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 음악이란 숨기고 싶은 일기장 같기도, 차마 전하지 못한 편지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좋지 않은 시선들에 들키는 날에는 나 자신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꽁꽁 숨어버리고 만다. 필자에게 그런 날들은 기어코 심심하지 않을 만큼 찾아왔고, 어리석제도 죄없는 것들을 원망하게 했다.
애써 숨기려 했던 감정을 과감히 내보이는 밍기뉴의 문장들은 희미했던 그날의 나를 더 진하게 기억하게 했다. 천천히, 또 고요히 그녀의 음악에 물들어가는 동안,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감정들에 일부러 무게를 더하기도 하고, 가끔은 보란듯이 일어나 이내 내 품을 떠나기도 했다. 혼란스런 패턴이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서서히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았고, 밍기뉴의 문장은 비로소 흘러가는 노랫말이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깊어야 했을까 싶을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필자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 대개는, 시키지도 않은 어둠을 자처하던 그 시절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유연한 삶을 살기는 어려웠을 거라 말할 것이다. 그들에게 음악은 그토록 미숙한 나를 돌보기 위한 가장 객관적 존재일 테니 말이다.
밍기뉴의 다섯 번째 싱글 앨범 춘몽(春夢)은 모든 행동이 어설프던 시절에 겪은 경험들이 결코 필연적이었다고 말함과 동시에 그 사이 지나간 공백마저도 한껏 빛내주는 효과가 있음을 필자는 느꼈다. 해당 앨범에 수록된 곡 중에서도 <봄날은 간다>는 피고 지는 꽃의 성장기를 인간이 가진 삶의 애환에 투영하며,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의 삶이 더 나은 형태를 띄기 위한 과정일 뿐이니 부디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밍기뉴의 음악은 인간이 겪은 어둠이 곧 그들의 전력투구였다는 걸 알기에, 감히 이해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잔잔히 등을 두드린다. 말하자면, 이해하지 않기를 애쓰지 않아도 이어지는 연민의 정을 표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이 노래를 듣고 가까운 미래에 다가올 화창한 봄날을 맞이할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지는 해는 다 잊고 초라함만 남았네
다시 돌아가기엔 참 여린 마음
완전한 것들은 다 내 마음을 헤집고다시는 갖지 못할 날들을 그리네
제목만 들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노래가 있다. 나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지금의 내 모습이 결코 헛되지 않을 거라는 차분한 위로를 받게 된다.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이 곡에서 화자와 이야기하는 대상은 아마도 '너'이기도 하면서 '나'이기도 하다.
자신을 돌보기도 힘든 당신일 텐데 이토록 만신창이인 나까지도 사랑을 주는 건, 화자의 입장에선 미안하면서도 감사한 일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나아지려 노력하는 화자의 모습이 곡에서 보인다. 그 상대가 '너'일 때 떠오르는 관점이다.
나아지지 않는 날 데리고 산다는 건
아파하는 나를 또 달래줘야 하는 건
틈만 나면 우는 날 안아줘야 하는 건
너무나 고된 일 일 거야
가장 최근에 발매된 밍기뉴의 앨범은 과거의 아픔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토록 찾던 봄날을 만난 것 같다. 전보다는 한층 밝아진 듯한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금보다도 어설펐던 그 시절에 느낀 감정들이 모두 사라지진 못했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날을 위해 (그때처럼) 스스로 어둠을 자처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고 있다.
죽지 말자 우리
오래오래 살자
젊음이 다 지나가도 별 일 없단 듯이
좋게 좋게 살자
가끔은 철 없이
여한이 남지 않도록 끝 모르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