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1] 메트로폴리탄(전면개정판).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0/20251012220917_wreqqvfd.jpg)
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한 남자가 ‘멈춤’을 선택한 10년의 기록이다. 뉴요커에서 커리어를 쌓던 그는 형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가 택한 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침묵하며 예술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 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 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을 느끼는 것만 허락되었다. 오랫동안 나는 뉴욕의 훌륭한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봐왔다.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들이 아니라 구석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서 있는 경비원들 말이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해도 되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온종일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 p.75
이 책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며 인류의 걸작들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본 한 사람의 고백이자, 삶과 죽음, 상실과 회복, 예술과 인간에 관한 사색의 기록이다. 그는 매일 다른 전시실에 배치되어 여덟 시간씩 걸작들 사이에 서 있었다.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 고대 이집트의 벽화, 그리스 신전의 잔해들 속에서 작품을 사색하며 하루하루를, 그렇게 10년을 버텨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살아가며 고찰하고 치유받는 이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예술이 어떻게 인간의 시간을 위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건넨다. 저자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애쓰는 삶” 대신, 보다 잔잔하고 정적인 삶을 택한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 속도로는 더 이상 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 p.331
책을 덮고 나니, 문득 ‘나는 예술을 어떻게 감상해 왔을까’라는 질문이 남았다. 지금까지 한 작품을 오랫동안 진득하게 바라보며 그 속의 숨은 의도나 감정을 읽어내려 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늘 내 시야를 통해 작품을 해석하기보다, 작가가 작품을 그릴 때 가졌던 생각, 상황 등 배경 설명에 흥미를 느껴왔다. 내 얕은 지식과 시야는 그 설명을 통해서야 조금 확장되곤 했다. 그래서인지 작품의 스토리가 흥미로울수록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까지 본 작품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 무엇일까’를 떠올려봤다. 오랜 고민 없이, 바로 떠오른 작품은 계절과 날씨,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흐름을 담아내려 했던 클로드 모네의 ‘수련’이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봤던 ‘수련’은 둥근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자연 채광을 유입시키는 유리 천장 덕분에 작품은 실제로 날씨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감상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압도적인 정적이 느껴졌다.
작품 앞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하나하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으로 진득하게 앉아 감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밝을 때, 어두울 때, 흐릴 때, 화창할 때, 비가 올 때, 눈이 올 때. 그 모든 변화 속에서 작품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 미술관을 나설 때, 평소보다 하늘을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오늘은 해가 쨍쨍하네.”가 아니라, “그늘은 시원하고, 구름은 얇게 깔려 있고, 바람은 평화롭다.” 그렇게 작품 감상이 내 일상의 감상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이런 일상을 작가는 10년 동안 미술관에서 이어왔다. 경비원으로서 보낸 시간 동안, 작품만 지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과 삶 또한 지켜냈다. 퇴근 후에도 미술관의 고요함과 작품 감상이 오래도록 마음에 머물며, 그의 삶을 조금씩 변화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시간은 단순한 근무가 아니라 매일을 버텨내는 치유의 시간과 가까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은 예술이 제기하는 가장 거대한 문제에 대해 의견을 피력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자기 생각을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 용감한 생각, 탐색하는 생각, 고통스러운 생각, 혹은 바보 같을 수도 있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것은 맞는 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메트에서 아끼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 배울 점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연료가 될 작품은 또 어느 것인지 살핀 다음 무엇인가를 품고 바깥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그렇게 품고 나간 것은 기존 생각에 쉽게 들어맞지 않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마음에 남아 당신을 조금 변화시킬 것입니다.” – p.329, 330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예술에 대한 통찰보다는, 상실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사람의 고요한 기록이다.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선택은 도피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가장 정직하게 ‘애도’할 수 있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면 사람 없는 평일 오전의 미술관이 떠오른다. 오디오 가이드도, 설명도 없이 천천히 작품을 바라보며, 오롯이 내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마음속 어딘가에 브링리처럼 ‘미술관의 경비원’을 품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세상으로부터 잠시 자신을 숨길 수 있는 고요의 공간을 찾아, 조금씩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며. 한 번쯤은, 그런 ‘나만의 미술관’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