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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정가운데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는 굴뚝, 그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으로부터 연극은 시작된다.

 

노조 지부장인 고진옹과 허수인은 아득하게 멀어진 아스팔트 바닥을 내려다본다. 굴뚝으로 올라온 지 어언 372일째 되던 날, 고진옹과 허수인은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홍성호의 추모식을 진행 중이다. 그들이 굴뚝 위에서 분주하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녹슨 쇠 부품들이 저마다 부딪치며 기이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굴뚝 앞에 내걸린 플랜카드에는 우리가 노동자 시위에 쓰이는 문구를 상상했을 때 떠올릴 법한 전형적인 문장이 적혀 있다. 두 사람이 등을 보일 때마다 관객들은 '비정규직 철폐, 노동 삼권 쟁취'라는 문구를 마주한다. 굴뚝이 지상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한 번도 올라가 본 적 없는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고진옹과 허수인이 절을 할 때마다 두 사람의 몸은 플랜카드에 완전히 가려져 사라진다. 그들이 다시 일어섰을 때 상체만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무대는 자연스럽게 인물의 존재를 여러 번 지웠다가 드러낸다. 그렇게 재배가 끝나면 그간 플랜카드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홍성호가 급작스레 모습을 보인다. 그가 몸을 일으켜 처음으로 무대 위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곳에 사람이 있는 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현수막을 등진 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그렇게 등장한 홍성호는 슈퍼맨 의상을 입은 채 다소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펼친다. 마치 태극권을 떠올릴 법한 홍성호의 행위는 (그의 말에 따르면) '축지법과 비행술'을 연마하기 위한 과정이다. 태권V라는 다소 유치한 듯한 소재가 부당해고 노동자들의 고공농성이라는 현실과 충돌하며 이질적인 불편함을 자아낸다. 이 불편함은 앞으로 우리가 살면서 여러 번 마주할 감정이며, 누군가에게는 그저 개소리로 치부될 뿐이지만 결코 지울 수 없는 무언가다.


이 작품에서 회사 대표와 그의 비서는 절대적인 악인으로서 묘사된다. 누가 봐도 악한 사람의 언어를 구사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의 모습에 우리는 자연스레 거리감을 두게 된다. 입체성이 부재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직관적인 두 인물은 관객들에게만큼은 꽤나 친절하다. 두 사람이 어떤 사고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무슨 목적과 의도로 고진옹에게 접근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 두 사람이 이토록 평면적일 필요가 있느냐 묻는다면, 아마 나는 ‘이 두 사람이라면 그래도 된다’라고 답할 것이다. 절대 악인의 서사와 이해관계를 헤아리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남아있다.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못한 갈등이 잔존하며, 내뱉어야 할 여러 외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90분이라는 짧고도 긴 러닝타임 동안 여전히 우리는 할 말이 남아있기에 과감히 악인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높인다.


극 내에서 고진옹의 전화벨은 딱 두 번 울린다. 그가 수화기를 드는 첫 장면과 맨 마지막 장면은 수미상관 구조를 이루며 드라마의 극적 요소를 책임진다. 첫 전화와 마지막 전화는 각각 상반된 내용을 가져다주며 한순간에 극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이처럼 전화벨 소리는 드라마의 핵심 정보를 전달하는 장치로서 쓰인다. 동시에 지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휴대전화임을 보여주며 (전화를 받는다는 일상적 행위로) 현재 그들이 고립된 상태임을 한 번 더 관객들에게 인식시킨다.


작품의 절정 장면, 무대를 가로지르며 축지법과 비행술을 연마하는 고진웅의 애처로운 몸짓이 돋보인다. 역광 조명 탓에 관객들은 그 실루엣이 고진옹이라고 추측만 할 뿐 명확한 형상을 보진 못한다. 그렇게 태권V 춤을 추며 무대 뒤로 사라지는 고진옹을 우리는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비로소 축지법과 비행술을 익혔다고, 드디어 날 수 있을 거라 외치는 고진옹의 마지막 대사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유추한다.

 

이 작품은 이 세상 모든 낭만적인 개소리가 그저 개소리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꾸준히 무대에 존재해야 한다.

 

이 모순적인 제목이 단지 모순에서 그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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