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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늘 춤추는 삶을 동경해 왔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어서 그럴까? 춤추는 인간은 억압된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망설임 없이 분출해 내는 감정 속에서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정해진 틀이 없는 현대무용에서는 그 자유로움이 배가 된다.

2025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공연 중 《룸 위드 어 뷰》를 보고 왔다. “전자음악과 현대무용이 그려내는 붕괴 이후의 세계와 아름다운 저항의 몸짓”. 공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 작품의 내용이다.
 
'(라)오흐드((LA)HORDE)'가 12개국 출신 23명의 무용수로 구성된 '마르세유 국립발레단(Ballet National de Marseille)'과 협업한 작품으로, 음악은 ‘론Rone’이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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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공연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것은 빈 무대세트이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는 세트 안의 디제이와 그가 트는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용수가 나를 반겼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가 이미 공연의 일부인 것이다. 조명 또한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석 조명까지 함께 조절되어, 이 공간 전체가 축제의 장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듯했다.

시작 전 30분가량 무용수들이 디제이 주변에서 각자의 춤을 추다가, 모든 무용수가 등장하면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무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커다란 채석장 같은 돌 세트 안의 네모 박스, 그리고 이를 벗어난 플로어 무대이다. 공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분하는 기준 역시 그 구역 안에 머무르느냐, 이를 벗어나느냐로 나눌 수 있었다.

전반부에는 인간들이 돌 구조물의 네모난 박스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안에서 음악에 맞추어 레이브(대규모로 모여 빠른 전자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즐기는 파티)를 즐기는 모습은 꿈틀거리는 본능의 표현으로 읽힌다. 이어 성스러운 음악이 나오며 디제이는 무용수들에 의해 들려서 한 바퀴를 도는, 신격화된 장면이 연출된다.  이 공연에서 독특한 점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디제이가 공연 안에 등장하여 하나의 역할을 부여받았다는 점이다. 그가 음악 그 자체이자 음악을 관장하는 신처럼 표현되었고, 무용수들이 주변에 모여 마치 그를 숭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따라서 디제이가 극 안에 존재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후 두 명씩 짝을 지어 춤을 추었는데, 한 쌍은 네모 박스 안에, 다른 인물들은 플로어에 위치한다. 이때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는 듯하다가도 곧이어 폭력적인 행동을 보인다. 이 행위가 점점 과격해져 나중에는 잔인한 폭력성만이 남는다.

그러나 각각의 페어 중 한 명이 옷을 한 겹씩 벗는 행위 이후, 그들이 나체가 되자 더 이상 서로 물어뜯지 않게 되었다. 네모 박스 안에서 폭력에 무자비하게 당하기만 하던 여성은 그 밖으로 나와 자신을 억압하던 남성을 때려죽인다. 그리고 여성 인물과 연결되는 나체의 무용수들은 주먹을 머리 위로 뻗어 보이며 승리의 포즈를 취한다. 이는 억압받던 것의 해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채석장의 네모 박스는 폭발음과 함께 돌로 막히고, 하늘에서 펄떡거리는 물고기 인형이 쏟아지며 전반부가 마무리된다. 마치 갇혀있던 생명력이 분출되는 듯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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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는 디제이와 무용수들이 모두 플로어로 내려와서 진행되었다. 디제이가 음악을 틀자 다시 한  번 홀린 것처럼 모인 무용수들은, 이제 일제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무용수들이었기에 마치 인류의 역사를 보는 듯했다.

여기서 대비되는 것은 그룹과 소수의 대비였다. 그룹이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방향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소수의 무용수는 이를 이탈하여 뛰어다닌다. 처음에 그들은 가운뎃손가락만 펴고, 주체할 수 없이 과도한 액션을 보이는 등 광기에 휩싸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점차 그 광기는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처럼 변해간다. 이는 일종의 놀이처럼 보였는데, 무대 위 무용수들은 정말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적인 그룹과 동적인 소수의 대비도 시각적으로 훌륭한 리듬감을 만들어내었다.

그룹의 인간들도 처음에는 슬로우모션처럼 서로 괴롭히고 때리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나중에는 서로 껴안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노골적인 폭력성을 거쳐 억압에서 해방된 인간이, 광기를 분출하다가 마침내 진정한 자유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통과 광기를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삶으로 끌어안아 긍정하며 살아가는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이 떠오르기도 하였다. 혼돈을 받아들이고 비로소 자유로워져 춤으로 승화하는 인간들이 무대에서 표현되고 있었다.

이후 자유로워진 인간들은 자신들을 억압해 왔던 것들에 반항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관객석을 바라보며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고, 무언가를 던지는 행위, 그리고 군무를 통해 반항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마지막에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치고, 목소리를 내어 노래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이는 마치 ‘깨어난 내가 여기 있으니 잊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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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나는 오직 춤추는 신만을 믿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춤은 디오니소스적 생명력의 분출 그 자체로, 그는 후기 사상에서 춤을 궁극의 예술로 보았다. 그리고 나는《룸 위드 어 뷰》를 통해 그런 니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무의미한 폭력과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 이를 표현한 매체인 춤은 그 어떤 매체보다 강력하고 직접적이었다. 춤추는 무용수들의 모습에서 그가 말한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상을 찾을 수 있었다. 

《룸 위드 어 뷰》라는 제목에서 내가 찾은 의미는, 앉아서 공연을 목격하던 바로 그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관객석은 어느새 ‘인간이 걸어온 정신의 역사’라는 풍경을 바라보는 방이 되었고,  나는 그 안에서 춤이 존재의 의미를 탐구해가는 과정을 목격한 것이다.
 
전자음악의 심장을 울리는 리듬감에 맞추어, 정과 동의 대비를 통한 무용의 역동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다시 한번 춤의 무한한 생명력에 대해 찬미하게 되었다. 춤추는 삶은 실로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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