클라인 요동치는 바다

Anna Clyne Restless Oceans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 77

Brahms Violin Concerto, Op. 77

I. Allegro non troppo

II. Adagio

III. Allegro giocoso, ma non troppo vivace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 Op. 70

Dvořák Symphony No. 7, Op. 70

I. Allegro maestoso

II. Poco adagio

III. Scherzo. Vivace

IV. Finale. Allegro

 

 

지난주 수요일, 업무가 끝난 후 서울로 향했다. 목적지는 잠실 롯데콘서트홀. 독일 북부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을 보기 위함이었다.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전신은 1945년 창단된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이다. 2017년 함부르크 항구에 새롭게 문을 연 엘프필하모니 콘서트홀 개관과 함께 현재의 이름으로 재출범해 엘프필하모니의 상주 오케스트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내한은 2015년 첫 내한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두 번째 내한이다. 본래 2020년에도 내한 계획이 있었지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로 내한 공연이 취소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는 2019년부터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를 맡고 있는 앨런 길버트가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에서 공연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그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공연 시작 전 긴장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앨런 길버트를 고전부터 현대 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혁신적으로 소화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한 국내 언론사가 앨런 길버트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 따르면 길버트는 공연에서 서로를 비춰주는 곡을 배치하는 것을 중요시하며, 필요하면 현대와 고전을 매치시키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고 한다.* 이번 공연에도 지휘자의 특성이 보인다. 공연의 첫 번째 곡은 안나 클라인이 2018년에 작곡한 <요동치는 바다>였다. 여성의 권리 강화가 주제 의식인 이 현대곡은 연주자들이 발을 구르는 소리와 허밍까지 곡의 일부로 삼는다. 사전에 한국어 사용자 단원 한 명이 일어나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낯설 수 있는 이 곡의 형식적 특징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읽어주어 감상자들의 사전 이해를 도왔다.

 


앨런 길버트_1 (c)Marco-Broggreve.jpg

지휘자 앨런 길버트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는 미국의 흑인 민권 운동가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오드리 로드(1934~1992)의 시 <여자가 말하다> 속 한 구절로부터 시작된 곡이다. 클라인은 이 시의 ‘요동치는 바다가 세차게 부딪치는’이라는 구절에서 곡명을 따왔다.** 이 정보를 접하고 나니 공연에서 들었던 가열차게 몰아치는 파도와 같았던 선율이 더 와닿았다. 미국의 시인 뮤리얼 루카이저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에게 헌정한 시에서 이렇게 적은 바 있다. “한 여자가 자기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 자기 자신, 동성의 가족, 친구, 동료, 세상에 있는 수많은 자매들의 삶에 축적된 불합리함은 응축된 감정을 동반한다. 지난 역사 속에서 여성들은 발언이 가로막혀도 방법을 찾아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했다. 그로 인해 각자의 마음 안에서 웅웅 울리던 모종의 소리는 일상에서, 광장에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안나 클라인의 곡 <요동치는 바다> 연주에 포함된 허밍은 콧노래 같이 가볍고 밝은 느낌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소리의 전조 같은 무거운 진동음이다. 입을 막아도 진동은 막을 수 없다. 단원들의 몸 내부에서 웅웅대며 흘러나오는 소리는 곧 파도의 재료이자 근원지이다.

 

곡 제목이 <요동치는 바다>라는 점 또한 중요하다. 바다가 요동치는 모습은 결국 높은 파고의 파도가 계속 이는 것을 말한다. 파도는 형태가 없다. 바위에 부딫쳐 부서지더라도 유리처럼 비가역적으로 깨지고 부서지는 게 아니다. 흩어진 물은 다시 또다른 파도가 되어 바위에 달려든다. 어쩌면 바위를 뒤덮고 그 바위를 침식시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곡의 마지막에서 연주자들이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는 발소리는 파도의 끝이 아니다. 바다는 마르지 않는다. 근래 유럽에서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이 곡을 연주하는 흐름이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엘프필하모니의 이번 공연으로 <요동치는 바다>가 초연되었다. 의미 있는 곡을 국내 초연으로 알게 되어 기쁘다.


짧지만 강렬했던 첫 곡의 다음을 이은 것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번 파트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탁월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조슈아 벨은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2023/24 시즌 상주 음악가로 활동했으니 연주의 합이 더욱 잘 맞았을 것이다. 조슈아 벨의 집중력과 존재감은 상당했다. 부드럽게 시작하는 이 협주곡에서 어느 순간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은 굉장히 높고 얇고 단단한 음을 내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는 실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질감의 실이 아니라 금속을 두드리고 펼쳐 얇게 뽑아내는 실인데, 햇빛에 비춰보면 이리저리 다른 색을 반사하는 그런 실이었다. 그 실이 끊김 없이 계속 공중에 나왔다. 새삼 긴 호흡의 연주를 소화하는 연주자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한편 무대의 가장 뒤에 자리한 악기인 팀파니 연주도 계속 눈과 귀에 들어왔다. 이 악기를 잘 모르기에 좋은 팀파니 연주란 어떤 소리로 다가오는가도 잘 모르지만, 수준이 워낙 뛰어나면 문외한이 보기에도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조슈아 벨_2 (c) Shervin Lainez.jpg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

 

 

이번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은 2부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7번이었다. 음원으로만 음악을 접할 때와 달리 공연 실황을 볼 때면 보이는 것도 감상에 영향을 미친다. 드보르자크 교향곡을 위해 더 많은 연주자들이 2부 무대에 올라왔을 때, 시선이 제일 많이 가는 것은 6대의 콘트라베이스였다. 콘트라베이스는 악기 몸체부터가 사람만 해 이동이 쉽지 않은 악기다. 그런 악기를 한꺼번에 6대나 보고 있으니 뭔가 저절로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1부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부드럽게 시작했다면 드보르자크는 시작부터 곡의 규모가 컸다. 장엄하고 웅장했다. 곡의 주제에 체코에 대한 애국심이 담겨 있으니 서정적인 선율이 흘러도 감정의 단위가 큰 느낌이다. 곡의 멜로디 자체도 내 취향이었다. 지금보다 더 멋모를 때도 스메타나의 몰다우를 몇 번이고 찾아들었었는데 드보르자크 음악에도 끌리는 걸 보니 내 클래식 취향은 체코의 민족주의 음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2부 때에야 교향악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었다. 악기 한 대로 소리를 크게 내는 것과 악기 여러 대로 작은 소리를 중첩시켜 선율의 존재감을 쌓아가는 것은 맛과 운치가 다르다. 이번 공연에서는 가장 많은 악기가 들어간 드보르자크 음악에서 교향곡의 중후한 호화로움을 느꼈다. 또한 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로바로 보는 재미를 경험했다. 지금은 금관악기들이 소리를 내고 있구나, 같은 금관악기 중에서도 이 연주자는 지금은 악기를 내리고 있군, 다시 악기를 들어올렸네, 악기 이름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선율은 주로 저기서 만들어내고 있구나, 같은 확인 과정이 있었다. 이처럼 오케스트라 공연 감상의 즐거움 중에는 눈과 귀가 협응하는 감상의 즐거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 공연의 모든 연주가 끝났을 때 연주자들 대부분이 정말 환하게 웃어 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상쾌한 뿌듯함이 느껴졌다. 내가 진심을 쏟아부은 공연을 들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나 클라인의 <요동치는 바다>를 접함으로써 오드리 로드라는 인권 운동가와 그의 시를 알게 되었다. 팀파니 연주자의 채 고르는 모습을 보며 팀파니라는 악기에 대한 지식을 하나 더 늘릴 수 있어 좋았다. 바이올린 연주로 금속성의 실을 자아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드보르자크의 교향곡을 들으며 내 클래식 취향 중 한 가지를 감지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교향악 감상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린 것이 사실이다. 공연이 진행될수록 감상이 편안해졌고 마침내는 '오늘도 살아서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살아 있는 상태에 대한 감회가 새로워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삶을 생생하게 만들기 위해 또 좋은 것들을 찾아다녀야지.

 

 

* 뉴시스, <앨런 길버트 “고전-현대 구분은 무의미”...’요동치는 바다’ 국내 첫 지휘>

** 임석규, <발 구르고 허밍하는 클래식…여성 권한 강화 담은 ‘요동치는 비다’>, 한겨레 온라인 기사.

*** 뮤리얼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에 대한 출판사 제공 도서 소개글.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