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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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해양 전략가 알프레드 마핸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경철 교수는 이 문장이 역설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바다를 지배하기 전에, 바다가 인간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붕괴, 산성화로 인한 생물 멸종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인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를 수치와 통계로만 바라본다. 예술의 역할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감각을 통해 위기의 실체를 드러내고,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일이다.

 

지난 10월 24일, 이화여자대학교 조형대학에서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시간, 그리고 바다’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번 행사는 전 지구적 기후위기에서 예술이 시간과 생태, 공존의 문제를 어떻게 사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기 위해 기획됐다. 국내외 학자, 큐레이터, 행동가들이 참여해 해양을 중심으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축적한 연구와 실천 사례를 공유했다. 영국 테이트모던 전 관장이자 갤러리기후연합 의장인 프란시스 모리스 초빙석좌교수를 비롯해 국내외 연사들이 참여해, “바다는 더 이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생명체”라는 인식의 전환을 제안했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새롭게 사유하고 관계 맺는 방식을 탐색할 수 있는 자리였다.

 

 

 

1부. 해양 인식론: 우리는 어떻게 바다를 연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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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ritorial Agency: Oceans in Transformation at Ocean Space. (사진=Enrico Fiorese)

 

 

1부는 바다에 대한 이해를 다루었다.  TBA 21 재단의 다니엘라 지만 예술감독은 인간의 인식 체계로 포착되지 않는 바다의 영역, ‘미개척 분류군(dark taxa)’을 통해 인간 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짚었다. 미개척 분류군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생명체들을 가리키며, 인간의 분류 체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어 이러한 익명적 생명들이 밝음과 질서로 상징되는 인간의 기준 바깥에서 다른 형태의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한다.


감독은 생명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곧 그들을 관리하고 자원화하는 권력으로 작동해 왔음을 비판했다. 과학과 자본의 결탁은 새로운 형태의 식민성을 만들어낸다. 이에 인간이 아닌 존재의 감각과 지능에 귀 기울이는 ‘친수적(hydrophilic)이고 페미니스트적인 인식의 윤리’를 제안했다. 재현이 아닌 관계, 관찰이 아닌 참여, 소유가 아닌 만남의 방식이다.

 

지만 감독이 제시한 ‘대항 미학’, ‘대항 서사’, ‘대항 연구’는 생명과 감각의 윤리를 다시 사유하려는 시도이다. TBA21–아카데미의 협업 프로젝트 ‘Territorial Agency: Oceans in Transformation’은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중 하나로, 인간의 착취 활동으로 변화한 해양의 모습을 추적하며, 해양의 시간 흐름과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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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의 근원과 흡수원에 대해 설명하는 신형철 소장

 

 

이후 무대는 과학으로 옮겨갔다. 신형철 한국극지연구소장은 ‘지구를 살리는 바다: 과학이 보는 위기와 기회의 두 얼굴’을 제목으로 발표하며, 바다가 지구 생태계에서 수행해 온 핵심적 기능과 임계점을 짚었다. 지구의 물 중 97%를 차지하는 바다는 열을 저장하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며, 오염물질을 희석하는 거대한 완충 장치로서 지구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인간 활동이 급격히 확대되면서 바다는 달아오르고, 시큼해지고, 쓰레기로 뒤덮인 상태에 이르렀다. 신 소장은 바다를 더 이상 ‘무한한 자원’으로 보지 말고, 인간의 생존이 의존하는 ‘유한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발표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근원의 문제를 가리켰다. 바다의 위기는 우리의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이 바다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기후 위기는 기술적 해결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1부의 논의는 결국 바다를 인식하는 새로운 윤리, 곧 ‘관계로서의 인식 변화’를 전달하며 마무리되었다.

 

 


2부. 해양 자원의 과거와 미래: 바다는 우리를 견뎌낼 수 있을까


 

1부에서 우리가 바다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제안했다면, 2부는 바다가 인류에게 제공해 온 무한한 가능성과 그 이면의 위험성을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주경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는 ‘인류 최후의 희망인가, 몰락의 무대인가’를 주제로, 바다가 문명과 현대 사회의 근간이 되어온 역사를 되짚었다. 수산 자원, 해운과 무역, 해저 케이블, 에너지 자원까지. 인류의 번영은 바다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그 풍요는 남획과 오염을 가속화하고, 산성화, 온도 상승이라는 대가를 남겼다. 태평양의 거대 쓰레기 섬은 이미 프랑스보다 넓은 규모에 이르렀다. 주 교수는 “바다가 인간의 지배를 받기 전에, 오히려 인간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바다는 인류 생존의 마지막 희망이자, 동시에 파멸의 무대가 될 수 있는 양가적 공간이다. 인류가 그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 있다.

 

 

Boris Maas, The Urge to Sit Dry, 2024 (left), amongst works in A World of Water at the Sainsbury Centre.jpg

《A World of Water》 전시 전경. 왼쪽 작품은 보리스 마스의 〈The Urge to Sit Dry〉

 

 

이어 세인즈버리 센터의 예술과 기후변화 큐레이터인 존 케네스 파라나다는 ‘물의 세계: 생존을 위한 리허설 장소로서의 미술관’을 발표하며, 예술이 생존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제시했다. 그가 기획한 전시 《The World of Water》는 “바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네덜란드 해양 회화의 낙관주의에서 도거랜드의 사라진 풍경, 노리치 화파의 대기적 사실주의, 그리고 동시대 생태 예술로 이어지는 흐름은 인간이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노리치 지역 공동체와 협업한 설치작품 〈Rain Catcher〉는 버려진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빗물을 모으는 정원으로, 기후 위기를 추상적 담론이 아닌 참여적 경험으로 전환시켰다. 보리스 마스의 〈The Urge to Sit Dry〉는 지역별 해수면 상승 시 ‘안전하게 앉을 수 있는 높이’를 가시화함으로써, 기후 위기의 현실을 직관적으로 드러냈다. 파라나다는 예술과 과학, 그리고 시민의 상상력이 결합할 때 미술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생존의 실험실’로 기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기후 변화 인식 이후 예술이 생존의 언어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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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토론에서 발언하고 있는 주경철 교수 (사진=이화여대 인스타그램 @emap_ewha)

 

 

1부와 2부가 끝나고 각각 토론이 이어졌다.  주경철 교수는 “양적 성장보다 현명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을 위한 발전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술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영역을 드러내며, 사회적 사고의 한계를 확장한다”고 덧붙였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자연과의 공존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인간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술을 발전시켜 왔지만, 공존의 감각은 점점 희미해졌다. 예술은 이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이 다시 자연과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바다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문명의 흔적, 그리고 회복 가능한 공존의 가능성이 아직 함께 비친다. 그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닌, 책임을 함께 짊어져야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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