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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누군가의 직업이 내 삶을 지탱한다


 

나는 매일 버스를 타며 조용히 감사한다. 버스 기사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 직장에 걸어가야 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내가 예쁜 카페에 온 것도 버스 기사님 덕분이었다. 이렇게 쉬는 날이면 그 감사는 한층 더 커진다.

 

누군가의 노동 덕에 공휴일에도 달콤한 커피를 사 마실 수 있고, 마트에서 장을 볼 수 있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 기사님 뿐인가. 교통 행정 체계를 돌보는 이들, 신호등을 만든 이들 덕분이기도 하다.

 

계속 나열하다 보면, 지구 전체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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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내가 내 삶을 꾸려갈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성실히 수행해 준 덕분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오늘 내가 직장에서 마무리한 일로 인해 누군가의 하루가 편안해지고, 누군가의 삶이 조금 더 부드럽게 흘러간다. 직업은 결국 내가 받은 것을 돌려주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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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지속성을 만드는 것은


 

그래서 나는 직업을 선택할 때, 좋아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극복한 것을 알려주거나, 타고난 것을 나누는 일. 내가 탁월한 일을 통해 남을 도울 수 있을 때 비로소 직업이 된다. 남들은 그런 나의 '능력'에 신뢰를 보내며 직함을 붙여준다. 그리고 이는 '지속성'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내가 어쩌다 노래를 한 곡 잘 부른다고 해서 가수로 나를 소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어떤 행사에서든 노래로 분위기를 띄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가수로 인정받을지 모른다. 타인의 인정이 모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직업의 필수 조건은 '지속적인 대행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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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속성을 유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 또한 직업에서 얻어 가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나는 내 직업이 내 자존감을 채워줄 때 선순환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 중심에는 '자기효능감'이 있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는 자기효능감을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신념”이라고 정의했다. 직업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는 건 단순히 좋은 결과를 냈다는 뜻이 아니다. 반복되는 작은 경험들이 쌓여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내적 확신으로 연결되는 과정이다. 즉, 성장이라는 단어에도 숨어 있는 건 결국 자기효능감이다. 근거 있는 성과와 변화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나를 지탱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성공’ 자체보다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좋은 직업은 좋은 일을 할 때 온다


 

어떻게 직업에서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깨달은 방법은 바로 '1명의 고객을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심리상담센터의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홈페이지 카피를 쓰고, SNS 콘텐츠를 제작하며 상담학, 심리학 관련 칼럼을 쓴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자료 조사를 많이 하게 된다. 조사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심리 지식을 체화하며 많이 배우는 것은 덤이다. 나를 성장시킬 수 있어 나는 내 직업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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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콘텐츠 마케터로 일하면 소위 ‘현타’가 자주 온다. “이렇게 공들여서 해도 누가 읽기는 할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설령 누가 재밌게 읽더라도 직접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허무함을 걱정하자 기다렸다는 듯 허무함이 왔다.


그런데 다음날 거짓말처럼, 한 내담자분이 내 글을 인쇄해서 오셨다. 꼭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면서 인쇄해 오신 종이에는 내가 만든 카드뉴스 사진들과 글이 프린팅되어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마음속에 있는 모든 회의감이 싹 사라졌다. 그때부터 누군가는 읽는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이제 성과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고객을 생각하며 일하면 의미 없는 일이 없었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좋은 직업’과 ‘좋은 일’이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영어에서 ‘work’와 ‘job’은 품사가 다르다. work는 명사이자 동사로 쓰이며, 에너지를 쓰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을 뜻한다. 반면 job은 명사이다. 정리하자면, 모든 직업은 일이지만 모든 일이 직업은 아니다. AI 시대에는 이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많은 직업이 ‘정해진 자리를 얻는 것’에서 ‘스스로 자리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술은 반복적인 업무를 대체할 수 있지만, 의미를 만드는 일은 평생 인간의 몫이다.

 

 

 

좋은 직업은 내 안의 결핍을 채워주는 것


 

일을 할 때 고객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 '자존감 지킴이' 동료가 곁에 있는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내가 쌓은 효능감이 자존감의 씨앗이라면, 동료와의 관계는 그것을 키우는 햇살이다. 내 장점을 알아봐 주는 동료, 신뢰를 표현해 주는 관계는 자존감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다. 반대로 아무리 일을 잘해도 동료와의 관계에서 소외되면 자존감은 쉽게 닳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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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는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신뢰를 쌓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성장할 때 직업은 ‘자리’가 아니라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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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좋은 직업을 갈망하는 이유는 타인의 결핍과 내 결핍을 동시에 채우는 자존감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7년 전 대학교 신입생 때의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초조했었다. 7년 전 나에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 거기서 오는 효능감을 느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그때의 나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건네고 싶어 오늘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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