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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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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에는

영화 <너와 나의 5분>

줄거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지나고 보면 어쩐지 잊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 이를 테면 부모님의 차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어렴풋이 음악을 들었던 추억, 햇빛과 함성이 쏟아지던 운동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느꼈던 바람에 관한 기억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산뜻하고 그리운 기억 뿐만 아니라 잊고 싶은 순간들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일이 빈번하다.

 

사실 잊고 싶은 기억은 붙잡고 싶은 기억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 잘 퇴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금은 멀어진 사람과의 추억은 아픈데도 건드려보고 싶은 상처처럼 떠오르면 좀처럼 생각을 멈추기가 어렵다. 지금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때 무척이나 가까웠던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줬던 기억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그리운 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해받고 인정받았던 기억은 아팠던 추억을 함께 떠오르게 하더라도 계속 반추하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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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와 나의 5분>은 그런 달콤쌉싸름한 학창시절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다. 대구로 전학을 온 '경환'은 짝꿍 '재민'과 일본 문화와 음악이라는 같은 관심사로 부쩍 가까워지지만, 서로에게 전부 솔직하게 공유하지 못한 각자의 사정과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둘은 급격히 멀어지게 된다. 경환에게 재민과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들었던 5분은 더 많은 대화와 잊지 못할 순간들을 가져와준 시간이었기에,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음악은 더욱 복잡한 감정을 동반한다.

 

 

 

같은 음악을 함께 들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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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인 경환은 남성을 좋아하는 퀴어다. 처음부터 경환의 성적 지향성이 나오지는 않지만, 거리감이 없는 재민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는 연출은 초반부터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하리수나 홍석천의 커밍아웃이 한국에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시대적 배경과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을 띠고 있는 대구라는 공간적 배경은 경환의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일본 문화와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경환의 성향 또한 배척과 놀림의 대상이 된다. 지금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 또한 '투디 힙'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으로 볼 정도로 다양한 취향을 포용하는 분위기지만, 2000년대 초반의 '오타쿠'는 그저 멸시의 대상에 불과한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환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한 명의 이해자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세간의 시선에 당당해질 수 없는 경환과 어울려줄 뿐만 아니라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재민은 그에게 무척이나 특별한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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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의 특별함은 경환과 같은 취미로 통하기만 한다는 점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다. 재민은 경환과 같은 가수를 좋아해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 다르며, 매사 소심한 경환과 다르게 체육도 잘하고, 껄렁대며 장난을 걸어오거나 경환을 툭툭 건드리고 괴롭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꽤 다정하기까지 하다. 재민은 경환과 이렇게 다르지만, 경환을 '우리 동생'이라 부르며 친구와의 접점을 소중하게 여겨준다.

 

경환은 재민과 다른 번호의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을 아는데도 매번 재민과 같은 버스를 타고 하교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 글로브(globe)의 "DEPARTURES"를 들을 것을 고집하며, 둘은 음악 취향을 넘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어쩌면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 이렇게 양보를 했던 것이 둘의 어긋나는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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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어긋나기 시작한 후, 굉장히 달라 보였던 두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흡사하다는 것을 서로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마다 우는 경환과 롤러코스터를 타며 비명을 빙자한 울분을 토하는 재민, 학교폭력으로 힘들어하는 경환과 학교폭력의 트라우마를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재민, 그리고 어머니의 일로 인해 힘들어하는 둘. 서로가 있어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경환과 재민은 솔직해질 수 있는 구석이 없어진 탓에 점점 더 괴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시점에서 경환에게 재민이 어떤 의미일지를 생각해보면 경환은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이자, '동생'이라 부를 정도로 친근하고 신경 쓰이는 존재였을 것이다. 다만 경환은 달랐다. 경환은 재민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성도 용기내서 털어놓을 정도로 동등한 관계에 있는, 각별한 존재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환에게 재민은 경환 자신을 이해하고 긍정해주기를 바라는 존재다.

 

아픈 과거도 떨쳐내지 못하고 어머니의 성적 압박에 힘들어하는 재민은 경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경환 덕에 위로받고 학교 생활에 활기가 돌았다는 걸 알면서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서 투영해 보았기에 경환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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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환은 어쩌면 연애 감정으로도 좋아했을지도 모르는 재민에게 외면당한 후로도 계속해서 그에게 말을 걸고 부딪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만 끝없이 리플레이해도 함께 들어주던 유일한 이해자였기에 더욱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재민은 계속해서 경환이 내미는 손을 냉정하게 뿌리치지만, 경환은 전학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도 계속 재민을 찾아나선다. 재민이 듣자고 졸라도 듣지 않았던 "FACES PLACES"를 들으며, 자신과 같이 계속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가사에서 계속 엇갈리기만 하는 자신과 재민을 본 것처럼.

 

둘은 결국 끝까지 엇갈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재민은 다소 소극적인 방법으로 실낱 같은 희망을 건다.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와주고 적어도 친구로서의 우정을 잃지 않았음을 확인하고자 했던 경환이 자신과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고자 했다. 수십년이 흐른 후에야 경환은 그때의 추억을 그저 씁쓸한 추억이 아니라 좋았던 추억으로 다시 떠올리게 되기에 경환의 바람은 아주 늦게 이루어졌다 할 수 있지만, 결말에서는 그래도 뒷맛이 괜찮은 여운을 남겼다고 느껴졌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같은 것을,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고 있음을 안다는 것은 무척이나 귀한 경험이다. 다만 그렇기에, 누군가와 같은 마음을 나눴던 기억은 작은 배신만으로도 아프고 극적으로 다가온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설렘을 느끼는 요즘, 이런 작은 유대를 소중히 하면서도 긴장감을 느끼는 것은 이것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너와 나의 5분>은 이렇게 순수하기만 한 추억도, 혹은 아프기만 했던 추억에 관한 내용도 아니다. 존재만으로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서로에게 애증의 기억으로 새겨지는 순간과 그 의미에 관한 영화다. <너와 나의 5분>은 이렇게 곱씹으면 상쾌하지는 않지만 도려낼 수도 없는, 비슷하지만 다른 추억을 생각하며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나, 생각하게 되는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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