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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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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우리에게 삶이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삶을 잊어버릴 때가 있다. 매일 같은 하루를 반복하며, ‘사는 일’보다 ‘버티는 일’에 익숙해진 우리는 종종 삶의 온도를 잃는다. 아침에 일어나 바쁘게 걷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 끼어 있다가, 밀린 일을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모를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숏폼 영상을 무의식적으로 넘기다 기절하듯 잠에 빠진다.

 

다시 눈을 뜨면, 또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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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 역시 삶을 잊어버린 채 살았다. 그는 유명 잡지사 ‘뉴요커’의 직원으로 뉴욕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빌딩에서 일했다. 하지만 직장의 이름이 주는 위용에 가려 자신을 위한 사유와 사색을 잊고 있었다.

 

그에게는 형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수학의 천재로 불렸으며 쾌활하고, 건강하고, 언제나 든든한 지주가 되어주던 형이었다. 하지만 젊은 청년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암은 무섭게 덩치를 불리다 결국 형의 생명을 앗아갔다. 형이 병마와 싸우던 몇 년 동안, 패트릭에게 뉴욕이란 휘황찬란하고 화려한 마천루의 도시에서 형의 병실과 형의 집이 있는 곳으로 변했다. 형이 결국 세상을 떠나고, 남겨진 그에게 뉴욕이라는 도시가 얼마나 견디기 힘든 장소가 되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방문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어머니와 함께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찾는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1290년에서 1300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700년 이상 전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탄생과 숭배(Nativity and Adoration of Christ)〉.

 

그는 형이 고통을 견디던 순간에 보았던 숭고함과 빛을, 그 작자 미상의 오래된 그림 속에서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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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ivity and Adoration of Christ (1290~1300, Artist unknown)

 

 

그는 이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배정받는 구역에 몇 시간이고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 그 안에서 만나는 동료 경비원들,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 먼 나라와 먼 시대에서 온 작품들. 그는 이 모든 장면들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그 안에서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달아 간다.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영어 원제는 ‘All beauty in the world’.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즉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진정한 의미를 탐색한다. 그런 사유는 아래와 같은 문장에 나타난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 p.93

 

예술이 그렇듯, 삶 역시 요점을 내놓지 않는다. 삶은 때로는 절망적일 만큼 잔혹하지만, 동시에 아름답고 찬란하기도 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우리의 발걸음은 미술관 내를 노닐며 작품들을 지나는 관람객의 발걸음과 닮아있다. 미술관에 걸린 액자들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과 감정이다. 예술 작품의 액자는 우리의 삶을 비추는 창이다.

 

나는 아직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 언젠가 그곳을 찾게 될 날이 기다려진다. 내 삶 역시 그럴 것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많은 기쁨과 많은 슬픔이 있겠지만, 내가 그것들을 모두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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